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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Jun 30. 2019

청소 유전자는 물보다 진하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얹혀살다 보니 밥만 축낸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순간은 내가 `청소`를 하는 순간이었다. 하루 온종일 앓는 소리를 하시다가도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돕겠다고 청소를 하면 할머니는 기특한지 웃으셨다. 칙칙한 걸레를 빨아오면 할머니는 안방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개어주셨다. 바닥을 박박 닦다 보면 뒤에서 옳지, 잘한다 같은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유일하게 마음이 편한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깔끔 지수는 남들보다 월등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벽 아래에 붙어있는 걸레받이까지 깔끔하게 닦아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쌓여있는 먼지까지 닦아야 완벽한 거였다. 어린 마음에 반항한답시고 몰래 닦지 않았는데 얼마나 혼내시던지. 청소의 기본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아야 하는 완벽함이라고 제대로 알려주시던 할머니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아빠도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청소에 일가견이 있었다. 항상 먼지를 뒤덮고 일하는 아빠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얀 운동화를 고집했다.     


"아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빨아야 하는데 하얀 운동화만 신는 이유가 뭐예요?"

"더러운 게 한눈에 보이잖아."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작업화를 빨았다. 토요일 주말 아침이 오면 아빠는 두, 세 시간을 화장실 바닥에 앉아 본인 신발과 엄마와 딸들 운동화를 한 움큼 집어 들어 빨았다.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나름의 정신 수양이었다. 생각의 정리,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수양,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막냇동생이 태어나기 전, 언젠가 부모님이 나와 둘째 동생만 집에 두고 장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뭣도 모르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주겠다는 생각에 둘째와 나는 청소를 했다. 그때 했던 모든 청소가 다 최악이었지만 그중 가장 처참했던 건 설거지였다. 미운 네 살 둘째와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일곱 살짜리인 내가 엄마 뒤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배웠던 설거지였다. 눈으로 봤을 때에는 분명 쉬웠는데!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아빠는 퐁퐁이 제대로 닦이지 않은 그릇과 거품이 가득하던 싱크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칭찬해달라고 배시시 웃는 딸들을 미워할 수 없었는지 엄마와 아빠도 따라 웃은 기억이 난다.

    

"설거지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아빠는 나와 둘째 동생을 싱크대 앞으로 불러 설거지를 가르쳐주셨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모두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거품을 깨끗이 닦지 않으면 몸이 아플 수도 있다고 말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아야 완벽한 거라고, 나보다 세배는 컸던 아빠 손으로 움푹 파인 숟가락을 뽀드득, 하고 닦아내는 소리는 일곱 살이었던 내가 들어도 완벽한 소리였다.


  마지막으로 설거지가 끝난 후에는 꼭 마른행주로 싱크대 주위 닦아내야 한다고, 그래야 물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설거지는 하루 이상 방치하지 않기. 먹으면 바로 설거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벌레도 꼬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성인이 되어 자취를 해보니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청소를 제때 해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사는 게 힘들고 지칠수록 청소는 강 건너 불구경 꼴이었다. 청소해서 뭐해, 그런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던 날이었다.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가 낯설었고, 상사에게 며칠을 대차게 까였고, 출퇴근 시간이 왕복 세시 간인 것에 지쳐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로 고꾸라져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행복해지는 거지?` 다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헤맬 때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왜 나는 나를 쥐어짜지 못해 안달인 거지? 당장 퇴사하고 여행이라도 갈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네 맛집이라도 가서 배를 채울까?


  그런데 이렇게 집이 개판인데 밖으로 나간다고 행복하겠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시궁창인데.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빨래와 정리 안 된 이부자리, 쌓여만 가는 설거지거리와 쓰레기. 이런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기어코 미루고 미루던 청소를 했다. 남들 모두 여행지와 맛집을 찾아 헤맬 때 청소로 행복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억울하냐고? 내 핏속에 청소 유전자가 흐르는데 어쩌겠나. 아무렴 어때! 행복하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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