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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May 12. 2020

사유와 행동, 그리고 용기.

2020 대한민국 청년 연설 대전을 참여하며.

우연한 기회에 국회에서 주최하는 청년 연설 대전에 참가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연설이란 장르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지만, 대중 앞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을 더욱 정교화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본선 이전 4차에 거친 연설문 첨삭 과정을 거치며 연설은 다른 글쓰기, 말하기 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 장르임을 절감했다. 평소에 스스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꽤나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경험과 감정의 씨실을 풀어내기엔 마냥 떨리기만 했던 1차 첨삭

연설은 주어진 시간 동안 대중을 매혹시키는 1인 공연에 가까웠다. 내 주장이 명확해야 하는 것은 다른 말하기, 글쓰기 장르들과 공통점이나, 그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큰 차이였다. 감정을 움직이는 데는 결국 나만의 경험이 중요했다. 그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의 씨실들을 실감 나게 풀어내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주로 정보전달이 목적인 논문이나 보고서 형태의 글을 접하고 써왔던 터라 나에게는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견해를 덧붙이려 했다. 보고서와 논문의 글쓰기에서 개인적 경험이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곤 하니까.



그래서 이번 연설 대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낱낱이 엿보는 것과 같았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그간의 내 사유를 비추는 작업이었다. 쉬울 거라 생각했던 연설문 작성에서 예상치 못한 고전을 겪고 수정을 거듭하면서 나름 확고하다고 자부했던 내 사유들에 빈틈이 많다는 것을 체감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나아가 작성한 연설문을 낭독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감정과 에너지를 비춰보는 작업이었다. '어조와 표정에서 따뜻하지만 강한 에너지가 묻어난다 ', '목소리가 편안하다' 등의 감사한 코멘트는 나 스스로 볼 수 없었던 내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들이었다.


청중의 눈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된 4차 첨삭

무엇보다 더 의미 있었던 것은 다른 연사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었다. 사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었으나 이를 계기로 뇌과학 대학원을 다니며 우리의 뇌구조와 행복에 대해 공부하려는 열정을 품은 사람,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교육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 어려서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자라 다문화 인부족한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 등 저마다 추구하는 다양한 갈래의 가치를 듣는 것은 마치 외딴곳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기나긴 여행이 끝나고 결국 내가 추구하는 가치로 회귀하기에 이르렀을 무렵엔 '내 것'을 좀 더 다양하고 넓은 렌즈를 통해 조망할 수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봉준호 감독의 유명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각자 타고난 배경과 살아가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환경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진정 실현되길 바란다면 나만의 형태와 이야기들로, 더욱 용기 있게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다. 결국 우리네 인생은 끝없는 사유와 행동,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용기로 귀결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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