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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May 26. 2019

꿈은 항상 나를 탓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나오는 꿈을 꿨다. 최근에 점을 보러 갔다가 십 년 뒤에 엄마가 크게 아플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그날 밤 내 꿈은 온통 엄마로 가득했다. 떠났으면 행복하게라도 살지, 일복이 넘쳐나서 쉬질 못한다니. 헤어질 때에도 온몸이 아파 고생했던 사람이었는데.


  꿈에 하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엄마였다. 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날고 있는 엄마를 보며 꿈에서도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안부를 물을 수 없으나 꿈에서라도 편해 보여 마음이 놓였다.


  꿈은 매번 그런 식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걱정이 잠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반복됐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나는 엄마를 바라보는 꿈을 꿨고, 싸웠지만 친했던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친구가 생각나면 그날은 친구가 꿈에 나와 우리의 연이 끊기게 된 이유는 모두 너에게 있다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다퉜음에도 그리운 애인이 지나간 인연으로, 가끔은 악연으로 나오기도 했고, 취직 준비를 게을리하는 내가 한심한 날에는 나태 지옥에서 쉼 없이 달리는 꿈도 꿨다.


  이렇듯 꿈의 나는 끊임없이 현실의 나를 염탐하고 공격했다. 단 한 번도 행복한 꿈을 꾼 적이 없었다. 색채도 없이 무의미하게, 언젠가는 새빨간 색이 가득한 채로 자극적으로, 꿈은 항상 나를 탓했다.


  그렇지만 잊힌 꿈에 대해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떠올릴 수 없는 잊힌 꿈들을. 꿈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드는 순간, 파생과 소멸이 계속해서 이뤄지는 순간, 잊지 않으려 일어나자마자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했지만 결국은 사라지는 꿈을.


  사라진 꿈에 엄마와 함께 훨훨 날고 있는 내가, 내 탓을 하는 친구에게 누구의 탓도 아닌, 그냥 우리가 여기까지인 것뿐이라고 말하는 내가, 뒤돌아선 애인의 손을 잡고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시켜주는 내가, 나태 지옥에서 벗어나 한적한 동산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는 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행복했을 내가 어디엔가 분명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꿈의 나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사라지는 꿈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깨어나는 순간 생생하게 떠오르는 꿈의 파편들에 행복한 내가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그게 어렵다면 꿈같은 거 꾸게 하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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