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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Apr 28. 2021

이중섭, 행복을 그리다

가족의 적이 없는 곳에서 그려낸 이상향

  6.25 전 양은 모두의 공격 대상이었다. 양쪽 진영은 각기 다른 이유로 총칼을 들지 않은 자들을 죽였다. 선량한 백성들의 시선에는 이념의 분별이 없었고 적군 아군의 변별이 없었다. 내 가족을 먹고살지 못하게 만들고 목숨을 해하는 진영은 모두 적이었다. 사람들은 적을 피해 남쪽으로 목숨을 걸고 내려왔다. 쪽은 따뜻했다.


  유능한 젊은 화가도 그러했다. 난리통그림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고향에 뿌리박은 어머니에게 그림들을 맡기고 대신 아이들과 아내를 보물처럼 챙다. 원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제주도로 이어진 피난길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끝이 났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남쪽 서귀포 소남머리 바닷가 마을은 전쟁에 지친 네 가족의 안식처가 되었다. 곳의 유일한 적은 가난이었다.


  자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부둣가 노동을 해야 했다. 그 품삯으로 가족을 먹이고 밤에 등을 뉘일 집을 구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배급으로 나온 고구마로 연명했다. 동향의 초가집 셋방은 좁았지만 식구들은 단란했다. 방문을 열면 보이는 바다는 좌로는 섶섬을 우로는 문섬을 두고 아름답게 일렁였다. 아이들은 바닷가를 뛰며 바닷물에 수영하며 놀았다. 아내는 바닷가에 지천인 게를 잡아 요리해 남편이 부둣가 노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를 맞춰 반찬으로 내놓았다. 밤에는 비좁은 단칸방에 뒤엉켜 살을 비며 잠을 잤다. 적이 없는 서귀포 바닷가 단칸방에서 화가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행복을 그렸다.


  제주도에서 보낸 1년 남짓한 시간은 화가를 이중섭으로 만들었다. 힘차게 움직이는 황소는 화가를 대표하지만 인간 이중섭의 대부분은 제주도에서 만들어졌다. 제주도를 떠난 이후 시작되는 그의 비극을 생각해보면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행복의 시간은 너무 짧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적십자병원 병상에 홀로 쓸쓸하게 누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떠 올린 건 어떤 회상이었을까. 캔버스 안에 뒤엉켜 살을 부비며 동화처럼 웃고 있는 가족의 얼굴과 바닷가에서 게와 함께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서귀포 바닷가가 이중섭의 붓놀림으로 이상향처럼 그려진 풍경화가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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