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달의 스밍'은 추석을 맞이해서 문체를 달리해 봅니다. 민족의 명절이고,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즐겁게 지내는 날이니 글이라도 덜 딱딱해야겠다 싶었어요.
독자분들은 추석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고향에 가는 분들도 계시겠고, 그냥 집에서 쉬는 분들도 계시겠죠? 아니면 연휴에도 일터로 나가는 분들도 계실 듯해요.
추석을 보내는 방식과 모습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음악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 속에 늘 자리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귀향길에 듣기 좋은, 추석의 분위기를 살려 줄 곡들을 골라 봤어요. 음악과 함께 추석을 기쁘게 보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명절은 그날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들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추석 음식 하면 송편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토란국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좋네요. 토란이랑 소고기만 넣은 맑은 토란국, 들깨도 넣은 걸쭉한 토란국, 여러분은 어떤 토란국을 더 좋아하시나요?
양희은 님이 2014년에 낸 '나영이네 냉장고'에는 도라지무침, 멸치볶음, 고등어구이, 김치볶음 같은 집 반찬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는 꾸준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죠.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식사가 부실해요. 라면이나 레토르트식품,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분들이 많아요. 노래는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집밥을 그리워하는 단독 세대의 보편적인 마음을 보여 줍니다.
노래의 반주는 스윙 느낌이 약간 가미된 재즈 형식을 띠고 있어요. 그래서 무던하게 흥겹습니다. 양희은 님 특유의 푸근한 보컬이 반주랑 잘 어울리고, 중간이랑 마지막에 하는 어머니 역의 대사가 노래의 다정함을 곱절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ErvZHhALzZI
악명 높은 죄수들이 그들을 수송하는 비행기 ‘콘 에어’를 탈취합니다. 죄수들은 자유를 찾았다는 생각에 춤판을 벌이죠. 이 장면에서 미국 록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1974년 싱글 'Sweet Home Alabama'가 흐릅니다. 1997년에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 주연의 액션 영화 <콘 에어>(Con Air)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가 아닐까 싶어요. 노래를 부른 밴드의 운명과 영화 속 죄수들의 결말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지거든요.
사실 'Sweet Home Alabama'는 일종의 '디스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닐 영(Neil Young)이 1970년에 'Southern Man'이라는 노래를 발표해요. 그는 여기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인종차별을 했던 미국 남부의 역사를 비판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남부 출신인 레너드 스키너드는 고깝게 느껴졌나 봐요. 레너드 스키너드는 ‘Sweet Home Alabama’에서 "늙은이 닐이 그녀(남부)를 바보로 만들었네."라며 대놓고 닐 영을 저격합니다. 그러면서 남부의 좋은 풍광을 찬양하고, 남부 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북부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지 않으니 북부 사람들도 남부 사람들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뜻을 넌지시 내비쳐요.
마지막 절에서는 머슬 숄즈 리듬 섹션(Muscle Shoals Rhythm Section)을 언급합니다. 앨라배마주를 근거지로 하는 세션 뮤지션들인데요, 이들이 연주한 솔뮤직 명곡이 많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고향에도 자랑하고 싶은 명물, 명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추석에는 명물을 한번 즐겨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Sweet Home Alabama'는 무척 경쾌해서 고향 가시는 길에 듣기 좋을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x0njSOZ5M3w
명절에 여행을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2년 넘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올봄부터 여러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풍토병으로 지정하면서 해외여행에 숨통이 트이게 됐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올해 추석 연휴는 그리 길지 않은 4일이라서 해외로 나가기에는 어려울 듯하네요. 그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국내에서 정하면 되죠. 우리나라에도 관광지는 많으니까요.
많은 분이 여행 갈 때 음악 리스트에 '여행을 떠나요'를 빼놓지 않습니다. 1985년 출시된 조용필 님 7집에 담긴 이 노래는 제목이 즉각적으로 여행의 설렘과 기쁨을 생성해 줘요. 여기에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 곳으로 힘차게 향하는 가사가 한 번 더 흥분을 안겨요. 멜로디도 후련하고, 마지막에 드럼 반주와 보컬로만 이뤄진 후렴으로 거듭 활력을 냅니다.
앨범이 나왔을 당시에는 ‘여행을 떠나요’보다 '미지의 세계'가 더 인기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노래가 워낙 신나서 '여행을 떠나요'는 금방 휴가철의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승기 님의 리메이크를 통해서도 젊은 세대에 널리 전해질 수 있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JTLtsP6ZFJk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분들은 명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가족들을 볼 생각에 설렐 것 같아요. 물론 친척 어른들의 덕담을 가장한 가혹한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명절이 두려운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제가 그래요.) 그래도 어른들 입장에서는 관심의 표현이겠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결국 가족과 친척 어른들이 버팀목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또 명절이 되면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이 더욱 그리워지곤 합니다.
대중음악 중에는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노래도 많아요. 미국 걸 그룹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의 1979년 싱글 'We Are Family'도 대표적인 가족 노래죠. 이 그룹은 친자매들로 구성된 진짜 가족이라서 노래가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1971년에 데뷔해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낸 시스터 슬레지는 히트곡이 없었는데요. 이 노래가 수록된 3집은 시스터 슬레지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디스코의 중심에 선 시크(Chic)의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버나드 에드워즈(Bernard Edwards)가 프로듀싱을 맡아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노래에서는 "우리는 가족이에요. 나와 함께하는 언니, 동생들이 있어요."라는 가사가 가장 많이 나와요. 선거 로고송처럼 반복돼서 'We Are Family'는 여성 단체들 사이에서 성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Mission: Impossible III)에서 본인이 속한 정보기관으로부터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된 주인공 이단 헌트는 건물을 탈출하면서 라디오 앞에 무전기를 켜 둔 채 올려놓습니다. 이때 라디오에서는 'We Are Family'가 흘러나오고 있었죠. 같은 요원들끼리 믿고 연대하자는 뜻을 나타낸 연출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yGY2NfYpeE
추석에는 달맞이가 빠질 수 없죠. 추석날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도 있었어요. 자기가 1등으로 봤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다고…. 아무튼 선조들은 달이 생명의 상징이라는 믿음 때문에 달맞이를 하면서 그해 수확에 감사하고 이듬해 풍작을 기원했다고 해요.
올 추석에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 단원들로 구성된 플레이톤(PLAY TONE)이 2019년에 발표한 '달빛정원 (Moonlight Garden)'을 들으며 달맞이를 해 보면 어떨까요? 신시사이저가 조용하게 곡을 열고, 피리랑 생황이 번갈아 가며 은은하게 흐르는 게 무척 아늑하게 느껴져요. 다음에는 거문고가 앞에 나서서 안정감 있게 곡을 이어 갑니다. 중간에 깔린 새소리 덕분에 늦은 밤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있는 고궁을 거니는 기분이 들어요. 이번 추석 달맞이는 고궁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GzHrE1-0-CM
<월간 국립극장> 2022년 9월호 '이달의 스밍'
http://webzine.ntok.go.kr/Article/Theater/Details?articleId=198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