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3년에 첫번째 대학을 가을에 졸업하고 한 동안의 방황을 하다가 2005년에 수능을 보고 대학에 다시 입학을 했다. 그 전에 1998년에는 초등교사가 되고 싶어 교대에 지원했으나 IMF로 갑자기 높아진 교대인기로 불합격을 하고 이듬해도 또 불합격을 해서 차선으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순수하게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고 남을 제법 잘 관찰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전공을 선택하는데 있어 부모님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셨다. 둘째여서 적당한 무관심 속에 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내 진로에 대해 여러 삽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래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나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지만 난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 바탕이 고지식한 면이 있고 학교라는 시스템에 어떤 안정감을 느꼈었도,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른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사회적 정서가 이 직업에 대해 호의적이다 라는 의미이기도 하니 그런 우호적 정서 속에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심리학을 전공했던 나는 졸업 후 다시 수능을 준비하여 사범대에 입학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진로고민을 하다가 고3때 가고 싶었던 길을 다시 선택하였고 IMF이후로 5-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교대나 교사 인기는 여전했다.스물여섯의 나이로 신입생이 되었던 나는 꽤나 비장했다. 첫번째 대학 때 친구들이 하이힐을 신고 광화문에 위치한 국내 굴지의 기업에 입사하여 사회초년생이 되었던 그 때, 나는 다시 대학에, 그것도 스카이가 아닌 그냥 그런 대학에 들어왔다는 것이, 더군다나 미래가 보장된 교대가 아닌 사대에 들어왔다는 것이 한없이 쭈그리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잠용처럼 대학의 낭만따윈 개나 줘버려란 심정으로, 내가 입학한 이 곳은 대학이 아니라 노량진입시학원이다 라는 마음으로 시험준비에 매진했다.
내 점수와 여건에 맞춰 정하다 보니 영어교육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어와 나는 한낱 교과와 수험생 정도의 맹숭맹숭한 관계였다. 하지만 두번째 대학에 전공이 된 이상 싫든 좋든 너(영어)와 나는 내 인생의 중대 시점에 우리 둘은 힘을 합쳐야만 했다. 매 년 10월 정도에 그 해 임용고사에 과목별 몇 명의 교사를 뽑는지 발표를 했는데 어떤 해는 40명, 어떤 해는 10명으로 들쭉날쭉해서 심란했다. 내가 무슨 수로 스카이 출신과, 해외 거주 경험있는 사람들과.. 그 누적 인원들을 어떻게 제낀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택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극적으로 70명 뽑는 해,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치른 그 해, 심지어 주당16시수 시간강사도 하고 부진아 수업도 하고 , 결혼준비도 병행한 해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4-5년간의 시간을 남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에 쪼글어 들어있던 어떤 묵은 체증이 일시에 내려가는 듯 했다.
많은 이의 축하 속에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즈음 3-4년, 5-6년까지도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교사가 꽤 나올 때였다. 2011년인가 체벌이 없어지고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우연인지 어떤지 2015년 그야말로 개같은 한해를 보내고 이런 그지같은 일을 어찌 선호직업으로 뽑힌단 말인가 이건 대단한 오해이지 기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 돌아돌아 이 일을 택했지만 나는 대단히 잘못된 선택을 하였고 순전히 내 잘못이 아니지만 불운이 겹쳐 불명예스럽게 일을 그만둬야 할수도 있다고 거듭 생각하던 해였다. 그것이 뒤늦게 첫담임을 한 해였다. 시작이 지독하니 그 이후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수월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긴 출퇴근, 어린 아이 둘 육아, 기타 등등으로 하루하루 산봉우리를 하나씩 타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견디며 살았다. 자식들이 조금 더 크고 손이 덜 가고 학교 일도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나아진 것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아서라는 것, 언제 불행이 와락 닥칠수 있다는 점은 늘 마음먹고 있다. 어쩌가 교사라는 일이 사회 밑바닥 일처럼 되었나, 하수구 같은 일이 되었나 마음이 쓰다. 임용13년차. 고작 13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 놀랍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Imf때 지원하기 시작하여 다시 한창 인기 많을 때 나는 이 일에 뛰어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난 정말 원하는 일을 골랐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혹시 남이 원해서 원했던 건 아닌가? 왜 교사를? 왜 영어를? 당시 핫한 두 가지 키워드를 섞어 내가 고른 것은 아닌가? 그래서 힘차게
레드오션에 뛰어든게 아닌가.
가서 또 울겠지만
영어는 아닐 수 있지만 교사는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아는 직업의 세계가 그 정도라 그렇게 꿈을 품어서일지 모른다. 아직 깨닫지 못한 나의 능력이 다른 일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긴긴 고민과 역시 긴긴 여정 끝에 얻은 일인데 혹시 다른 일은 어떤가? 내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뭐가 좋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이번 주에도 집회를 나갈 참이다. 또 울겠지. 바라는 것 없이 순수히 내적 동기로 수도자나 사회활동가나 개척교회 목회자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경제적 이득 없이 가진 능력을 활활 불사르고 있는데 그것을 짓밟고 있으니 이제는 투사가 되라는 건가. 사뭇 비장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