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시험관 실패 이후 몸을 보관중이던 3일배양 냉동배아로 다시 시술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이 냉동이 있었던 덕에 과배란 과정을 거치지 않고 프로기노바라는 알약으로 내막을 키워서 이식만은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로기노바가 내몸에 맞지 않았던 탓일까... 생리시작 3일부터 먹기시작 한 프로기노바를 먹기 시작했지만 생리가 11일동안 진행됐고 결국 충분한 내막두께가 나오지 않아 이식이 취소되었다.
결국 다음달 생리시작 3일차부터 페마라 정이라는 과배란 유도 약을 먹고 과배란을 진행한 후 내막을 키워 이식하게 되었다. 페마라가 비록 과배란 유도 약이었지만 호르몬양이 적어서였을까..과배란 주사들을 맞을때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으로 이식을 준비할수있었다. 냉동이 확률이 더 높다는 카페에서 본 글들에 막연한 희망까지 더해져서 이번엔 꼭 성공할것 같았다.
지난번 차수와 마찬가지로 이식후 누워지내며 착상에 좋다는 음식들만을 섭취하며 임테기 반응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
이식 7일차 결국 또 참지못하고 임테기에 손대고 말았다. 희미하게 한줄이 더 보였지만 지난번처럼 기쁘지 않았다. 기쁨보단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번에도 아이가 왔다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더디게 보냈다. 이식 12일차 첫 피검결과 339였다. 아주 안정적인 수치라했다. 쌍둥이일지도 모른다 했다. 그제서야 기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아기집 확인 후 남편이 사온 케잌과 함께
병원에서는 1차 피검결과가 안정적이니 2차 피검은 멀리까지 올 필요 없이 근처 병원에서 4일뒤 피검을 해보라했다. 그때 1200정도는 나와 줘야 안정적인 수치라 했으나 4일뒤 피검 결과는 1169였다. 피검결과로 나는 불안함에 파고들었고 남편은 그정도면 비슷한 수치라며 기뻐했다. 병원에서는 그정도면 나쁘지 않은수치라며 안심시켜줬고, 며칠후 아기집을 보러 오라했다. 같은결과에 너무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남편의 모습과 나쁘지 않은 수치라는 간호사의 이야기에 나의 불안함은 조금은 완화되었지만, 나의 불안함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늘 걱정이 많은 나는 결국 참지못하고 난임병원에서 예약된 날짜 이틀전에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확인하고 아기집을 본후에야 나의 불안함을 잠재울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아주 짧았다. 이틀뒤 난임병원에서 확인한 아기집이 이틀전보다 많이 커지지 않았고, 그후에 자라야하는 난황은 더이상 자라지 않았다. 결국 임신 8주차가 되었지만 아기집은 6주이상으로 크지 않았고 난황이 자라다가 멈춘상태로 계류유산 판정을 받았다.
계류유산이란 이야길 들었을때 예상과는 달리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몇주동안 불안해하며 예감하고 있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을까..자연유산을 기대하기에는 힘들다며 소파수술이라는 걸 해야한다했고, 최대한 날을 빨리 잡아야 한다했다.
카페 올라온 글들을 보면 계류유산 판정을 받고 수술하려했으나, 극적으로 아이가 다시 잘자라서 임신을 유지중이거나 출산을 했다는 글들을 찾아보며, 나에게도 이런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며 수술을 쉽게 결정할수없었다.
기적적으로 다시 자랄수 있는 아이를 내 성급한 판단 때문에 보내버리는건 아닐까?
어렵게 찾아온 내아이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건 아닐까..
처음으로 지어본 아이 태명을 부를며 너 거기 아직 있는거냐고..
엄마가 널 포기해도 되는냐고 미친사람처럼 혼자서 같은말만 되풀이 하면서 수술을 미뤘다.
죽은아이 계속 품고있어 좋을거 없다며 수술을 서두르라는 친정엄마의 독촉에 수술날짜를 잡은 후, 아이에게 수없이 부탁했다. 제발 가기전에 내 꿈속에서라도 나와서 인사라도 하고 가달라고.. 단한번이라도 엄마 꿈에라도 나와달라고..
시간이 한참 지난후 들은 얘기지만.. 태몽을 대신 꿔주었던 친정엄마가 아이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했다. 그말이 내겐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아이가 내꿈에 못나오고 외할머니 꿈에 나타나서 인사하고 갔구나.. 내이야길 들었구나..라고.
예약된 수술당일 난 결국 무너졌다 병원 앞에서부터 나는 남편에게 수술을 못하겠다며 울먹이기 시작했고, 접수 후에는 나좀 여기서 데려나가달라고 나 수술하기 너무 싫다며 울었다, 그런날 보던 남편이 날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간호사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앞에서 의사선생님은 담담한 어조로 조심히 수술 잘마무리 하고 다음 임신을 준비하자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타까운 눈빛과 다정한 터치들보다 의사선생님의 평온한 표정과 담담한 어조에 오히려 제정신이 들었다.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수술이 진행됐고 마취에서 깨어난 내옆에 남편은 내손을 꼭잡고 걱정스런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계류유산 판정후 나도 남편도 처음으로 서로 앞에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