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나는 물류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물류를 잘 알지 못한다. 물류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운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물류 업무를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물류'라는 키워드를 더욱 공부하려 하고 경험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정보'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나도 이 '정보'를 통해서 물류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간접 경험을 하는데, 중요한 건 본인이 찾은 정보가 얼마나 양질의 정보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정보를 구별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컨텐츠의 진정성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진정성은 '경험' 이다.
<커넥터스>를 집필하신 엄지용 작가님은 물류 전문 기자로서, 종종 배민 커넥트로 음식 배달을 하기도 하고 직접 스마트스토어를 창업하여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생생한 현장 경험은 내가 그의 글을 '좋은 글' 로 구분 짓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물론 글 역시 매우 수준 높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러던 와중에 <커넥터스> 라는 책의 발간 소식을 접하게 됐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의 이야기는 '물류' 라는 한정된 주제 보단 산업과 구조,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물류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동작하고 우리와 관련지어지는지 풀어낸다.
'용어의 정의' 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용어가 정의됨으로써 새로운 개념이 생겨나기도 하고, 현상에 대한 더욱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물류와 이종(異種)간 융합이 활발해진 최근, 작가는 물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정의가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그에 대한 결론으로 "'물류'란 가치사슬을 관통하는 재화의 흐름" 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여기서 재화는 서비스로, 정보로, 돈으로도 치환될 수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의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 물류의 목표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가치사슬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동네 피자집의 매뉴얼이던, 맥도널드의 '스피디 시스템' 이던 상관없다. 그것을 행한 구성원들은 모두 '물류의 관점' 으로서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물류' 라는 개념이 갑자기 광범위 해진 것 같다. 이것이 용어의 힘이다.
작가는 책의 도입부에서 아주 현명하게 '물류'를 우리의 삶 옆으로 가져다 놓으면서 물류가 결코 우리와 무관한, 한 여름의 물류창고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까대기 치는 것만이 물류가 아님을 알려 주고 있다.
두 번째 장인 '공간의 가치'에선 기존 물류창고로만 대표되던 물류의 공간이 공유 거점과 MFC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관련된 업무를 해봤던 나는 아무래도 MFC와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다크스토어', 오프라인 소비자는 받지 않고 온라인 판매만을 전용으로 하기 위한 도심 내 소규모 물류 창고들을 이야기한다. B마트,쿠팡이츠마트 등 플랫폼사 뿐만 아니라 배달대행 기반 물류사들도 각자의 MFC 를 구축하며 '빠른배송'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MFC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장점은 현재로써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배송 모델을 구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태생적 한계로 인한 과다한 물류비용이다. 비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성 물류산업 구조로 봤을 땐, 0점짜리 답안지이다. 더군다나 적재공간의 한계가 있는 이륜 인프라로 사륜 수준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우선순위가 다소 바뀌었다고는 하나, MFC의 '돈'문제는 필연적인 숙제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물류로 '돈' 벌 생각을 내려두라 말한다. 비용 절감이 아닌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물류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투자 비용 대비 이상의 고객과 매출이 확보된다면, MFC를 따라다니는 '비용'귀신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이는 이종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검증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브커머스' 등이 그것이다.
흥미로웠다. 나 역시 MFC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모델이라 생각했다. 다만, 없어질 수 있는 모델 역시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비용의 주체에 대해 언젠가 플랫폼과 소비자가 또다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겠구나 라고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위 내용을 보면서 정말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답안지도 있진 않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세 번째 장에선 택시 물류, 공유 물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물류와 여객의 결합과 우리나라는 왜 이러한 글로벌 기준을 따라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최근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배달 팁에 대한 논란이 많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이러한 논란의 본질은 배달 음식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나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에는 예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주문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어, 플랫폼들은 이러한 이슈의 대응과 SLA유지를 위해 일반인 긱(Gig) 배송기사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 물론 모두 '비용'이다.
여기서 앞서 말한 공유 물류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화물과 여객의 유휴시간이 다르다. 음식 배달의 경우 점심과 저녁 시간대가 피크인 반면, 택시는 출퇴근 시간과 밤 시간에 피크를 이룬다. 서로 다른 피크 시간대를 이용하여 택시가 음식을 배달한다면 어떨까.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택시 물류의 허용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왜 이러한 변화들이 쉽게 체감되지 않을까. 대표적인 이유는 산업의 경직성 때문이다. 한국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과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분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객과 화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으며, '노란 번호판'으로 대표되는 영업용 번호판 역시 오랜 증차 규제(신규 발급 제한)로 인해 각 번호판마다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기존 산업의 플레이어들은 본인들의 번호판 가격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례로 카풀 서비스로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던 VCNC의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영역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분신자살까지 감행하며, 결국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나 역시 '타다 베이직' 서비스의 종료를 보며 누구보다 놀라고 가슴 아팠다. 단순히 서비스가 종료된 것에 가슴이 아팠다기 보단, 그 과정에서 산업에 대한 건강한 토의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 이로 인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스타트업 업계 전체가 한발 뒤로 물러서게 됐다는 점이 더욱 슬펐다.
내용이 잠깐 샜지만, 이 장은 택시 물류뿐 아니라 쿠팡 플렉스, 배민 커넥트와 같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도 상세히 나온다. 또한 이러한 플랫폼 노동과 긱 이코노미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효용과 더불어 '자유로운' 일자리에 함의되어 있는 양면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한다.
마지막 장에선 연결의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네이버의 물류 동맹군인 'NFA'와 GS리테일의 퀵 커머스, 동대문과 버티컬 커머스의 방법론, 크로스보더 풀필먼트까지 물류 산업 전반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연합 전선과 합종연횡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최근 산업 전반에서 '연합'이라는 단어의 필수성이 얼마나 커졌는지 역시 알 수 있다.
나는 책의 내용 중간중간에 나오는 생생한 현장 경험담이 너무 좋았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물류 현장은 사람과 까대기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류 산업 비전엔 대부분 설비와 자동화에 대한 개념이 주를 이룬다. 그럼 지금도 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전부 시스템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오히려 물류 현장을 바라보는 인식을 뒤집고, 비용 싸움에 매몰되어 있는 작금의 상황을 타개해야 하며 이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는 나 역시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더 이상의 덕평 물류센터 화재와 같은 사고도 있어선 안되고, 'N잡' 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오늘내일의 생존권을 걱정해서도 안된다.
물류 책이라고는 하나, 물류 책 같지 않다. <커넥터스>는 네이버와 쿠팡과 배민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