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팅부터 철거까지 모든 과정.
전시를 하고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하잘것없는 작품과 붓 든 자신뿐.
초대를 기다리지 않았고
지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렇게 개인전을 기획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 느꼈는데 특히나 큐레이팅, 기획, 설치, 철거까지 모든 일을 개인 작가가 모두 한다고 했을 때 전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지난하다. 다음에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외부적인 일은 최소화하고 싶다.
돌아보며 정리하자면
1. 기획
2. 디자인
3. 설치
4. 운영
5. 판매
6. 철거
크게 이렇게 여섯 가지 정도로 일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1. 기획 : 사실 기획적인 부분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주제와 작품은 이미 선정했고 부족한 것은 채우면 됐다. 미술관의 배려로 대관을 협찬받았기에 공간에 대한 고민을 덜었고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 작업이나 작품에 대한 생각이 내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기 때문에 단지 번호를 매기고 원고를 작성한 대로 계획을 실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고 기획력은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영역이다.
2. 디자인 : 써 놓은 글을 바탕으로 붓을 들어 제목을 썼다. ‘먹의 정원’의 기초가 되는 획과 글씨의 이미지를 바탕 삼아 전체적인 비주얼과 이미지를 붓획의 느낌과 함께 흑백으로 구현했다. 중심을 차지하는 큰 정원의 표현으로 마주하는 모습의 전환,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을 표현했다. 그렇게 포스터가 되었고, 리플릿이 되었고, 현수막이 되었다. 어느 정도 계획이 구체화되어가는 것을 디자인 과정에서 뾰족하게 느꼈다. 사이즈 맞춰 인쇄를 맡기고 출력해서 포스터를 붙이고 관람객의 입장에서 동선을 짜고, 층별로 안내 리플릿과 엽서도 함께 제작했다. 1층부터 3층까지 파트를 나누어 관람객의 관점에서 경험을 디자인했다. 더불어 작품의 느낌에 따라 순서를 조금씩 바꾸기도 했다. 캡션을 흑색 금속으로 새겨 만들고, 액자의 틀을 원목으로 하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와 구성에 맞는 <먹의 정원>의 결을 맞추는 것도 이 과정의 목표였다.
3. 설치 : 모든 과정이 어렵지만 작품을 설치할 때는 특히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설계한 대로 디스플레이를 해보니 생각보다 작품의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너무 어긋나면 아예 빼버리게 되기도 한다. 특히나 <먹의 정원>은 디지털 패턴이나 이미지를 구현한 작품이 많았던 전시라 영상과 디바이스 연결하는 일, 와이파이 설정이나 브래킷을 연결해서 전시장 벽에 거치하는 사사로운 일부터 케이블 선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 또한 주요한 과정이었다. 100호 이상의 액자를 걸 때 피스를 박아 걸어야 할 작품과 와이어 고리로 걸어야 할 작품을 구분하고 전시장에 맞는 고리를 찾아 구매해 거는 것은 장정 두 명이 붙어 수평을 맞춰가면서 작업해야 하는 정교한 일이었고. 조명 또한 강력한 도구인데 세팅하는 과정에서 디스플레이가 한 번 더 바뀌었다. 더구나 조형물까지 들어가는 상황이라 배치와 설치가 매우 까다로웠다. 목작업은 전시 이틀 전 현장에서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모두가 한정된 시간과 자원에 힘들었다.
4. 운영 : 전시 해설과 소통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기획자이자 작가인 내가 그 어떤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프닝 때 도슨트를 직접 한 것도 주말마다 도슨트를 여러 번 진행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다. 이번 전시만큼 도슨트를 많이 했던 전시는 없다. 다만 운영에 있어서 갑자기 바빠진 스케줄로 아쉬움이 크다. 기존에 참여했고 만들었던 전시는 알게 모르게 모두 운영 측면에서 도움을 받던 부분이 있었다. 워낙 공기 같은 부분이라 인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런 부분을 신경 쓰지 못했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차라리 전시 기간을 짧게 하고 그 기간에 모두 상주할 걸 그랬다. 작가가 있고 없고는 전시의 경험을 천지 차이로 만든다. 내가 전시장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에 와주신 손님들께 무척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다음에 전시를 연다면 반드시 내가 전시장을 지킬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해서 진행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교육된 상주 인력을 배치해서 전시장을 지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철거 및 운영 인력 및 스케줄을 이유로 기존 3주로 게시한 전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3일 먼저 종료하게 됐다.
5. 판매 : 사실 작품을 파는 것 또한 작품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작가의 역량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천재적인 실력으로 그림만 그려도 갤러리가 걸어주고 내놓는 족족 컬렉터가 다 사주고 추앙받은 0.001프로의 그들과 나는 다른 영역의 사람이다.
나에게는 나의 일과 작업을 영업하고 판매할 의무가 있다. 그 능력을 하찮거나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굉장히 필수적인 역량이다. 결여되거나 부족하면 경제적인 이유로 작업을 이어가기 어렵거나 갤러리에 종속되는 일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타파하고자 공연으로 업을 확장했고 덕분에 작품을 판매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매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영상으로 기록해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선 전시를 여는 공간 자체가 강릉이고 강릉이라는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 어렵기 때문에 sns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랜선 도슨트였다. 전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보이길 바랐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언급되거나 노출되길 원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어 컷편집하고 적당히 자막을 달아 업로드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반응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 만에 조회수가 200회를 돌파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0명의 사람에게 일일이 도슨트를 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한 일이다. 그렇게 랜선 도슨트로 두 점을 판매할 수 있었다.
사실 작품이 팔리면 좋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기획 자체가 팔리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나의 생각과 의식을 표현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다. 팔리길 원했다면 이런 전시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작품을 사주셨으니 작품 보증서를 드리고 싶었다. 작품 이미지와 정보를 기입하고 질 좋은 종이에 프린트해서 준비했다. 금속 캡션과 함께 동봉해 배송을 준비 중이다.
먹의 정원 랜선도슨트
6. 철거 : 철거는 관람객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어렵고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나 직접 포장하고 옮기면서, 벽면 시트지를 제거하고 페인트를 칠 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몸소 다 하다 보니 정말 공부가 많이 됐다.
자잘하게는 트럭 섭외부터 철거 인력 확보, 시트지를 제거할 때 표면 처리, 피스못을 제거한 부분을 퍼티로 채우는 일, 양면테이프를 제거제로 녹여 떼어내고, 페인트를 바르기 전 마스킹 테이프가 달린 비닐을 바닥에 까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쉽기만 한 것이 없다. 특히 시트지를 제거하고 남은 자국을 롤링해서 흰색 수성페인트로 마감하는 일이 고됐다. 페인트를 가득 머금은 롤러붓은 꽤나 무거워서 어깨가 아프더라. 쨌든 전시장을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까지가 전시의 끝이라고 느꼈다.
전시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철거 과정도 매우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의 소홀함은 갤러리와의 관계나 미래의 전시 기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철거 작업은 정말로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잘 준비되지 않았다면 다수의 인력이 필요하게 되고, 그 결과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시장 내부의 물건들을 옮기거나 제거하는 과정에서 작품에 손상을 입힐 위험도 있으므로,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전시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되기 쉬운 철거이지만, 전시를 시작하기 전부터 철거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무리하며,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정말로 다양한 경험과 학습의 연속이었다. 작품만이 아니라, 전시의 모든 과정을 통해 나의 생각과 철학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관람객들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의 전시를 위해, 이번 전시에서의 경험과 배운 점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다가올 미래의 전시에서는 더욱 완성도 높은 작업과 전시를 선보이고 싶다.
<소감>
전시를 끝내고 보니 뭉클하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글을 쓰는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것 같다. 성찰하고 돌아보게 된다.
우선 작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획. 남편인 더루트컴퍼니 김지우 대표님이 주말에 짬을 내어 기획을 도와줬다. 더불어 포스터도 일일이 나가 붙여주고, 답례품도 협찬해 줬다. 홍보 역할도 훌륭히 해줬다. 좋은 손님을 많이 모시고 와주셨다.
전시장에 작품을 걸고 디스플레이 구성을 자문받고 조명 세팅을 도와준 것은 배철 작가님과 진명근 작가님이었다.
디지털 구현을 위한 디바이스 기기 대여 서비스를 연결해준 것은 인터포 조재열 상무님이었다.
작품 사진을 고해상도로 촬영해 주고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코리아이미지 김요한 작가님이었다.
솔방울 조형물 제작을 함께 한 것은 평창 안병근 목수님이다.
오프닝 때 손님맞이와 주변정리 철거를 도운 것은 가족 친지들이었다.
안전하게 작품 배송을 도와준 것은 굿디자인 고동환 대표님이다.
전시 주제와 서문을 컷팅 시트지로 내부 벽에 시공하고 외부에 걸 대형 현수막을 디자인하고 제작해서 시공하는 비용은 방문해 주신 관람객들의 축하금으로 치렀다. 화환이나 케이크 대신 받은 것이었다.
다행히 전시에 들어간 비용은 회수되었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고 대단한 명예도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주변의 사랑과 응원으로 힘을 얻었다. 모두의 덕으로 가능했던 전시다. 노동력이나 시간 대비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이 전시를 계기로 분명히 나아졌으며 공부했고 성장했다. 그것에 큰 의미를 둔다. 가득히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먹의 정원> 덕분에
진심으로 주변과 환경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전시가 끝나니 막막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안정된다.
<먹의 정원>을 마치며.
2023년 9월 29일. 오후 1시 4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