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올여름 JTBC에서 예능 프로그램 <소시탐탐>이 방송됐다. 걸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 15주년에 맞춘 특별한 편성이었다. 총 8회로 구성된 <소시탐탐>은 멤버들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 끈끈한 우정, 잘 드러나지 않았던 매력 등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소녀시대의 팬들이라면 재미있게 봤을 듯하다.
소녀시대는 15주년을 맞아 새 앨범도 냈다. 7집 『Forever 1』의 동명 타이틀곡은 유튜브에 게시된 지 단 하루 만에 조회 수 1천만을 넘겼다. 또한 타이틀곡은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여러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6집 『Holiday Night』 이후 보낸 5년간의 공백이 무색한 성적이다. 소녀시대의 데뷔 이후 아이돌 그룹들의 세대교체가 여러 차례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소녀시대는 여전히 건재하다.
소녀시대는 처음부터 잘나갔다. 쾌조의 바탕이 된 것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다. 노래는 활기, 풋풋함, 따스함을 겸비해 대중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경비행기 운행, 발레, 의상 디자인, 그라피티 등 멤버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긍정적인 기운을 배가했다.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멤버들 모두 10대였던 소녀시대에게 딱 어울렸다.
사실 「다시 만난 세계」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원래는 2002년이나 2003년 발매될 4인조 걸 그룹 밀크(M.I.L.K.)의 2집에 수록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멤버가 갑작스럽게 탈퇴하면서 2집 제작이 무산됐다. 이 여파로 그룹이 해체함에 따라 노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갇히고 만다.
한동안 방치돼 있던 「다시 만난 세계」는 결국 소녀시대에게 돌아갔다. 5년 정도 전에 만든 곡이다 보니 소녀시대가 데뷔하던 때의 트렌드와는 달랐다. 이 무렵 가요계에는 단순한 멜로디, 짧은 길이의 후렴을 반복, 강조하는 '후크송' 방식이 움트고 있었다. 원더걸스(Wonder Girls)는 「Irony」로 이 유행의 선두에 섰고, 카라(KARA) 역시 데뷔곡 「Break It」에서 "Break it!"을 거듭함으로써 음악 팬들을 끌어당겼다. 이와 달리 「다시 만난 세계」는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그 점이 오히려 노래를 특별하게 만든다. 템포가 빠른 편이지만 「다시 만난 세계」는 건반 연주를 앞세워 서정성을 내보인다. 댄스음악임에도 발라드처럼 브리지를 둬서 부드러운 느낌도 냈다. 이로써 브리지에서 후렴으로 넘어가는 구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다시 힘차게 치고 나가는 광경을 연출했다. 마지막 후렴에서는 화음과 애드리브를 덧대 노래가 더욱 박력 있게 들렸다. 끝부분 가사를 미완성으로 처리해 여운도 남긴다. 남다른 댄스음악이었다.
유행을 따르지 않았던 소녀시대는 의도치 않게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했다. 소녀시대는 같은 회사의 보이 밴드 슈퍼주니어(Super Junior)와 함께 대규모 아이돌의 시초가 된다. 열세 명으로 이뤄진 걸 그룹 아이써틴(i-13)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는 네 명에서 여섯 명이었다. 소녀시대의 성공 이후 세븐 사이즈(Seven Size), 레인보우(Rainbow), 나인뮤지스(9MUSES) 등 멤버가 일곱 명 이상인 걸 그룹이 속속 나왔다.
아이돌 그룹에게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춤이다. 소녀시대는 격렬한 안무로 대중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걸 그룹들은 댄스음악에서도 청순함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소녀시대는 하이킥을 넣었다. 동작이 시원시원했을 뿐만 아니라 팔다리를 바쁘게 움직이고 돌기까지 하는데도 모든 멤버의 각이 일치하는 것도 일품이었다. 「다시 만난 세계」에 준비 기간만 1년을 들였을 만큼 소녀시대는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에 신경을 썼다.
2016년, 「다시 만난 세계」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이해 이화여자대학교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결정한다. 이에 학생들은 기존 전공과 비슷한 과목을 개설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서 설립 반대 시위를 벌였다. 1,600여 명의 경찰이 투입돼 진압에 나설 때 농성하던 학생들은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등의 시련을 극복하려는 가사가 「다시 만난 세계」를 젊은 세대의 투쟁가로 정착하게 했다.
노래에는 힘이 있다. 아픔을 겪는 이를 위로하기도 하며, 고된 일로 힘들어하는 이를 격려하기도 한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경쾌함으로 대중에게 즐거움을 안긴 「다시 만난 세계」가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희망과 변화의 성가로 자리 잡았다. 반주, 춤, 가사 모든 것이 씩씩했던 덕분이다.
<법무사지> 2022년 10월호 '세대유전 2080 명곡'
https://www.youtube.com/watch?v=0k2Zzkw_-0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