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들어 살아보기
보통 사람들의 생계유지 수단은 이른바 '임금노동'입니다. 급진 사상가인 이반 일리치는 임금노동이 자본주의가 가져온 해악이라고도 말한 바 있습니다. 자급자족을 하며 스스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임금노동이란 굴레에 빠져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죠. 이전에는 다소 과격한 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의 상황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우리가 일을 하면서 힘든 이유는 '타인의 취향'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라는 테두리 밖에 고립되어 살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로 이어진 사회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이런 관계망 속에서는 타인의 소비가 곧 자신의 소득이 되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해 타인의 취향에 맞춰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고 까다로워진 지금 취향을 맞추기가 더욱더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죠.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경우 이 힘듦은 배가 됩니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청년들이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게다가 다른 사람의 취향을 맞추며 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육체적으로 지쳐갈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잃어버린듯한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자신을 찾고 활력을 가지고 살려면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계유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사회 속에서 의미를 지니고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된 일이 됩니다. 이를 통해 수입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의 취향, 라이프 스타일, 더 나아가서 삶의 철학을 온전히 담아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음과 동시에 큰 성공을 얻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인양품
1960년대 예술사조로 처음 등장한 '미니멀리즘'은 1980년대 들어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듭니다. '미니멀 라이프'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80년 미니멀 라이프를 표방하는 생활 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이 등장하는데 해당 라이프스타일이 갓 태동하던 시기였으니 시류에 편승했다기보다는 시류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무인양품은 말 그대로 '브랜드가 없는 질 좋은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브랜드력의 가치를 좇아 제품의 가격을 올리고 이익을 남기는 방식을 버리고 본질에 충실한 괜찮은 제품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제품의 본질'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의 가치를 제품에 담습니다. 제품 각각의 최적의 소재는 무엇인지, 최적의 제조방법은 무엇인지, 디자인은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하고 연구합니다. 초기에는 '저가 제품 같아 보이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디자인에 너무 신경을 안 쓴다' 등 시장의 여러 오해들이 있었으나 미니멀 라이프가 자리 잡으면서 유명한 브랜드가 됩니다. 아니러니 하게도 노브랜드를 표방하는 무인양품이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생활 용품 '브랜드'가 된 것이죠.
현재 무인양품은 생활용품을 넘어 주택, 서적 등 다양한 분야에까지 진출, 명실상부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그 명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철학이 여전히 처음과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기에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것 같습니다.
러쉬(LUSH)
러쉬를 얘기할 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타 로딕인데요. 바로 '더 바디샵( The Body Shop)'의 창업자입니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회 운동가'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물학대, 환경파괴, 불공정 무역 등 사회 전반의 변혁을 위해 사회 운동을 하던 그는 급기야 이런 가치의 실천을 보다 더 구체화, 조직화하고자 더바디샵을 만들었습니다. 더바디샵은 화장품 업계 최초로 공정무역을 통해 재료를 수급했으며, 그린피스와 함께 환경보호 운동을 하고 화장품 동물 테스트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당연히 제품은 화학연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천연화장품,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인증 제품이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로레알에 인수되고 2007년 아니타 로딕이 사망하면서 더바디샵의 가치는 흔들리게 되는데요. 친환경 바디용품을 더바디샵에 공급하던 마크 콘스탄틴이 러쉬를 설립하여 더바디샵을 계승하여 환경보호, 공정무역, 동물실험 반대, 소수자 인권 보호 등의 가치를 꾸준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철학이 그가 죽은 뒤에도 살아 남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들을 보고 특출한 소수만이 이런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거대한 규모로 키우지는 못하더라도 취향을 살린 일은 누구든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 취향을 살려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인데요. 바로 '아마추어' 정신입니다. '아마추어(Amateur)'는 '사랑하는 것'의 라틴어인 아마토르(Amator)에서 기원합니다. '음악, 미술 등을 직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좋아하고 즐겨해서 거의 직업인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들을 칭했죠. 근래에 전문지식이 없는 비전문가를 이를 때 칭하는 말로 종종 다른 이를 비하할 때 쓰이기는 하지만 원뜻은 이렇게 다릅니다. 아마추어 정신에서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을 즐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야 하죠.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큰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는 것이 되어버리면 그 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더 이상 즐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한다고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회 속에서 발 딛고 사는 이상 큰돈은 아니라도 삶을 지탱할 만큼의 돈은 필요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팬덤(Fandom)'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의 팬덤 문화를 얘기할 때 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해 공감, 우정 등의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 혹은 그 문화'를 일컫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지해 줄 사람들만 있다면 일을 즐기면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와이어드(Wired)' 잡지로 유명한 케빈 켈러가 그의 책에서 말하듯 '1,000명의 팬덤이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데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더 좋은 것은 팬덤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팬덤을 만들 수 있습니다. SNS의 가장 큰 장점인 '팔로워 효과'와 '네트워크 효과'가 이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팔로워가 되면 다시 그들의 팔로워들과 이를 공유하면서 팬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취향, 라이프스타일, 나아가 삶의 철학으로 살아가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자기 자신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유연성도 필요합니다. 그 가치가 자신의 삶의 철학과 부합한다면 말이죠.
그래도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