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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Dec 20. 2024

딩크 9년, 마음이 흔들리다

시댁과의 여행이 딩크에게 미친 영향

지난 글에서 나는 시월드라면 질색하는 싹수없는 며느리 역할에 너무 몰입해서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시부모님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사실 우리 시부모님은 이런 시어른들은 없을 정도로 좋은 분들이시다.


"너희들 알아서 잘 살아라."


하고 아무 간섭 없이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신다.

다만 이번 여행은.

그저 모두가 함께 처음으로 오랫동안 계속 붙어있자니, 익숙하지 않은 서로에게 조금씩 감정이 소모되어 힘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불편했던 만큼, 어른들도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튼.

가족 여행은 분명 좋은 부분이 훨씬 많았다.

모두가 즐거워했고, 웃는 부모님이나 아가씨 내외, 그리고 남편과 조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특히, 아가씨의 6살짜리 조카가 내게 남긴 것은 아주 큰 무언가였다.


딩크 10년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말이다.


그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외삼촌, 외숙모가 된다.

내게 처음으로 외숙모라는 지위를 준 아주 기특한 아이다.

딩크를 떠나서 나는 딱히 아이들을 좋아하거나 예뻐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가씨가 아이를 낳고, 그 조카를 지금까지 봐 오면서도 그랬다.

한 생명이 자라는 것이 신기하고 가끔은 하는 행동이 귀여워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예뻐 죽을 것 같은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주 여행을 가기 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은, 조카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우리를 더 따랐다는 사실이다.

계속 우리 부부 사이에 있길 원했고, 어딜 가도 꼭 한 손엔 외삼촌을 한쪽엔 내 손을 잡길 원했다.

간혹 명절이나 종종 따로 만날 때면 우리 부부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아이이기도 했으나, 이 정도의 열렬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내내 본의 아니게 마치 자녀를 사이에 둔 부부처럼 제주를 누비게 되었다.

지난 글 '가족 여행 다시는'에서 밝힌 것처럼 여행을 다녀오고 모호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비단 가족 여행의 고단함뿐만이 아니라, 이 조카 때문이기도 했다.


귀여운 자녀를 가운데 두고 아이를 보살피며 거리를 걷고, 음식을 먹고, 일상을 누리는 그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아이는 계속 심심하다고 놀아달라고, 끊임없이 여러 가지 놀이를 하자고 보채고, 마음에 안 들면 토라지고..., 이성적이지 않은 아이의 모든 재촉이 우리를 정말 지치게 했다.


그런데.

그런 힘든 가운데서도 나는 계속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어쩌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이런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길 또한 있었을 텐데.

이 또한 힘들지만 행복의 한 갈래였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조카의 모습으로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동경이나 질시였을까.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궁금증이었을까.

아니면 호르몬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 같은 거였을까.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의 고됨보다 나는 급작스러운 심경 변화로 매우 심란한 날들을 보냈다.


어떤 일에도 자식을 갖지 않겠다는 마음에는 절대 변화가 없으리라 장담했었는데...


불현듯, 자녀가 갖고 싶어졌다.


'아이를 갖는다면...'


이 가정은 나를 완벽하게 흔들어 놓았다.


만약 이 생각이 실현된다면 이 일은 아마 우리 부부를 휩쓸어 버릴 것이다.

일로 말미암은 모든 생활의 변화와 파급력은 가히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니.


머리는 터질 것 같지만, 현실은 잠잠한 몇 날 며칠이 흘렀을 때. 

남편은 대뜸 tv를 보고 있는 내게 무슨 고민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도, 혼란스러운 내 상태를 알아본 것이다.

그런 남편을 보니 더 마음이 흔들렸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니.

남편은 우리는 낳지 않기로 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남편의 반응에 대해서는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도 있다. 

그만큼 남편은 나보다도 혼란스러워했고 심란해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계산해서는 답이 없는 문제다."


맞다. 이런저런 상황과 모든 조건들을 고려해서 계산하기 시작하면 답을 내릴 수 없고 확실한 답이 없다는 의미였다.

남편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모든 것은 직접 낳아 봐야 알 수 있다."


이제 곧 딩크 10년, 나의 마음은 흔들렸고 아직도 평정을 찾지 못했다.


모든 가정과 계산을 내려놓고 미지의 길을 나아갈지,

여전히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계속 고수하여 걸어 나갈지,

우리는 새삼 10년 만에 갈림길 앞에 서게 되었다.


심란한 마음에 다시 한번 이전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이 세상에 내 의지로 한 영혼을 불러와,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성숙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던가."


이 모든 고민을 비웃는 듯한 자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거기에 더해 이런 깊고 진지한 고민조차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는 현실 나이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제까지 나는 어떤 시간을 흘려보낸 것인가..라는 무거운 의문과 함께.


스스로를 비웃듯 GD의 '삐딱하게'가 머릿속에서 플레이된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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