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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Aug 05. 2021

난감하네

일상의 기억 -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를 불안하게 만들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해준 어처구니없는 판국이었다. ‘언젠가는 종식되겠지’ 하는 마음조차도 예상을 뒤엎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코로나 시대와 함께하고 있다. 마음마저 거리를 두게 하는 답답한 일상임에도 소소한 기억들이 생각난다. 올봄 함께 모임을 했던 후배가 고인이 되었다.  명복을 빌며 슬픈 마음으로 추억을 반추했다.

 20여 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갑갑하고 초조하다. 10분 정도 미리 약속 장소에 가는 버릇이 있어 언제나 일찍 집을 나선다. 매달 갖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5, 6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시간 여유가 있는 터라  안심하고 기다리는데 안내판에 ‘차고지 대기’라는 빨간불이 뜬다. 전광판 안내가 오작동 된 것일까? 염려하던 중 내가 탈 버스가 14분 뒤에 도착한다는 숫자가 보인다. 어제저녁 비 온 뒤부터 오늘 날씨가 갑자기 차갑다. 오늘 약속 장소는 신갈 광장에 있는 돈가스 클럽이다. 

 지난해 이맘때였다. 오늘같이 미리 집에서 나와 20여 분 전에 도착했다. 광장 주변으로 나란히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찼고, 중앙에는 많은 차가 자리 잡고 있다.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들어가려다 전에도 둘러보았지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광장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동료들을 기다리며 입구에 서 있는 메뉴판을 살폈다. 오늘 나를 만족시켜줄 돈가스가 무엇이 있을까. 이름만으론 어떤 돈가스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선택이 쉽지 않았다. 

 메뉴판을 여러 차례 위에서 아래로 훑다가 '뚝배기'라는 친근한 이름에 눈길이 갔다. '얼큰 뚝배기 돈가스' 괜찮았다. 뚝배기에 담긴 얼큰한 돈가스라니 멋진 비주얼이 떠올랐다. O.K! 오늘은 요놈이다. 뚝배기 앞에 놓고 투명한 잔에 맑은 빛을 띤 소주 찰찰 부어서 쭉 들이켜고 돈가스 한 점 집어 드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현직 교사 때 달마다 셋째 주 화요일에 만나던 멤버들이 퇴직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고 있다. 개인 사정으로 요즘은 다달이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얼마 전 큰일을 당해 육신이 마음대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선배, 나와 동년배 한 사람, 힘든 역경을 딛고 병마와 싸우는 후배가 만남의 자리를 갖는다. 오늘은 넉 달 만에 모이는 자리이다. 선배는 아직 몸이 불편해서 부인과 함께 온다.


 각자 음식을 시켜야 하는 시간이다. 선배와 후배는 왕돈가스와 생선가스를 주문했다. 5, 6년 전만 해도 서로 권커니 받거니 주흥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이제 금주 상태이다. 함께 술잔을 부딪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나와 동년배는 반주 한 잔 정도를 늘 했다. 오늘의 메뉴로 선택한 안주가, 아니 식사가 얼큰 뚝배기 돈가스 아닌가? 점심이긴 하지만 거르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뚝배기에 얼큰한 국물을 뒤집어쓴 돈가스에 나는 빠져 버렸다.                

 선배와 후배에게 미안하지만 “한잔해야지?” “그럼, 해야지!” 즉문즉답이 오가며 둘이서 ‘두꺼비 한 마리’를 시켰더니 병맥주만 판단다. “뭐, 뭐라고?” “아니 이럴 수가!” 하릴없이 “난감하네!” 하는데 후배가 “맥주라도 한잔 하셔요.” 한다. 얼큰함에는 소주가 제격인데 어쩔 수 없이 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대로 먹을 만하던 얼큰 뚝배기 돈가스의 맛까지 깨져 버렸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김빠진 맥주처럼 맹맹한 심사가 꼬였다. 점심 후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달 보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한밤중 요 위에 세계지도를 그려놓고 새벽에 깨어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막차를 놓쳐 발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서라도 집에 가려던 절박감,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 글 다 쓰고 저장하려다 날아가 버린 허탈함. 인생 살면서 두려움이나 절박감, 막막함에 빠져 난처했거나 어처구니없는 경우에도 가는 세월은 우리 모두를 지혜롭고 여유 있게 성장케 한 것이 아닐까. 어디 난감한 일이 인생살이에서 없겠는가? 툴툴 털어가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신갈 광장 돈가스 클럽에서 난감했던 허탈감을 떠올리니 살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한때 유행을 따르는 국악 한 소절, “용왕, 별 주부에게 명하기를 토끼를 잡아 오너라 허니, 이 말 들은 별 주부 말 허기를… 이것 참 어허 난난난난 난감하네.” 가사를 웅얼거리며 마음마저 거리를 멀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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