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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Apr 09. 2019

익숙함의 첫 단계는 새로움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좋다, 당연하겠지만.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다. 저렴한 샤부샤부 가게인데 다른 곳처럼 뷔페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명한 곳도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이 왜 이곳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달랑 샤부샤부만 나왔다. 특히 사장님의 시크함은 단골들도 가슴 시리게 했다. 그래도 그곳 특유의 매운 육수가 좋았고 작은 셀프바에 있는 싱싱한 야채들이 좋았다. 새로운 맛집 리스트를 찾아놓고도 발길은 샤부샤부 가게를 쫒았다.


  다녀왔던 여행지를 또 들리는 것도 버릇이었다. 제주도 여행만 다섯 번째, 통영도 세 번이 넘었네. 여행을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길을 잃지 않는 안전함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갔던 곳을 또 가고, 그러면서 편안함과 정겨움을 느꼈다. 제주도는 내 구역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지리를 꿰뚫고 있을 정도다. 여행 패턴도 각종 관광지를 찍고 오기보다는 늦잠 푹 자고 숙소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예쁜 사진을 찍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여행을 온 건지 요양을 온 건지 모르겠다던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을 사귀는 것에도 그랬다. 새로운 사람보다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도 컸지만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더 잘 챙기자. 그들과의 관계가 견고해지면 나 또한 완전해질 것이다. 친구들의 생일을 잊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이러다 영영 불완전하게 살아가다 주위 사람들이 다 떠나면 어쩌나 싶을 만큼 나는 사람을 챙기는 것에 굉장히 미숙했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잘 못 챙기는데 과연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안고 갈 수 있을까, 안고 가는 게 살짝 오버라면 감당 정도…?

 


그러다 일본 여행을 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의  단계는 결국 지독히도 싫은 새로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익숙해지는 속도의 차이를 남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너무나 느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많은 것을 어색해하고, 불편해했다. 새로움은 언제나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데려왔고 나는 열심히 그것들과 싸웠다.


  작년에 일본 오사카 여행을 혼자 다녀왔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여행지를 그것도 혼자 가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로움이라면 끔찍이도 싫어하는 내가 어쩌다 그곳까지 가게 되었냐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제가 삼월에 오일 동안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놨습니다. 그러니 이만 저를 놔주세요."


 재계약을 거절할 일종의 히든카드였다. 다행히 회사는 나를 놔주었고 나는 새로운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들 예상한 대로 나는 첫날부터 질질 짜야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길 한가운데 서서 대체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왜 나는 일본어를 구사할 수 없는지, 와중에 생각나는 영어단어는 왜 하나도 없는 건지, 구글 맵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버스 정류장에 앉아 펑펑 울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려고 간 곳이었는데 난 오사카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무작정 걸었다. 이 버스정류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는 내가 가는 버스가 있겠지. 외곽에서 도심으로 무작정, 믿을 건 두 발 밖에 없다는 듯 걸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엄청 큰 강이 있었다. 지금은 그 강이 교토의 카모 강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여기에 웬 냇물이 여기 있지.` 싶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보였고 새찬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나처럼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 사이에 드문드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나에게 뭘 그렇게까지 억울해하냐며 일본의 여행지가, 카모 강이 나에게 온갖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중이었다.


  그때부터 익숙함의 첫 단계는 새로움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울고, 아프고, 고통스러워하는 과정을 딛고 버틴다면 언젠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익숙함의 단계까지 닿을 거라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그렇게나 싫어하는 새로운 곳에서 삶의 방향을 찾았다.



 *샤부샤부 가게는 꾸준하게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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