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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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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Nov 01. 2020

그 건물 5층에는 농아인협회 수화 교육원이 있다.

제2 언어로 [수어]를 선택했다.

 코로나 19가 1단계로 격하되면서 71기 야간 기초반이 오프라인 수업으로 전환됐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선생님과 수강생의 실물을 접하게 될 생각에 괜히 들뜨고 설렜다. 한편 작고 네모난 화면에 익숙해진 터라 퇴근 후 오가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알면 알 수록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날로 커지는 터라 사소한 불평은 뒤로 하고 가볍게 갔더랬다.


 교육원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오가기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길치인 나조차도 찾아가기에 어렵지 않았다. (물론 지도를 켜서 내비게이션 '도보' 설정은 필수다.) 5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이게 뭐라고 난데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처음 면접을 볼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마 마음속 남아있던 얇은 벽이 무너지기 직전이라서 그랬나 보다.


 문이 열리고 교육원이 들어가는 순간 익숙하고도 낯선 세상이 시작됐다.


 음성언어와 수어가 공존하는 세상. 이 곳에서만큼은 농인이 장애인으로 인식되거나 낙인찍히지 않는 세상. 수어와 시각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고 유지되는 세상.


 농인과 청인의 구분 없이, 대화와 교감에 어떠한 걸림돌이 없는 '일상' 그 자체였다.


 혼자서 어쩔 줄 몰라 멀뚱하니 서있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으니 한 분이 다가와 음성언어로 '안녕하세요. 이쪽에서 체온 체크 먼저 할게요.'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모든 농인이 수어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분이 농인인지, 청인인지 그리고 음성으로 대답을 해야 할지, 수어로 대답을 해야 할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오죽하면 손에 땀이 차서 펜이 미끄러졌을까.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작성하고 우물쭈물 인사하고 도망치듯 강의실에 와 앉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어깨가 꽉 뭉쳤다. 연거푸 물을 마시고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분이 농인인지 청인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음성을 사용할지, 수어를 사용할 지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두 가지 다 사용하면 될 일이다. 마음속 남아있던 벽은 이것이었다. 농인에게는 농인의 문화로, 청인에게는 청인의 문화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 농인과 청인을 구분해서 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사람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 위에 있는 것을 인식하고서 실제로 마주한 것이다.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을 통해 마법사들의 세계로 넘어가듯, 내게는 그 건물 엘리베이터 5층 버튼이 그러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법은 풀려버린다. 돌아가는 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려 작게 손을 움직이거나, 영상통화로 수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면 신기한 생명체 구경하듯 힐끔거리는 시선, 어쩐지 딱하고 측은하다는 눈빛이 진득하게 따라붙는다. 시선을 따라가 빤히 쳐다보면 안 봤던 척 고개를 휙 돌린다. 어떤 어르신은 ‘젊은 아가씨가 고생이 많다.’더라.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지 못하고 어르신께 쏘아붙였다. ‘저 잘 들려요. 말도 할 수 있고요. 장애 있는 사람만 수화 쓰는 거 아니거든요? 장애가 있든 없든 고생은 다 똑같이 해요.’라며. 돌아오는 말. ‘젊은 게 어른한테 눈 동그랗게 뜨고 말하냐, 아니면 아닌 거지.’


 따진다 한들, 따짐 당한 어르신이 농인에 대해, 청각장애에 대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인식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거부하겠다며 이어폰을 귀에 턱, 턱 꽂았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말이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괜히 속만 더 쓰렸다.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여기서는 농인분들, 장애인 아니에요. 똑똑하신 분도 많아요. 저도 많이 배워요. 그런데 여기서 나가는 순간 그냥 장애인이 되어버려요.’, ‘저는 수화통역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똑같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사는데, 적어도 최소한의 인사나 예절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을 참지 못해 쏟아냈지만 후회됐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냥 그저 어떤 책임감, 연대책임을 느끼는 것일 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지 그런 고민들. 고민에 대한 답 중 하나로 여기,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또, 집에서나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음성언어와 수어를 같이 사용하고 최소한의 예절을 공유한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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