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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Jan 13. 2019

캐나다 워홀 수기

2017 수기 공모전 자료

프로 워홀러!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워홀간 목표’와‘1년 목표’2가지를 설정하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워홀간 목표로는‘첫째’자신감 갖고 일 바로 잡기,‘둘째’워홀 이후 남미 여행을 위해10,000불 이상 Save하기,‘셋째’캐나다 여행 즐기기.

1년 목표로는‘첫째’내가 바라는 인간상의 사람처럼 생활하기,‘둘째 친구 100명 이상 사귀기,‘셋째’자기관리로 생활 습관 만들기.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생활한 덕에 누구의 통제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잘 채울 수 있었고 실제로 ‘목표치 이상으로 모두’ 이룰 수 있었답니다!

참, 뉴욕에서 1월 1일을 맞이 한 것, 약 6개월간의 중남미 여행을 하고 있는 것, 2달간 미 서부 로드트립을 할 수 있었던 것 등은 덤으로 말이죠.


1.  That’s WHY!

워홀 시작 후 일주일만에 트립어드바이저 1위 호텔에 일을 구한 것.

제가 살 곳이니까 일자리를 구함에 한국에서 취직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도서관에서 캐나다 관련 책들은 기본, 심지어는 서울과 부산으로 컨설팅을 가보기도 하고, 당연히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블로그 등을 통해 캐나다에 관한 자료들을 모았고 일할 때 갖춰야 할 자격증, 조건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출국 전 온라인 취득 가능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캐나다에 도착하자 마자 한 일은 영업장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죠. 수 백장의 Ctrl C + Ctrl V의 Resume를 돌리는 것 대신, 트립어드바이저 1,2,3위의 호텔에‘왜 지원하는지’각각 Cover Letter에 이야기를 다르게 담아 지원했어요. 그렇게 면접 날이 잡히고 준비로서 지원한 호텔의 위키피디아 정보, 호텔 사이트에서 방의 개수, 크기, 종류 등은 물론 호텔 내 각각 레스토랑의 정보와 메뉴들을 외웠고 밤 새 가상 면접을 해보았답니다. 그 덕에 인사(HR)담당자와 주방보조 부서(Kitchen stewarding) 담당자와의 2:1 면접임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갖고 면접에 임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유창한 영어가, 관련 업종의 경력이 없더라도 뜨거운 열정과 진심은 어디에나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었죠.


2.  나는 회색인간 이었다.

무채색, 어느 곳에 있어도 있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던 흰색과 검정색의 사이 어중간한 회색. 문과이과도 친구들에 맞추어, 학과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서. 나의 삶에 정작 나는 없었어요. 그러던 중 나를 알고 싶다고 생각해 입대 후 메모를 시작했고, 책을 읽으며 나를 공부했어요. 전역 후 다녀온 여행들 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갔고. 여행이라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구요. 그러다 여행과 해외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대하여 접하게 되었고 바로 준비했죠. 캐나다에 대하여 알아보다 멋진 자연경관의 동화 속 배경 같은 로키산맥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곳은 내가 1년간 살 곳이다”란 생각이 바로 들더라구요. 더 재지 않고 로키의 허브 도시 벤프로 가기로 결정했죠. 나의 색을 찾으러.


3.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는가?

제 경우 교수님의 반대, 지인들의 시선, 사회 시간에 벗어난다는 부담에 힘들게 결정한 워홀이었어요. 준비하는 많은 이들도 각자의 걱정을 갖고 있을 것 이에요. 워킹홀리데이에 정답은 없지만 자신이 정한 방향성을 잃지 않고 그려본 워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겠죠.

제 경우에는 타지도 아니고 타국, 나를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고 내가 하는 행동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과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상의 모습을 적기 시작했어요.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모두가 일자리를 갖는 것은 아니기에 언어는 도구일 뿐 사람이 바뀌어야 하겠구나 생각했기 때문 에요. 그래도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로 가기에 제 경우엔 어학원을 다니며 어학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제한 된 시간의 워킹홀리데이 국가에서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어학원을 다니며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은 싫었어요. 차선으로 학교의 교환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 보기도 하고 교내 외국인 프로그램에 참여했죠. 이런 작은 시도들이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자신감을 키워주었어요. 꼭 그 국가에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나 있더라구요.


4.  Canada Life – 변화

새 마음 새 장소의 시작, 모국어가 아닌 곳에서도 내가 살아 남을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한국에서는 반 오십이라며, 군대 다녀 온 아저씨취급을 받는데, 이곳에서 24살이라면 Baby, Super Young 하다며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사람들. 본인 나이는 30인데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모든 것을 시도해 본다는 친구. 정말 달랐죠. 한국에선 꽉꽉 채운 일정들과 그 사이 빈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심지어 주말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 조차 맘 편히 쉴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내 시간을 제시간으로 보낼 줄 모르던 내게 캐나다는, 벤프는 ‘여유란, 쉼 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었어요.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참여 가능한 벤프 프로그램들을 참여했어요. 영어 수업은 물론 요리수업, 생소한 춤 Zumba, 잘 알려지지 않은 국립공원의 트레일 코스를 달리거나, 세계적 호수에서 스케이팅을 하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며 말이죠. 엄격한 분위기가 아니라, 매일 안부인사로 마주하는 직원들, 날씨가 좋으면 그냥 나와 날을 즐기는 사람들. 이 속에 있다 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스쳐갔고. 저를 변하게 만들었죠. 실례로 일을 그만 두기 전. 추천서를 받고 세계적 체인의 호텔에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펙을 쌓으러 온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왔다는 생각으로 약 2달간의 미 서부 로드트립을 떠나거든요. 쉼표 속에서 쉼표를 또 갖게 되니 무엇인가를 경험할 때 받아드리는 마음이, 시선이 더 깊게 빨아드리는 것 같았달까요. 변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게 캐나다 서부까지 올라와 학교와 집으로 돌아간 직장의 친구들도 만나고. 캐나다 시작점 벤쿠버에 들르니 그 때의 막연한 걱정은 온데간데 없이 좋은 기억들만 보이더라구요. 6개월의 일을 하고 2달의 여행을 마치고 나니, 제 비자는 얼마 남지 않아 구직하기에 힘들 거라는 주위의 우려들이 있었지만 걱정하지 않았어요. 하기 나름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제 캐나다의 고향, 벤프로 돌아온 당일. 면접을 보았고 보기 좋게 그 다음날 일을 시작 할 수 있었어요


5.  Canada Life – 성장

지역 프로그램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벤프 신문에 제 사진이 실렸던 것, 캐나다에서 찍은 자연 풍경 사진으로 코엑스 전시에 제 사진을 걸었던 것, 워홀 자료로 보험사의 공모전에 당선 된 것, 자기관리를 위해 시작한 운동을 결과를 내 보자며 풀 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것, 출국 전부터 바라던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통신원이 된 것, 휴일이면 친구들과 벤프 국립공원 여행이나 트래킹을 다녔던 것, 이렇게 즐겁게 채웠던 것들을 나열하면 끝도 없어요. 그 중 미 서부 로드트립 중 제게 큰 인상을 준 경험을 이야기 해 보려 해요. 이미 깜깜한 밤, 동선에 있던 모든 캠핑장이 자리가 없던 상황 저녁식사라도 하기 위해 취사자리라도 구하려 할 때. 하루를 마감하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 조차 폐가 되는 것 같았고, 실제로 다들 본인들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는 게 싫어서 였을까요. 그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아 거진 포기를 할 때쯤. 한 커플이 흔쾌히 자리는 물론, 심지어는 그들의 불을 함께 써도 된다고 해주는 거에요! 그렇게 급하게 저녁을 해 커플에게 나누어 주고 더 이야기를 진행하니 본인들은 캠핑카에서 잘 예정이니 너희가 우리 자리에 텐트를 치고 자라고 하는 것 있죠. 누군가의 호의 덕에 참 운이 좋았던 일 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저는 크게 얻어 맞은 것만 같았어요.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이더라도, 두드리면 될 수도 있구나. 앞으로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게 된 것만 같아 개인적으로 참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음과 양의 조화처럼(?) 좋았던 기억, 성장의 거름이 되는 기억들만 있던 것은 아녜요. 워홀이 항상 화려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울고 싶은 날도, 고되고 짜증나고 하루하루가 불편한 날들도 많았죠. 혹여 걱정을 할까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는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타국까지 와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하며 서러워했던 밤들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죠.

그 중 힘들었지만 기억 남는 일로 호텔에서 주방 보조로 일할 때의 이야기 에요. 메인 레스토랑들의 주방이 아니라 호텔직원 전용 식당의 주방에서 가끔 일을 할 때가 있었어요. 마약 중독에 다혈질이라 다른 주방 직원들도 꺼려하던 담당 셰프는 그곳서 일할 때 마다 제 일을 간섭은 기본,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면박을 주고 하는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일쑤였지요. 그러곤 어느 날 직원식당 주방 보조가 일을 그만 두게 되고 그 공석에 제가 들어가게 되었어요. 정말 끔찍했죠 그렇게 일하는 환경도 분위기도 불편하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캐나다에서 생긴 자존감이 다 부셔져 버리는 듯 했어요. 주방보조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실을 아는 부서 매니저가 그 셰프를 징계까지 받게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그리곤 생각을 바꾸었죠, 극복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문제로 여기던 그를 친구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요.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캐나다에 와서도 한국식 일처리에 머물러서 왜 내가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싶었거든요. 하나의 성장 과제라고 여겼어요. 그러곤 그를 더 반갑게 맞이했고 소소한 이야기도 계속 걸고, 일도 더욱 열심히 했죠. 그리고 하나하나 이유를 물어봤어요“니가 원하는 스타일로 하면 더 편하니?”서로 조율도 하고 조금 손해 보는 것이 결국에는 내가 얻는 것이 많은 것이다. 하며 일 하다 보니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 후 매니저와 면담 중 알게 된 사실로 그 친구가 저를 크게 칭찬했다고 하더라구요. 미국 여행을 앞두고 일을 그만 둘 때에는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인사를 남겼죠. 군대에서도, 대학생활에서도, 어디서든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일 중에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사람 간의 문제이기에 언제나 또 해결의 여지가 있음을 안 생 경험이기도 하구요.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펼쳐 질 지 그 과정 속 에서는 모를 거에요. 하지만 그 결과가 좋으면 그렇게 헤매고 불안하던 시기도 밝게 비추어 지겠죠.

마음 가짐이 바뀌니 긍정적 선순환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던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잘 섞인 캐나다에서의 시간이었어요.


6.  고맙습니다 캐나다.

1년, 흔히들 말해요 눈 깜짝 할 시간이라고. 그만큼‘엄청 크게 변했다!’랄 것은 없어요. 하지만, 이 1년은 제가 제 손으로 꽉꽉 채운 시간이었기에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답니다!

캐나다에서 시간을 채우는 동안 이전에는 지나쳤을 것들, 따사한 햇빛을 받을 줄 알며, 매일 매일 있는 석양을 반길 줄 아는 것. 이렇게 하루하루를 감사할 줄 아는 시간으로 채우다 보니 절로 한국에서 치열하게 달리기 위해 씌워진 경주마 가리개가 조금은 벗겨진 것 같아요. 하나하나 자력으로 준비하고 그것들을 성취하며, 묻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되지 않을 것 같아도 두드려보는 최현수가 되면서 이전의 허수아비처럼 말로만 세워 둔 최현수가 아니라, 정말 저 최현수를 믿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요. 제 전공은 소방안전공학과 인데 호텔에서 일하던 중 오류로 비상상황이 났을 때 안전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걸 보고 한국에서 호텔과 같이 사람을 많이 수용하고 내부 시설이 많은 특수건물에 안전관리 전문직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전공에 관심이 깊어지기도 하고. 캐나다 역사는 우리나라보다 한참 짧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더 관리를 잘하는 모습에 우리나라 문화재의 안전관리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어 자연히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할 이유를 가질 수 있었어요.

참 감사해요, 워홀의 시간을 갖지 않았더라면 흐르는 대로 제가 어느 일을 하고 싶은 지 모른 채 학점이나 스펙 관리만 했을 텐데.

이 시간을 통해 진로를 그려보는 것은 물론, 사회 알람에 맞추지 않고 내 인생 시계로 행동하고자 하는 힘이 생겼어요. 인생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것 같달까요. 이 덕에 휴학이 사회 시간에 남들보다 늦춰진다는 것이 아니라, 내 미래를 벌었다 싶어요. 최근엔 넌 너의 색이 있다는 말도 꽤 듣기도 하구요. 적지 않은 변화이죠?


마치며, 새 시작을 앞두고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쉽게 하라고 말은 못 해요. 하지만, 걱정거리를 해소하면 어느새 기억 속으로 사라지죠. 밥 걱정처럼. 살며 밥은 꼭 먹어야 해요, 그런데 남의 눈이 밥 먹여주지 않죠, 혹여 누군가 입 앞에 밥 숟갈을 떠 준다고 하더라도 씹고 소화하는 건 각자의 몫 이에요. 천천히 먹는 것, 빨리 먹는 것, 많이 먹는 것, 적게 먹는 것, 모두 다 우리 마음이고 몸에 맞게 먹어야 하죠. 남 눈치 보며 빨리 먹거나 많이 먹어 체하지 말고, 천천히 먹거나 적게 먹어 배 굶주리지 말고. 먹기 싫다면, 속이 좋지 않다면 잠시 먹지 않아도 되죠. 다음에 맛있게 먹으면 되니까. 각자의 양만큼, 각자의 속도와 기호에 맞춰 먹는 거에요. 이렇게 매일 식사는 요것저것 재며 까다롭게 먹듯. 우리가 꾸려갈 앞으로의 날들도.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 먹는 식사처럼 각자 맛있게 채울 수 있도록 해요!”


참, 다음 달. 호주로 한번 더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답니다! 맛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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