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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수 Jun 26. 2022

#15 - 뒤늦은 후각상실의 시대

코로나는 다 나았으나 후각이 마비되었다. 샤름엘셰이크의 리조트에 묵다.

운하를 못 본 것도 모자라 샤름엘세이크로 가는 버스 편까지 사라지다니.  수에즈에서 카이로까지 세 시간, 카이로에서 샤름엘셰이크까지 일곱 시간. 또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게 생겼다. 바로 가면 네다섯 시간이면 될텐데.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또 버스를 타는 수밖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터미널 근처에 있는 이집트들이 샌드위치라고 부르는 음식을 파는 가게에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이집트식 샌드위치는 길쭉한 빵을 반으로 갈라서 향신료를 넣고 자작자작하게 볶은 양고기 조각을 넣은 것이다.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기는 해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맛이라 자주 사 먹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양고기 누린내가 저언혀 나지 않는 거다. 이상하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게다가 맛이 있다가 만 느낌이었다. 짠맛밖에 안 느껴지는 거다. 코를 대고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 후각이 마비된 것이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확인한 게 벌써 1주일도 더 지났다. 몸 상태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감염된 직후에도 냄새는 멀쩡히 맡을 수 있었고, 어제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와서야 후각이 마비되다니. 혹시나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다. 다른 이집트식 샌드위치 가게엔 늘 양고기 누린내가 가득 퍼져 있었는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대충 입안에 욱여넣고 가게를 나왔다. 혹시 아직 코로나19에 걸린 상태인가 싶었다. 벤치에 앉아서 자가검사 키트로 감염 여부를 검사해 보았다. 결과는 한 줄. 후각 마비가 시간차로 오다니 정말이지 지독하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다. 후각이 사라지니 음식이 맛이 없었다. 여행에 있어서 그 나라만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난 당분간은 음식의 맛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왠지 이게 다 수에즈의 저주 같았다. 정말 수에즈에서는 되는 게 없다.

좌: 카이로로 돌아가는 버스는 이집트에서 타 본 버스중에 가장 낡았다. 우 : 바퀴가 빠져버린 가여운 미니버스.

버스는 세 시간 만에 카이로역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거리의 사나운 소음이 나를 감쌌다. 그런데 매연냄새가 나지 않았다. 후각이 마비되니 좋은 점이 하나 있기는 하구나. 일단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인 타흐리르 고버스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삼십 분 후 쯤 샤름엘셰이크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표를 사고 나니 배가 고팠다. 냄새를 못 맡아도 배는 어김없이 고프구나. 하긴 후각 상실의 충격으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긴 했다. 마침 매표소 건물의 지하에 매점이 있었다. 매점에는 어린 삼 남매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빵이나 먹을까 싶어 둘러보고 있는데 인도미 컵라면과 전기포트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뜨끈한 국물이 당겼다. 혹시 잘 이야기하면 따뜻한 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삼 남매에게 손짓 발짓으로 따뜻한 물을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나를 위해 물을 끓여 주었다. 착하고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서 라면을 먹었다. 불행히도 짠맛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국물이 들어가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서 살 거 같았다.  막내 꼬맹이가 자기 스마트폰을 들고 와서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귀여운 녀석. 물도 줬는데 내가 사진 하나 같이 못 찍어줄까. 기념으로 내 휴대폰으로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얘들아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다흐리르 고버스 스테이션 지하의 매점꼬맹이

버스는 왔던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대각선 앞에 앉은 어떤 남자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를 했다. 그거도 큰 목소리로. 그 목소리가 너무 거슬렸는데 막상 그의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런 거 보면 이집트 인들은 마음이 참 넓구나 싶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돌아가면서 조용하라고 뭐라 했을 텐데.

좌 : 내가 탈 버스 우 : 세시간동안 큰소리로 통화를 하던 양반.

세 시간쯤 지나니 수에즈 운하를 건너갈 때 즈음이 되었다. 군인들이 버스를 멈춰 세우더니 검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내려서 짐을 모조리 꺼내 들고 일렬로 죽 서서 짐 검사를 받았다.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시설이기 때문에 건너기 위해서는 내국인 외국인 할거 없이 무조건 짐 검사를 받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테러범이 혹시나 운하를 터뜨려버리면 이집트는 나락으로 갈 것이고, 해운이 마비되어서 세계 경제도 함께 나락으로 가버릴 거다. 뿐만 아니라 수에즈 운하는 샤름엘셰이크와 최종 목적지인 다합이 있는 시나이반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시나이반도는 얼마 전까지도 폭탄테러가 일어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수차례 검문검색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짐 검사 때 꽤나 긴장했다. 내가 테러를 저지를 계획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혹시라도 군인들이 사소한 거로 트집을 잡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인이 저 끝에서부터 승객들의 짐을 꼼꼼히 검사하며 다가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배낭을 연 채로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나는 무고한 여행객일 뿐입니다’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배낭에 손을 한번 쑥 집어넣더니 옆사람에게 가버리는 거다. 별 트집 잡히지 않고 지나간 게 참 다행이긴 하지만 어쩐지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내가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

입수보행하는 검문소의 군인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혹시나 수에즈 운하를 건너면서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버스는 지하터널로 운하를 건넜다. 안타깝다. 결국 수에즈 운하는 제대로 못 보는구나. 그래 뭐 이렇게 이집트에 한번 더 올 구실을 만드는 거지. 그러고 보니 시나이반도에 접어들면 아프리카를 벗어나게 되는 거다. 사람들이 이집트는 아프리카랑 별개로 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렇고. 그런데 막상 시나이반도로 접어드니 내가 아프리카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나의 첫 아프리카 여행도 끝이구나. 감상에 젖어 해가 저문 어두운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샤름엘셰이크에서 묵을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고다 앱을 켜고 샤름엘셰이크를 검색하니 마침 8만 원짜리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가 특가로 하룻밤에 3만 원가량의 가격으로 나와 있는 거다. 냉큼 예약했다. 샤름엘셰이크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되었다. 생각보단 빨리 온 듯하다. 원래 7시간 이상 걸린다고 들었는데 한 6시간 만에 온 거 같다. 터미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택시기사들만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숙소까지는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반값으로 깎았다. 왠지 그 금액도 조금 바가지를 쓴 거 같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숙소는 방갈로 형태의 집이 수영장을 중심으로 죽 늘어서 있는 그런 전형적인 해변 리조트였다. 이집트에서 묵은 숙소 중 가장 좋았다. 이전에는 늘 어디 한 두 군데에 문제가 있었다. 에이컨이 나오다 만다거나, 바닥이 삐걱댄다거나. 그런데 여기는 어디 한 군데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역시 돈이 좋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욕조가 있었다. 이틀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관절이 삐걱거리던 나는 욕조를 보니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에어컨을 최대한 강하게 틀어놓고 더운물에 몸을 담갔다. 아까 스낵바에서 가져온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수에즈에서의 불운과 삽질이 모두 보상되었다. 내일은 다합으로 가는 날이다. 다합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 하루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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