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의미 변화에 따른 식품 시장의 현재와 미래
흔히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항을 '의식주'라 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 (Maslow's Needs Hierarch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의 욕구, 소속 및 사랑의 욕구, 존종의 욕구를 거쳐 가장 고차원적인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총 다섯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죠.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를 채우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 특히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의 양상을 관찰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매슬로 이론에 따르면 음식에 대한 욕구는 최하위의 생리적 욕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대충 해결된 요즘 웬만하면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욕구로 나아가는 대신 음식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 집착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많은 경제적 부를 획득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불만족한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이를 위안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매슬로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앨더퍼의 말처럼 '때때로 상위 계층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하위 단계로 퇴행, 그 욕구를 채우는' 것이죠.
그렇다면 현재 음식은 현실의 불만을 달래주는 의미 정도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불과 50년 전 굶주림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음식은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원이었습니다. 먹거리가 귀했기 때문에 맛보다는 많이 먹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양상이 크게 바뀌었죠. 먹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에 일단 음식은 단순 생리적 에너지원의 역할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복잡해진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지금, 음식은 음식 자체보다 이를 '매개로 한 먹는 행위'의 측면에서 중요해졌습니다. 현재 먹는 행위는 타인과의 교감을 위한 매개물이기도 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 어디에서 무엇을 누구와 먹는지가 더 중요하고, 불특정 다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SNS 상에서 뜨거운 주제 1위가 항상 음식인 것도 그 이유이겠지요. 음식이 사람들 간 관계 맺기의 동력이 된 셈입니다.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은 만큼 음식의 의미도 이처럼 크게 변했는데요. 이전의 음식이 '물질적 에너지원'이었다면 현재의 음식은 '사회 경제학적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식품 산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국가 단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품의 형태로 된 식품을 구입해야만 합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닌데요. 한국의 식품 회사들은 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는 밀, 설탕 등 기본 영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식재료를 주로 공급하였으나 8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공식품의 형태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형태, 다양한 음식의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는 합니다만 가공 식품을 제공하는 역할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소비자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에 관한 한 다른 나라에 비해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 트렌드도 자주 변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입맛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취향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양한 재료의 맛을 동시에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빔밥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비슷한 형태의 김밥을 좋아하는 것이 그 예이겠죠. 서양에서 유입된 샌드위치, 피자의 경우도 단일 재료로 만든 것보다 BLT 샌드위치나 콤비네이션 피자 같은 류를 더 선호한다고 하죠. 둘째로 육류의 경우는 부드러운 식감보다는 쫄깃한 식감의 부위를 더 선호합니다. 닭고기 중 닭다리살을, 돼지고기 중에서는 삼겹살, 족발을 더 많이 먹죠. 또한 그 조리방법에 있어서는 단연 불의 향이 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반면 향신료 및 향신채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인 취향을 보이는데요. 마늘, 양파, 파, 후추 등 한국 음식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향신 재료 외 다른 재료들-허브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거부감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 이처럼 음식에 대한 취향은 특이하지만 단순하고 뚜렷해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확고한 취향 안에서 사람들이 매우 짧은 주기로 새로운 음식을 계속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음식의 트렌드가 1년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특정 음식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순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취향과 트렌드는 한국 식품 산업의 발전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인구 사회학적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식품 산업 변화에 큰 동인인데요.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구의 감소로 인한 주된 가족 구성의 변화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3~4인 가구가 주를 이루었지만 출산율 저하, 고용 불안 등으로 1~2인 가구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에 식재료의 대량 구매보다는 소량 구매, 간이 식사 및 외식을 하는 가구가 많아지고 관련 산업 및 시장이 성장하게 됩니다. 최근 HMR(Home Meal Replacement) 제품 시장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 예가 되겠네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식품 회사들은 소비자의 급변하는 요구에 대응하여 각종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등 사람들이 식 생활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일부 식품 회사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역할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에너지원에서 사회 경제학적 에너지원으로 음식의 의미가 변했고 주위에는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식품들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사람들은 이런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음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도 맺고 있죠. 그렇다면 과연 식품 산업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요?
현재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구와 공생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환경문제와 동물복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배 고픈 시절에는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든 많이 생산되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었죠. 화학약품으로 환경이 파괴되든 대량 사육으로 동물이 고통을 받든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또 직접 그 부작용을 체감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건 같은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친환경 및 동물복지 식재료를 사는 소극적인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변화와 더불어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입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미래 식품 산업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는 대체 단백질 식품의 부각입니다. 주로 육류를 통해 섭취되는 단백질은 필수 영양소로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해줌과 동시에 그 식감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먹는 쾌락을 제공했습니다. 두부 같은 음식을 통해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먹는 쾌감 때문에 육류 섭취를 중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동물성 단백질의 식감과 유사한 대체 식물성 단백질 식품입니다. 현재 상당 부분 개발이 진행되어 조만간 동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일한 식감의 육류 대체 식품의 보급이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동물과 공생하는 삶 속에서 파생될 변화입니다. 세계적으로 1~2인 가구 수가 증가하면서 반려 동물과 생활하는 비중도 함께 높아져서 관련 시장은 현재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반려 동물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죠. 이미 선진국에서는 비만 등 각종 질환을 야기하는 사료 대신 다양한 반려동물 건강식품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빨리 확산되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음식은 이미 단순한 식욕 충족 수단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매개물이 되었습니다. 식품 산업은 이미 이에 맞추어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자신의 삶의 지향에 부합하는 '가치 소비'를 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