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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Nov 08. 2024

살림의 여왕

은 아니지만 살림살이를 여왕의 생활만큼 나아지게 할 순 있다

근 10여 년의 결혼 생활 동안 우리는 한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두 사람이 살기에 적합했던 크기의 집은 어느새 온갖 종류의 물건이 넘쳐나, 마치 홍콩의 주거 환경처럼 좁고 열악하게 변해있었다. 

나는 물건이 늘어나는 것을 심히 경계하는 사람인데도, 10년간 늘어난 살림살이가 모든 서랍장과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었다. 


매년 한두 번씩 작정하고 옷과 물건을 정리했는 데도, 새로 산 물건들, 선물 받은 물건들, 어디선가 갑자기 생긴 물건들로, 집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방 셋인 집에 이스턴 킹 사이즈의 거대한 침대가 장악해 버린 침실과. 

입을 마땅찮은 옷도 없는 데, 발 디딜 공간이 없는 옷방과. 

창고방. 마지막 방은 창고방이었다. 

창고방은 옛날 미드 '프렌즈'에 모니카에게 있던 벽장과 같은 공간이었다. 

모니카는 결벽증, 청소광인데, 집의 모든 공간을 완벽하게 놓고 공간, 벽장에 모든 것을 쑤셔 넣는다. 집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 모든 물건을 처박아두어 감히 열기 무서워지는 곳이 모니카의 벽장이다. 

우리 집의 창고방이 딱 그랬다. 

이름이 말해주듯 정말 온갖 물건이 무섭게 차 있었다. 


한 1~2년 전부터 나는 가끔씩 남편에게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더 큰 집으로 가면 좋겠다. 혹은 이사를 하면서 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사란 경제적인 상황이나 직장 문제로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집이 터질 것 같은 상태라는 것과 당장 이동하기 힘든 현실적인 벽에 막혀 나도 모르게 우울했었던 것 같다. 

어느샌가 집을 이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 있으면 심란했다. 


아침에 30분간 운동하고 출근할 거라며 야심 차게 산 운동 기구는 창고방 중심에서 물건 거치대가 되어있고.

'아... 저건 이사 갈 때 버리고 새로 사야지. 그때까지만 쓰자.'

'음. 저건 안 쓰긴 하는데, 비싸게 주고 사서 아깝다. 그냥 둬야지.'


결혼을 준비하며 반짝이는 새 물건으로 취향대로 꾸몄던 집은 낡아진 물건과 변해버린 취향으로 어딘가 조잡하고 볼품없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사실 취향이 변했다기보다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꾸민 인테리어와 물건들이 막상 살아보니 그것이 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맞았다. 


약간의 우울감 속을 허덕이던 어느 날. 

지나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그 집처럼 꾸며야 합니다."


말은 내게 커다란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언제까지고 살고 싶은 집을 뒤로 미뤄둘 순 없었다. 

사실 꿈에 그리는 그런 집은 평생 살아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생각하면 꿈에 그리는 집은커녕 이사조차도 요원해 보인다. 

그 영상을 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자. 

꿈에 그리는 집을 최대한 지금 집에 구현해 보자. 

집을 꾸며보자. 


그때부터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집단장이 시작되었다. 

나는 모든 저녁 시간과 주말을 할애했다. 

평소 취침 시간을 한참 넘겨 잤고, 보통 점심이나 돼야 일어나는 주말에는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하루하루 점점 내 손길로 바뀌어 가는 집을 보니, 설레고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공간에 있는 모든 물건을 전부 끄집어냈다. 

아주 작은 클립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옷방에선 

'살 빠지면 입어야지' 옷들과. 

'살 때 비싸게 샀는데, 유행 돌아오면 언젠간 입겠지' 옷들이 넘쳐났다. 


창소방에선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있는지 조차 잊고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종 쇼핑백은 왜 그리 많은지.

엄청난 양의 종이백과 비닐봉지를 버렸다. 

구석구석 틈새마다 끼워져 있던 종이백만 버렸는데도, 집이 제법 깔끔해진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솎아내고 비웠다. 

쓸만한 몇 개는 중고 거래로 팔고, 팔기도 뭐 한 저렴한 새 상품들은 나눔을 했다. 

그리고 미련하게 붙잡고 있던 물건들은 과감하게 싹 버렸다. 

'혹시나', '그래도', '조금 아까운데'처럼 약간의 미련으로 붙들고 있던 물건은 전부 처분했다. 

집이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물건이 줄자 걱정거리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묵직한 짐 덩이를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짐이 조금 많기는 했어도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거나 지저분한 집이 아니었는데도, 집은 새 집이 되었다. 

물건을 덜어낸 집은 쾌적하고 넓고 산뜻해 보였다. 


소외되었던 물건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집을 샅샅이 훑으면서 기존의 쓰임과는 다른 모양새로 다른 장소에 놓았다. 

필요가 없어 집어넣어 둔 것이었는데, 다시 새롭게 쓰니 기분이 좋았다. 

온갖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예전엔 애정을 품었던 물건인데도 아무 감흥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도 가차 없이 정리 대상이 되었다. 

혹은 끝까지 붙잡고 있게 되는 몇 가지 물건도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인화사진과 남편과 주고받은 손편지들이 그랬다. 


그리고 몇 개는 새로 샀다

이사 가면 새 집에 맞춰 바꿔야지 했던 침구 세트, 러그, 그리고 커튼.

낡고 오래된 패브릭이 선명한 색상으로 바뀌어 집안 곳곳에 놓이자 집안이 훤해졌다.  


대청소 정도를 넘어선 시도였다. 

거의 이사를 앞두고 모든 물건을 골라 처리하듯 정리했다. 

실제로 남편이 묻기도 했다. 


"우리 이사가?"


집은 당장 누군가에게 보여줘도 좋을 만큼 단장되어 있었다. 

마침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던 남편은.


"갔다 오면 비번 달라져 있고, 집 비어져 있는 거야?"


라고 두려움에 가득 찬(?) 농담을 던졌고, 나는.


"갔다 오면 이전의 집은 볼 수 없을 거야. 전혀 다른 집으로 바꿀 거니까."


라며 나의 포부를 밝혔다. 

큼지막한 것들은 바꿨지만 디테일이 중요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 내려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사용 빈도, 물건의 크기, 찾을 때의 용의성과 보관의 깔끔함까지 고려하다 보면 디테일에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디테일이 완성도를 높인다. 


남편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남편이 집에 돌아와 정말 완벽해진 집을 봤을 때. 


"모델 하우스 같다."


남편은 바뀐 부분 부분, 작은 것 하나까지도 알아맞히며 나를 기쁘게 했다. 


같은 공간인데도 전혀 다른 집에 있는 기분이었다. 


주방도 침실도 옷방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거의 구현해 냈다. 

호텔처럼 꾸며진 침구와 은은한 무드등 한 개로 이루어진 침실. 

이제는 거의 매장이라고 불러도 좋게 정돈된 옷방. 

온갖 잡다한 주방 용품이 자취를 감춘 말끔한 주방. 

심지어 창고방조차도 이제는 운동방 겸 보관방 정도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살림의 여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살림의 노하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구현해 내겠다는 목표 아래 살림살이를 만지고 정리하다 보니, 

내 눈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집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살고 있는 기분이란 정말 여왕의 생활이 부럽지 않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고,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는 곳. 


Home sweet home.


살림의 여왕은 아니지만 일상을 여왕의 생활만큼 바꿀 수는 있는 것이다. 


집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고, 어딘가 마음이 우울하다면. 

당신이 꿈꾸는 집을 지금 현재 살고 있는 그 집에 구현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생각보다 집안의 물건 하나하나에 우리의 의식과 걱정이 맞닿아 있어서,

집 안이 간소화되고 아름다워질수록 우리의 고민거리와 잡념이 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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