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부터 준비한 일명 부산 수학여행이 끝이 났다. 과연 그날이 올까 했는데 그날이 기어코 왔고 또 지나갔다.
1-2학년의 수련회를 위한 수련원 예약 날짜가 잡혀 있어서 학사일정상 3학년도 같은 기간에 수학여행을 가야 했다. 그런데 그 날짜에 대체공휴일이 껴서 졸지에 공휴일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꼴이 됐다. 대체공휴일 확정 공문을 기다리고 학부모 동의서를 보냈다.
학교가 불공평해서야 되나요?
억지로 구색을 맞춘 소규모여행이다 보니 같은 행선지여도 숙소를 두 군데를 잡아야 했다. 같은 등급의 두 개의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두 군데라면 분명 한 군데는 조금 더 좋고 다른 곳은 덜 좋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것이 그렇게 문제 될지 몰랐다. 활성화 위원회를 통해 숙소 이름이 공개되고, 학생들에게도 알려지고 난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인지 한 군데는 좋고 다른 한 군데는 후지다고 말이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강하게 항의하는 민원 전화를 받기도 하고 담임선생님들도 크고 작게 같은 불만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됐다.
- 업체에서는 같은 급의 두 군데의 숙소는 같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 단체예약이라 인터넷상에 가격차이가 다소 있을지라도 동급의 호텔이라면 같은 가격으로 예약한다.
- 첫날 숙소를 도착하자 더 좋다는 숙소의 학생들이 숙소 자랑하는 인스타 포스팅을 하며 반대편 학생들의 속을 긁었다. 이어 반대편 학생들은 우리 숙소 구리다는 비난의 포스팅을 올리고 학교욕까지 써댔다.
-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다. 공짜로 주어줘도 상대방이 더 좋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불쾌해한다. 아니 똑같은 것을 줘도 상대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영어로도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건너편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착시를 바로잡아 주기 위해서 고대로 보여줘야 할까.
- 저절로 잦아지도록 기다려야 하나
- 왜 어떤 경우는 불합리해도 받아들이고 어떤 경우는 합리적이어도 불쾌해하나?
출발 1주일 전부터 매일 날씨를 확인했는데 처음에는 2박 3일 중 3일 내내 부산에 비예보가 있었다.
“샘 저희 가는 날 쭉 비 온데요 저희 망했어요.”
이것은 악몽인가 했다. 그리고 2일로 줄었다가 당일 첫날 하루만 비가 왔다. 그런데 문제는 좀 많이 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 다음 캐리어를 끌고 높은 습도 속에 15분 정도를 걸어 관광버스를 타러 간 것만으로 힘들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케이블카를 타고 해변열차를 탔다. 잔뜩 흐리다 못해 비가 쏟아지는 상황. 저기압에 비릿한 비 비린내가 났다. 경치를 본다기보다 견뎌내는 쪽이었으나 이미 학생들이 충분히 짜증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울상을 지을 순 없었다. 얘들아 저기 너무 멋지지 않아? 아- 빗방울 때문에 안 보이는구나..
- 첫날의 점심은 쿠우쿠우 초밥 뷔페, 저녁은 명륜진사갈비 뷔페였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나 훌륭한 메뉴였다. 그러나 중학생들에게는 뷔페에서의 예의범절이 아직 부족했다. 주어진 음식을 앉아서 먹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자- 뷔페. 그것에는 여러 전략과 테크닉이 필요했다. 먼저 음식을 덜어올 때 오고 가는 횟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나름의 먹을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어떤 것을 먹어야 든든할지, 본전을 뽑을 만한 음식인지를 고려한다. (어른이라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섬유소 등도 고려할 것 같다) 과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먹을 양만 떠온다. 먹을 때 흘리지 않게 먹도록 조심한다. 뷔페의 특성상 무한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음료도 이것저것 다 떠오기도 하고.. 피곤함과 지루함이 합을 맞추던 중학생들은 일부 음식을 섞어 서로에게 먹어보라고 권하고 친구를 불러 모으고 먹다 흘리고 크게 웃고 한마디로 고성방가 시전이었다.
아.. 부끄러웠다. 여러 번 주의를 줘도 소용없던 차에 옆테이블의 일반 손님이 항의를 하고 그것도 여러 번, 동료샘에게 직접 불쾌함을 표현했다.
저도 애들 가르치는 사람인데 여기 샘들 애들 관리를 너무 못하시네요
저녁으론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던 고기뷔페를 갔다. 초밥뷔페보단 조금 나았으나 정신 산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모두가 일어나 모두가 음식을 담고 모두가 허둥지둥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주 일부이지만 세네 명의 학생들은 고기를 구울줄 몰라서 먹지 못했다고 했다. (뭐라고?!) 그래서 옆테이블에 가서 서서 몇 점 얻어먹었다고 했다. (아 그래서 그렇게 서 있었구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 있는 사람, 고기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음식이란 앉아서 먹는 거야. 가져가면서 먹는 거 아니야. 이건 아이챌린지 호비한테 충분히 배웠을 텐데. 사장님은 “우리 학생들이 일반 손님들에게 너_무— 피해를 주니까 허허허”라고 얘기하셨다. 그 가게 주방에 쓰여있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손님이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 (단, 기본적인 매너가 장착되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자 다시 점심 쿠우쿠우 식사가 끝날 즈음으로 돌아가보겠다. 그때가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시련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몇몇 손님이 주인에게 여러 차례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보았고, 애들은 배가 불러도 산만하긴 매한가지였다. 차이라면 식전 짜증 산 만에서 식후 기쁨산만? 그때 창 밖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버스까지는 걸어서 10분 번잡한 거리를 지나야 했다. 학생들은 서울에서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캐리어 안에 넣고 식당에 온 상태였다. 오 마이갓.. 급하게 안전요원샘에게 차에서 우비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을 했다. 우비를 품에 안고 올 안전요원샘을 기다리며 업장 종업원들,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있어야 했다. 그 눈총을 모두 모아 에너지를 만든다면 자동차도 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우비 도착.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비를 버스럭거리면서 입고 우비가 들어있던 봉투와 설명서는 아무 데나 버렸다. 차례로 나가도록 안내하고 급히 학생들 테이블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는데 테이블 위아래가 너무 지저분해서 너무 부끄러웠다. 디저트로 먹는 아이스크림 기계 아래와 바닥에는 녹은 아이스크림이 하얀 똥처럼 잔뜩 퍼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오며 요리사와 아르바이트생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나왔다.
그 꿉꿉한 중에 케이블카와 해변열차를 탔다. 그 사이 야외로 이동할 때 어김없이 비바람을 뚫고 이동해야 됐다. 학생들도 샘들도 설레서든 긴장되서든 걱정되서든 지난밤 잠을 잘 못 잔 채 7:15에 전원 수서역에 모이지 않았나. 그렇게 부산까지 와서 버스도 타고 비도 맞고 여기저기 움직이지 않았나. 한껏 피로가 몰아치면서 이렇게 이동도 하고 불쾌한 상태로 대기하며 줄도 서지 않았나. 그러니 일부는 이게 무슨 오십얼마짜리 수학여행이냐. 돈을 받고도 하지 않을 체험이다.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오늘은 그런 날이니까. 욕도 군소리도 많이 먹어서인지 영 입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어둬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오늘밤 몇 시에 잘지도 모르는데 일단 먹어두자.
오 신이시여 고난의 첫날은 왜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인 거죠?
어쩌면 많은 수의 인간은.
둘째 날 일어나자마자 창문밖을 젖히니 비가 멈춰있었다. TGIF가 아니라 TGIS이었다. Thanks god it’s stopped raining. 둘째 날 첫 번째 활동은 루지 타기였다. 대부분 재밌어했다. 나도 피곤한 와중에 어제 과식한 짜증을 속도감에 날려버리기 위해 일부러 탔다. 교사 중엔 나만 두 번이나 탔다. 평일 오전이라 한적했다.
샘들 여기 (민폐를 끼칠) 사람들 없어요. 다행이에요.
루지를 타고 내려오면서 몇 분 간 안전하게 혼자라는 상태를 만끽했다.
이어 롯데월드. 기장에 롯데월드는 잠실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신 디자인이 더 귀엽고 쾌적한 느낌이다. 대기시간도 충격적으로 짧아서 자이언트 스윙이나 자이언트 디거 같은 가장 인기 있는 것을 탄다고 해도 길어야 20분 정도, 보통 15분 내외면 너끈히 탈 수 있다.
롯데월드에서 애들을 풀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눈총 없이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실 여유가 생겼다. 1시간 남짓 쉬고 나니 놀이기구 좋아하는 스릴파 샘들이 슬슬 움직였다. 난 무슨 마음에서인지 예로부터 짐 지키는 파에서 탈피하여 스릴파에 합류했다. 그렇게 탄 것이 자이언트 스윙과 자이언트 디거. 오랜만에 무서운 거라 타기 전 정말 무서워서 계속 벌벌 떨고 있었다. 황**선생님이 ’가장 무서운 순간에 몸에 힘을 주고 버티지 말고 몸에 힘을 탁 풀어라 ‘는 조언을 해 줬다. 그 말대로 다들 꽥꽥 소리를 지를 때 나는 무슨 라마즈 호흡이라고 하는 듯이 리듬에 맞춰 호흡을 하고 후—-하고 숨을 뱉어내며 몸에 기운을 뺐다. 그랬더니 정말 덜 무섭고 간이 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 하늘을 부웅~ 나는 느낌이 들었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하늘이 나를 감싸는 느낌도 조금 들었다. 수영을 할 때 어느 순간 물의 표면장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쫀쫀한 힘과 내 움직임이 리듬이 맞아 들면서 물이 내 몸을 감싼다는 느낌들 때처럼. 다 타고나니 몸에 기운이 훅 빠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개운하면서 뿌듯했다. (시련과 도전은 날 더 강하게 하지.. 최근 동기부여 영상을 너무 많이 본 영향 같다.)
그것은 마치 모유수유하는 엄마의 마음? 양떼목장에서 양 떼에게 건초를 먹이는 마음?
둘째 날 저녁엔 학생들 기분 내라고 반별 피자 6판을 야식으로 사주기로 했다. 세 개 방에 나눠 모여서 함께 얘기하고 먹으라고 했다. 어느 방에서 먹니, 누구랑 먹니, 어느 방 문이 잠겼니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이번엔 즐거운 설렘 속에 어수선함 었다. 미국에 대학생들 파티 준비하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살짝 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 그리고 각자 방으로 보내고 12시 전에 자라고 했다. 뭐 더 늦게까지 조잘댄 애들도 있었지만 과한 일탈 없이 그렇게 적당히 야식 먹고 즐기며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성급한 일반화라 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급하게 피자스쿨에서 애들 피자 주문을 했다. 영세한 가게 주인아저씨는 평일 저녁 느닷없는 피자 18판에 당황을 한 것 같았다. “18판이라고 예? 한 시간 반 남았는데요?” - “아 힘드신가요?” - “한 번 해봐야지요. 먹고 살라믄 해야지요. 갑자기 사람을 써서라도예.“ 그러더니 정말 시간에 딱 맞춰 세 대의 오토바이에 나눠 배달이 됐다. 그중 한 명 배달원은 사장님 같았다. ”학생들 놀러왔는가배. 우리 선생님 고생 많습니다. 학생들 좋은 얘기 많이 나누다 돌아가세요. “ 하고 사라졌다. 일차적으로 ‘우리 선생님들 고생…’까지 듣고 마음이 조금 덜컹했다. 커피를 타 주던 호텔에 중년의 직원분도, 저 연세에 운전이 괜찮을까 싶었던 관광버스기사 할아버지도 다 옛날의 선생님을 대하듯 대해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수업시간 한결같이 눈을 감고 있는 학생이 루지 헬멧착용법을 나에게 친절히 알려준다던지 “헬맷에 끈이 손가락 두 개 들어갈 정도 길이로 해야 된다고 했거든요. 샘 꺼 좀 줄여야 될 거 같아요.” 껄렁한 몇 놈이 놀이기구 앞 떨고 있는 나를 보고는 “샘 괜찮아요? 안 괜찮으신 거 같은데”라고 말해준다던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잘 먹었어?” 묻는 말에 “샘도 맛있게 드셨어요?” 되물어준다던지. 그런 소소한 모습에 행복했다.
또, 여행을 위해 잔뜩 멋 부린 모습. 비 오고 힘든 날에 누가 봐도 새하얀 새삥 운동화를 신은 모습. 날이 흐려 새로 산 선글라스를 쓸 수 없어서 아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왜? 수학여행에 리코더를 가져와 흥이 좀만 오른다 싶으면 버스에서도, 바닷가에서도, 길에서도, 숙소에서도 리코더를 불어대는 학생은 뭔지? 쓸데없이 왜 그렇게나 잘 부르는 것인지? 레퍼토리는 왜 그렇게나 다양한 건지. 왜 어처구니없이 웃긴 건지.
수서역에서 안전요원샘들과 첫인사를 나누는데 한 마리 풋풋하고 귀엽고 이쁜 새 같은 총각이 팀장이라며 그 이미지에 걸맞은 목소리와 말투로 인사했다. 으잉? 뭐지 이래 가지고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애들에 대한 이해도 깊고 샘들 요구에 따라 바로바로 맞춰서 진행해 주고 좀 아니다 싶으면 의견도 강하게 내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가며 인솔하고, 누가 물건을 흘리고 오면 바로 달려가 가져와 주는 등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헌신적으로 역할을 해 줬다. 조만간 이 일을 접고 연기일에 매진해 보겠다고 하는데.. 어디선가 원하는 일을 하는 모습으로 보고 싶다. (갑자기 이기홍의 말이 떠올랐다. 잠깐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배우의 삶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사무적 관계가 아니다. 끈적한 땀으로 맺어진 사이다. 자갈 섞인 밥을 나눈 사이이다. 뭐 그런 끈끈한 동료애가 생겼다.
마지막 식사를 위해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뚜렷한 목적 없이 용두산 공원으로 우르르 학생들을 인솔해 올라갔다. 드디어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었는데 애들이 투덜거릴 찰나였다. 그리고 딱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있던 차에 용두산 마루라고 해야 하나 공터 같은 곳에 피아노 한대가 있었다. 이 즈음 누가 한 명 나와 멋지게 연주하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 우리 팀엔 없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외국인 커플. 재즈 바에서 연주할 거 같은 분위기의 외국인남자가 무슨 곡을 치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도 엄청 잘 쳤다. 다들 그 외국인을 에워싸고 환호했다. 그게 5-10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그리고 서로 매우 만족해하며 사라졌다. 이런 우연이 너무 고마웠다.
둘째 날 마지막 일정은 해운대 해변 산책이었다. 내내 흐린 날씨에 저녁 7시부터 비예보가 있었다. 우리가 해변에 도착한 시각은 6시 40분 즈음. 해변에서 재빨리 단체사진을 찍고 잠깐 산책을 하고 급히 돌아오려는 계획이었다. 비는 곧 쏟아질 거 같고 애들은 “바로 숙소 가면 안돼요?”라고 군소리를 했다. 나도 여길 굳이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눈 질끈 감고 갔는데 웬걸 바다를 본 애들은 갑자기 다들 천진한 얼굴이 되면서 좋아했다. 안 왔으면 어쩔뻔했나 싶게 사진을 찍고 일부는 신발을 벗었다. 마침 모래축제도 하는 중이어서 분위기가 더 좋았다.
물론 몇 놈은 흐린 날이라 다소 거센 파도 앞에서 철 모르고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서 내 마음이 철렁거리는 대접을 들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잠깐 주어진 자유시간 10분이 10000초 같았다. 그래도 궁시렁대다가도 좋아하니 그게 또 좋았다. (bgm: 데이브레이크- 들었다 놨다) 이번엔 해운대 해변에서 10분 거리의 숙소로 걸어오며 소나기를 만날까 조마조마했다. 쏟아지려는 비를 위로 받쳐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얘들아 곧 비 온데 얼른 줄 서 줄 서” 했는데 다행히 비가 안 왔다. 살짝 모험이었는데 단체사진도 찍고. 잠깐이지만 바다 구경도 하고 비도 안 만난 채 돌아와서 너무 뿌듯했다. 그 시간이 다 해서 고작 30-40분간이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 이때만큼 성경구절이 내 맘에 훅 들어온 때가 있었던가
too gooooood to be true
사실 가장 큰 행복은 셋째 날의 푸른 하늘, 맑은 날씨였다. 그것은 정상에서 마시는 한 컵의 시원한 생수였다. 나도 모르게 “날씨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요”를 거듭 말했다. 푸른 하늘 그게 뭐라도 이틀간 애를 너무 태웠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