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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다 Jul 21. 2023

나도 그 교사일 수 있었다

초등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다. 나는 극단적 선택이나 우울로 인한 안타까운 선택같은 에두르는 말이 아닌 ‘목숨을 끊었다’라고 쓰고 싶다. 교실에서 발견됐다고 했을 때 나는 이 죽음이 분신자살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1학년 학생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러면서 학부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이 일로 교사카페에서는 난리가 났다. 내 마음도 동요가 일었다. 교사라면 익히 알 수 있는 그 뒷사정에 모두가 울분을 참고 있다가 뻥 하고 터져버린 것 같았고 더 크게 아주 더 크고 요란하게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런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올해가 편안하다면 그것은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지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2년 차 즈음에, 첫 담임을 할 때 A를 만났다. 곧 터질 것 같고, 수시로 터지는 그런 폭탄 같은, 정서가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학생이었다. 분에 못 이겨 주먹으로 벽을 쳐 손을 다치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찾고, 위아래 볼 것 같이 쌍욕은 기본인 데다가 여성혐오가 대단했다. 상황이 이 쯤되니 반에서 계속 분란이 있었고, 내내 그 학생이 벌인 사안을 처리하기에 혼이 나가 있었다. 설상가상 그 아이와 초등학교 때 내내 앙숙이어서 크게 한 판 하고 전학까지 갔었던 B가 운명처럼 같은 반이 되어 그 아이 못지않게 교실에서 깽판을 쳤다. 나는 시시때때로 난리를 치는 A를 감당하며 어느 날은 나에 대한 분노가 치달아 학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벽돌로 내 뒤통수를 불시에 내리칠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일로 A의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는 “그 아이는 내 자식이지만 그럴 수 있는 아이예요. 전 비슷한 일 여러 번 겪었거든요. 운전 중에 머리채가 잡혀서 사고가 날 뻔했었어요.”라고 말해서 화들짝 놀랬었다.



3월 2일부터 이듬해 2월 13일 종업일까지 매일매일 꼬박꼬박 빠짐없이 꽉 차게 괴로웠다. 여름방학이 너무 간절해서 방학직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억울하게 방학을 병원에서 보내면 어쩌나 걱정을 했고, 너무 간절히 기다리는 내 자신이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의 늙은 거지 같았다. 그러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 조용히 증발하고 싶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오랜만에 통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하고 울분을 토해냈던 게 문득 생각이 난다. 엄마는 놀래서 “당장 그만둬라 “했지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내가 아닌 타인은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매일 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하는데도 지금 바로 핸들만 꺾으면 이 괴로움은 끝이 난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무서웠다. 옥상달빛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라는 노래를 듣다가 정말 내가 실행할 것 같아 얼른 노래를 껐던 기억도 생생하다.



초임이나 다름없었던 내가 학교에 근무하며, 그런 상황 중에 놀라웠던 것은 학교시스템과 주변교사, 교감교장 하나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뭣도 몰랐던 저경력 교사여서 도움을 받을 줄도 몰랐지만 내가 이런 무방비에 있는데도, 평온한 반 담임을 맡은 샘은 선을 그으면 그만이었다. 당시에는 주변의 샘들이 너무나 야속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구조적으로 돕기 힘들고, 도울 방법도 능력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당장에 내 옆자리 샘이 생을 달리 한 샘처럼 비슷한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으면, 같이 욕이나 해주고 토닥여줄 뿐이지 샘을 구해줄 방법은 나도 모른다. 이건 정말 못할 짓이라고 다 같이 죄를 짓고 있는 마음이라는 고. 고개를 드는 그 마음을 억지로 구겨 넣을 뿐일 것이다.



A는 명백히 정신질환이 있었고 그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 나는 팔 굽혀 펴기 정도의 신체단련을 하며 총칼이 쏟아지는 중에 맞서는 것 같았다. 학교에 있는 위클래스 상담샘과 암만 상담을 해봤자였다. (물론 나로선 학생을 잠시라도 상대해 주면 너무 고마운 상황이었다) 암환자에게 빨간약 바르는 수준이라고 할까. 그런데도 부모에게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만 하고 필요시 약처방이 필요하다고 권고만 할 수 있었다. 내 자식 환자취급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는 정상입니다. 하고 말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다. 왜?! 쓸데없어 보이는, 과하다 싶은 법정의무가 그렇게 많은데 교사와 같은 교실의 아이들이 이렇게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게 의무가 아니라니! 너무 이상하고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막말로 학생 한 명이 ‘내일 칼 들고 와서 다 죽여버릴 거야’하고 (A가 실제로 한 말이기도 하다.) 다음날 칼 들고 교실에 온들 할 수 있는 건 교사가 몸 바쳐 아이를 막고 그 부모에게 전화 걸어 그날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끝이다.



왜 대다수의 학생의 안전과 권리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건가? 내 자식이 그 반이 아니면 괜찮은가? 우리가 언제 그렇게 아량과 배려가 그렇게 있었던가? 이건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식이 당장에 칼부림에 휘말릴 수도 있고 일 년 내내 폭력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일 년 내내 지치고 무력한 선생님과 함께 해야 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정의와 규칙이 모두 무너진 처참한 환경에서, 술 취한 망나니가 칼자루 쥐고 흔드는 가운데, 모두가 구석에서 숨죽여 지내는 그런 곳에서 지내야 한다. 그게 괜찮은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면 되니까? 친구는 공부 잘하고 조신한 애 따로 사귀면 그만인가? 그 점이 너무 이상하다.



- 문제행동 발생 시 교실에서 즉시 분리하고 학부모가 와서 데려가게 해야 한다.


- 교사는 문제활동 발생 시 경찰이나 관리자(교감, 교장)에게 인계 후 교실에 남아 있는 대다수의 학생의 안전과 학습을 책임져야 한다.


- 정신적 문제를 가진 학생은 의무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의료인이 단체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했을 시에만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독감, 수두, 코로나 같은 법정감염병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문제행동, 질환이 아니더라고 전혀 규칙을 따르지 않고 안전과 질서를 위협하는 한 명에게는 제제가 없는 것인가?)


- 학교 내 전화, 외부전화는 의무적으로 녹음해야 하고 폭언 시 작은 벌금이라도 불이익이 있어야 한다.



소수의 프로민원러 학부모, 소수의 문제 학생, 그 수가 점차로 소수가 아니라 걱정이긴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방점을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 보호에 두고 싶다. 그러면 자연히 교사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 숨진 교사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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