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발견을 통한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의미 세우기
요즘 취향이란 단어가 사람들의 일상에서 많이 쓰입니다.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경향'으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으나 다소 모호합니다. 영어로 'Taste, Liking, Preference' 정도로 번역되니 '기호', '선호' 등이 취향과 가장 가까운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쓰는 취향은 기호, 선호의 동의어라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대체어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어떤 물건이나 대상에 대한 기호, 선호를 얘기할 때보다는 다소 복잡한 자신의 삶의 지향을 얘기할 때 취향이란 단어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지인들과 조용한 곳에서 담소를 나누며 술 한잔 나누는 것이 내 취향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그 한 예가 되겠네요.
취향 혹은 라이프 스타일을 얘기할 때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단어가 바로 '나'입니다. '내 취향', '내 라이프스타일'을 얘기하지 남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은 실제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개인'에 대한 지금의 관념은 언제 어디서 형성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개인에 대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입니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칭해지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의 부를 개인의 부의 총합'으로 규정했습니다. 처음으로 재산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로 개인이 역사에 등장한 것이죠. 그러나 이후 개인들의 운명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성장시킨 산업혁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계층은 보통의 개인들이 아닌 소위 사회의 지배계급이라 불리는 지주, 자본가 들이었기 때문이죠. 증기기관 개발로 방적 산업이 크게 성장하자 지주는 소작농이었던 개인들을 좇아 버리고 그 땅을 양 떼 목장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른바 '엔클로저 운동'입니다. 이에 갈 데가 없어진 개인들은 도시로 모여들게 되나 도시 또한 이들에게 가혹한 공간이었습니다. 공장의 기계화로 일할 곳이 마땅찮았던 개인들을 자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고용, 장시간 혹사시킵니다. 개인들이 이에 반발해 벌인 '러다이트 운동', '차티스트 운동' 또한 진압되고 맙니다. 이후 오랜 시간 참고 싸워 참정권을 얻는 등 개인들은 그들의 위상을 스스로 높여왔으나 그 과정은 힘들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렇듯 지주 대 개인, 자본가 대 개인 등 주로 사회계급에서 권력층과 대척점에서 투쟁하던 집단의 이름이었던 개인이 오롯이 그들 자신만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심리학의 태동입니다. 19세기 말 신경 정신 의학으로 처음 등장한 심리학은 말 그대로 의학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 등의 개념을 가지고 인간 행동의 원인 분석을 통해 트라우마 등 다양한 신경 병리 현상을 파악, 해석하며 심리학의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 행동의 목적에 관심을 둔 심리학자도 있었는데요. 그가 바로 알프레드 아들러입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달리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는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때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반복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아들러는 라이프스타일이란 삶에 대한 개인의 기본적 지향이나 성격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 인생의 목표, 자아에 대한 인식, 타인에 대한 감정, 세상을 대하는 태도 등 개인의 모든 취향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했습니다. 개인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르기에 '개인 심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했습니다. AIO(Attitude, Interest, Opinion), VALS(Value and Lifestyle) 분석 등 다양한 분석이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한정된 변수를 사용 몇몇 구분자로 나누려 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 대신에 수많은 개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각자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면서 라이프스타일은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는 개인의 튼튼한 뿌리로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해도 유사한 삶의 지향점을 갖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지향점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은 라이프 스타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해당 라이프스타일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면서 거대한 시대 조류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몇몇 라이프스타일은 그런 지위를 얻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미니멀 라이프는 1960년대 예술 사조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충실하게 표현해, 감상하는 사람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하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품에서 군더더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공간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했죠. 미술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퍼져나갔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급기야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 하면 '집안의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미니멀 라이프는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 불필요한 일, 불필요한 인간관계까지도 덜어내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자신에 대해 오롯이 집중하는 삶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입니다.
채식주의(Vegetarian)
채식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동물 권리'입니다. 신석기시대 농경을 시작하면서 사냥을 못하게 되어 동물을 포획하여 기른 것이 가축의 기원입니다. 산업화 사회를 거치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가축을 키우는 것도 산업화되었고 많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가혹하게 대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죠. 이에 반대하여 동물 권리를 내세우며 그 실천의 방법으로 육식을 금하게 된 것이 채식주의입니다. 채식주의는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뉩니다. 모든 동식물을 먹지 않고 오로지 식물이 제공하는 과일만을 먹는 프루트 테리언(Fruitarian), 식물만을 먹는 보통 우리가 채식주의자로 칭하는 비건(Vegan), 동물의 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계란 및 우유 등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락토 오보(Lacto-Ovo), 가축의 사육환경 개선을 위해 소, 돼지고기, 닭을 먹지 않되 생선은 먹는 페스코(Pesco) 등이 그 몇몇 분류입니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채식주의를 택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입니다.
킨포크 라이프(Kinfolk Life)
미국 서부 소도시 포틀랜드(Portland)에서 시작된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돕고 사는 생활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정의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기본적인 생활 양태는 익히 아시다시피 '경쟁'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경쟁 대신 '공생'을 추구합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해 물건을 만들고 이를 다시 지역 내에 되팔며 그들만의 경제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중간 유통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제거,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동시에 싼 값으로 물건을 팔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부담도 덜어주죠. 이를 통해 발생한 사람들의 여윳돈은 다시 다른 물건을 사고 파는데 쓰이게 됨으로써 소위 '선순환의 경제 생태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 생활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 경쟁보다는 공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며 이를 통해 자신도 건강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믿음이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의 근간입니다.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의 면면을 살펴보면 떠오르는 몇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Simple(단순한), Slow(천천히), Self(스스로), Social(함께)입니다. 이런 단어들의 대척점에는 '복잡한', '빨리', '누군가에 얽매여', '혼자' 같은 현대 자본주의를 표상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현대 자본주의의 피로함에서 탈피하고 싶은 개인들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취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라이프스타일까지 왔습니다. 근데 정작 '내 라이프스타일은 뭐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취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소한 취향 하나하나가 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평소 좋아하는 것들, 즉 취향을 떠올려 적어보고 비슷한 것들을 묶어 하나의 문장, 단어로 만들어 보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제 라이프스타일에 '스스로 이즘'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