매년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비롯한 전국 피서지 곳곳에서 빠지지 않고 흐르는 노래가 있다. 휴양객들이 모이는 곳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라디오 등 방송에서도 뜨거운 계절이 도래하면 꼭 이 노래를 내보낸다. 작렬하는 여름날의 태양만큼 화끈하지도 않으며, 그맘때 인기를 얻는 보통의 댄스곡들과 비슷한 빠르기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때를 맞춰 등장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대신 그 노래는 선선한 리듬과 사춘기를 무사히 보낸 청소년의 바른 일기 같은 가사가 천연덕스럽게 대중의 귓가를 공략한다. 남성 듀오 듀스(Deux)가 1994년에 발표한 「여름 안에서」는 독자적인 매력으로 해가 바뀌어도 봄과 가을 사이에서 항상 많은 사람과 만남을 이어 간다.
노래는 청청한 이미지를 나열해 탁 트인 느낌을 건넨다. 자연 친화적인 성격을 띤 '밝은 태양', '시원한 바람', '푸른 바다', '파란 하늘' 등의 구절은 듣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사회,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전반에 퍼져 있는 청량감은 「여름 안에서」의 으뜸 장점이다.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의 환한 풍광을 배경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 또한 맑은 기운을 배가해 줬다.
여름마다 특수를 노리고 나오는 노래 대다수가 피서지에서 발생하는 청춘 남녀의 일회성 로맨스를 그리기 일쑤다. 비키니를 입은 잘빠진 몸매의 여성이 옆에 지나가고, 화자인 남자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 홀린 듯 인연을 맺는다는 스토리가 판을 친다. 하지만 「여름 안에서」는 욕정에 의탁하는 내용을 배제해 뻔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들이 있는 공간을 만족스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순하게 표현할 뿐이다. 노래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밝은 심상과 함께 천진난만한 고백을 담은 아담한 가사 덕분이기도 하다. 끝부분에서 반복하는 "난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순박한 운치를 은은하게 퍼뜨린다.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가벼운 형태도 인기에 한몫했다. 두 멤버 김성재와 이현도는 두 장의 정규 앨범과 「여름 안에서」가 실린 리믹스 앨범 『Rhythm Light Beat Black』을 낼 때까지 주로 역동적이고 센 힙합, 댄스음악을 선보였다. 래핑이 무척 빨라서 젊은 사람들도 여간해서는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느린 템포의 R&B 노래들도 미국 본토의 색이 진했다. 흑인음악 마니아, 혹은 감각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음악 팬이 아니면 듀스의 노래들은 편하게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듀스의 기존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여름 안에서」도 흑인음악의 한 갈래인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힙합의 둔탁한 리듬과 R&B의 부드러운 인자를 합친 장르)을 뼈대로 뒀다. 하지만 「여름 안에서」는 나긋나긋한 멜로디를 취해 전문성에서 탈피했다. 더구나 속사포처럼 쏘아 대는 랩도 없다. 선율과 구성 모두 편안하면서 어느 정도 경쾌해서 누구나 가까이하기에 좋았다. 노래의 처음과 중간, 끝을 잇는 파도 소리와 색소폰 연주는 후련한 맛을 곱절로 만든다.
안무도 대중을 사로잡은 요인 중 하나다. 1993년에 낸 데뷔곡 「나를 돌아봐」부터 아무나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 왔던 듀스는 「여름 안에서」 때에는 전과 달리 비교적 간단한 춤을 췄다. 특히 양팔을 어깨 위로 펼쳤다가 가슴에 교차로 포개고 다시 허리에 올려 골반을 튕기는 후렴의 동작은 듀스의 팬들 말고도 많은 이가 숙지하고 따라 했다. 쉬운 춤으로도 노래는 전파와 향유의 폭을 키웠다.
무릇 어떤 노래에 대한 선호도는 리메이크를 통해 검증되기 마련이다. 2003년 서연을 시작으로 「여름 안에서」는 디제이 버디(DJ Buddy), 안녕바다, 더 노드(The Nod), 멋진녀석들 등이 정식으로 리메이크했다. 또한 김범수, 소녀시대, 제이래빗, 러블리즈의 케이, 브레이브걸스의 민영 등 여러 가수가 방송에서 부른 바 있다. 2020년에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결성된 유재석, 이효리, 비의 트리오 싹쓰리가 발표한 버전이 다수의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시대를 뛰어넘는 지속성이 이로써 설명된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라디오에서, 대한민국 각지에서 이미 「여름 안에서」가 나오는 중이다. 여름에 집중해서 수백만 명이 넘는 대중과 마주하니 '영원한 여름날의 찬가'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다. 이듬해에도, 해가 더 지나서도 매년 여름이면 시원한 파도 소리와 상쾌한 색소폰 연주를 앞세운 「여름 안에서」가 많은 사람 주위에 살갑게 맴돌 것이 분명하다. 1994년, 우리에게는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벗이 생겼다.
<법무사지> 2022년 7월호 '세대유전 2080 명곡'
https://www.youtube.com/watch?v=R6a5OVjR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