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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공방 Oct 24. 2018

공간을 마케팅하다

공간의 의미 변화에 따른 마케터와 소비자와의 교감에 대하여 

공간의 의미 변화


일반적으로 공간이라 함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뜻합니다. 그러나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개념을 자신의 일의 목적에 따라 달리 해석하기도 합니다. '공간을 다룬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건축가입니다. 건축가는 건축물을 통해서 공간의 의미를 찾습니다. 건축가는 '공간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의 경계-벽, 천장 등-가 만들어내는 장소가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라고 얘기합니다. 건축가는 결국 공간을 '장소'로 규정하는 셈입니다.


공간을 다루는 사람 중 하나인 마케터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공간을 정의합니다. 공간을 활용해서 수익을 거두는 업을 하는 공간 사업자를 플랫폼 사업자라 합니다. 오프라인 공간을 가지고 사업을 하던 백화점 등이 전통적 의미의 플랫폼 사업자였다면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아마존 같은 온라인 커머스 마켓 등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로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플랫폼, 기차역의 승강장을 뜻하는 용어를 공간으로 사용했을까요? 제품이 거래되는 점포와 기차역의 플랫폼이 서로 유사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플랫폼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승객들을 싣고 온 기차도 승객들을 내려주고 다른 이들을 태워 다음 역으로 떠나고 승객들도 플랫폼을 거쳐 각자 행선지로 떠납니다. 제품이 거래되는 점포도 이와 마찬가지죠. 새로 제품이 들어오면 그 제품은 구매와 함께 고객의 손에 들려 점포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영원히 점포에 머무르는 제품은 없습니다. 그런 제품이 있다면 재고로 처리되어 용도 폐기되겠죠. 


플랫폼 비즈니스는 이처럼 제품이 오가는 장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제품 비즈니스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가집니다. 제품 비즈니스의 경우 제품이 중심입니다. 따라서 남들과 다른 제품, 더 좋은 제품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우 제품으로 플랫폼을 남들보다 돋보이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플랫폼과 같은 제품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영화관을 생각하면 가장 쉬울 텐데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베놈'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어느 곳엘 가도 같은 영화 '베놈'일뿐이죠. 그 대신 자신의 플랫폼에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중요했던 것은 '접근성'이었습니다. 어차피 같은 제품을 살 거면 가까운 데서 사는 것이 가장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마케팅의 역할은 굉장히 제한적이었고 일부 홀대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공간의 개념이 변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전에 공간이라 함은 '영업장'을 뜻했습니다. 실제 거래가 일어나는 사업자가 관리할 수 있는 물리적인 경계 내의 공간으로 그 영역을 한정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공간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기술의 발달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기존 오프라인 플랫폼의 영역을 뺏아가기도 했지만 역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확장된 개념의 공간은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서 거쳐오는 경로'입니다. 요즘 많은 제품 및 서비스들에 대한 정보 검색은 일차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이후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가 일어나는데 이를 거치며 소비자들이 처음 생각대로 구매를 하기도 하고 결정을 번복하기도 하기 때문에 구매 경로가 확대된 의미의 '공간'이 된 것이죠. 이는 특히 최종 거래가 오프라인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업에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최근 O2O(Online to Offline) 영역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뀐 개념의 공간과 마케팅의 역할


이전의 공간이 물리적 한계가 명확한 정적인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공간은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동적인 공간입니다. 공간을 어느 범위까지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한없이 커지기도 합니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공간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아니라 '공간의 매력도'가 되었습니다. 공간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공간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아마도 공간에서 소비자와 교감을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구매 경로로 정의된 공간에서는 소비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그들과 교감을 잘해야만이 제품을 구매하게 되기 때문이죠. 단순히 제품을 사라고 홍보하는 것은 소비자와 교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교감은 소비자에게 불쾌한 경험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간 마케팅의 핵심인데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번트 슈미트 교수는 이를 CEM(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 고객 경험 관리로 명명했습니다. 그는 CEM을 '기업의 모든 소비자 접점에서 고객이 긍정적인 경험을 느끼도록 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소비자를 '거래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공감의 대상'으로 보라고 합니다. 소비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야만이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이죠.


CEM(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 고객 경험 관리의 구체적 모습


CEM을 실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지만 사실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이전처럼 마케팅이 누군가 정해놓은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자와 교감만 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CEM을 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소비자와의 접점을 정의해야 합니다. 제품을 사줄 소비자가 어디서 제품 정보를 검색하고 어디서 제품을 직접 보고 마지막으로 어디서 사는 지를 알아야 하죠. 이를 접점, 터치 포인트(Touch point)라고 합니다. 소비자 접점을 정의했다면 둘째, 접점에서 소비자와 교감할 콘텐츠를 만들어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합니다. 접점의 성격에 맞게 콘텐츠를 적절하게 잘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콘텐츠에 제품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담아야 합니다. 보통 브랜드 아이덴티티라 칭하는 이것은 CEM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꽤 많은 접점들을 지나는 소비자들에게 일관된 이미지를 제공해야만이 소비자가 그 제품을 기억하고 마지막에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접점을 잘 잡고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였음에도 제품 판매에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CEM을 하고 있는데요. 이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 브랜드 및 제품의 정체성에 따라 진행하는 양상은 제각각 다릅니다. '아마존 고(Amazongo)'처럼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의 불편한 접점이었던 계산대를 아예 제거하는 경우도 있고, '르 라보(Le Labo)'처럼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와 함께 소비자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경험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공간 마케팅 


아직까지 공간 마케팅의 주체는 기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만든 콘텐츠를 원하는 접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심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하지만 아마 이런 방식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해 봅니다. 사무실 공유 서비스 기업인 '위워크(WeWork)'를 보면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위워크의 경우 사무공간이란 플랫폼을 소비자 개인들에게 임대하고 기본적인 편의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공간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입니다. 소비자들 스스로 오롯이 위워크란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셈이죠.


앞으로의 공간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사람들이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숨어있던 창작의 욕구가 밖으로 드러나고 이를 공유할 장도 SNS 확대로 넓어졌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바야흐로 진정한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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