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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Jun 30. 2023

'촉법소년 연령', '민식이법' 이야기의 공통점

소수자 혐오에 자주 등장하는 역차별 프레임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 청원 제1호는 '청소년보호법 폐지'였다. 한데 그 내용은 청소년 유해 환경 규제, 매체 심의 등을  담은 「청소년 보호법」을 없애 달라는 게 아니었다.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청소년에게 형사 처벌 외에도 '보호 처분'이 가능케 한 「소년법」 내지는 '형사 미성년 제도'를 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청원인이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명칭을 쓴 것은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소년 사법)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고, 동시에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프레임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을 하겠다며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곧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이런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어도 추진되었을 공산이 크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도 유사한 공약을 냈고, 국회에도 여러 정당 소속 의원들이 비슷한 방향의 법안들을 발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청소년이 연루된 범죄 사건들을 자극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의 행태, 그리고 널리 뿌리 내린 '청소년들을 보호해줬더니 되레 법을 악용한다'라는 담론이 있다.


청소년이 특권층이라고?


그런데 형사 처벌 대상 연령 관련 이슈 외의 여러 이슈에서도 이와 매우 비슷한 프레임이 관찰된다. 사회적 소수자가 보호·지원 제도를 악용하여 '평범한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보며 피해자/가해자가 역전된다는 '역차별'의 프레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의 일부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여성이 악의를 갖고 남성을 성폭력이라고 무고하여 억울하게 처벌받는다는 '꽃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학생인권조례에 관해서도 그런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왔고, 최근에는 이른바 '민식이법' 논란, 곧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강화 정책을 놓고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이들이 이 법을 악용하여 '놀이'를 하며 억울하게 처벌받는 운전자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 강화를 악용하는 어린이들의 놀이'란 것은 그 실체가 잘 확인되지 않았고, 억울하게 처벌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과장되어 있거나 그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형사 처벌을 안 받는 것을 이용하여 특혜를 누리는 촉법소년들'이라는 이미지나 이야기 역시 상당부분 허상이며 과장되어 있다. 실제론 현행법으로도 만 10세 이상은 범죄나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을 때 자유를 제한, 박탈하는 처분을 받고 있다. 「소년법」을 적용받은 청소년들은 대개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재판에서의 경험을 두렵고 괴로운 일로 기억하지, 편하고 이득 본 일로 기억하지 않는다. 또한 보호 처분 외에도 피해에 대한 배상, 가정·학교에서의 처벌, 사회적 낙인 등 여러 제재가 가능한데, 단지 형사 처벌만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이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미디어 및  온라인에서의 "청소년(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안 받는대"라며 단편적이며 틀린 정보가 확산되는 것이 범죄를 조장하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 봐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비교적 약하게 받는다는 것만을 가지고 일종의 특권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삶 전반을 살펴보면, 자기결정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도 없다시피 하며,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년법」만 보더라도, 현재 청소년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 '품행이 불량하다'라는 이유만으로도 소년 재판과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런 게 무슨 특권이란 말인가. 청소년들은 비청소년이 했다면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도 소년 재판을 받게 되기도 하고, 명목상 형사 처벌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년 재판에서 청소년들은 차별적인 기준에 의해, 덜 엄격한 입증에 의해서도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기존 사회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기 어려운 존재, 일상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고 만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오직 범죄에 연관될 때만 선처나 지원을 받는 것은 특권이라 할 수 없다.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청소년 대다수는 가정과 학교라는 청소년에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 사회에서 배제되고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특권이나 특혜를 누린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더욱 부적절하다.


청소년과 범죄를 보는 관점의 전환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을 만 14세 이상으로 유지하라고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국에 권고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정기 심의에서도 같은 권고를 했다. 이는 관련 연구에 근거한 것이자 국제적 추세이다. 게다가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고 악화되고 있다'라는 사람들의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 통계상 청소년 범죄 수는 10년, 20년의 긴 단위로 보면 오히려 감소했고, 최근에도 큰 변화가 없다. 언론들이 몇몇 사건을 집어 "흉포화", "심각" 등의 헤드라인을 달아 이슈 몰이를 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을 추진하는 것은 뚜렷한 근거 없이, '청소년들이 법을 악용한다'라는 세간의 왜곡된 인식에 부응하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청소년들의 범죄는 형사 처벌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법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이 만 14세에서 만 13세나 만 12세가 된다고 해도 그 적용을 받을 청소년의 수는 매년 수십 명에 그칠 것이고, 그 사회적 영향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촉법소년' 관련 담론은 실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확산되고 과열되어 있으며, 이처럼 왜곡되고 소수자 혐오를 담고 있는 주장을 정부가 승인해줌으로써 생길 부작용은 우려스럽다.


형사 정책에서 엄벌주의는 당장 만족감은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재범률을 높이고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형사 처벌 대상 연령 하향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가정 환경 등이 좋지 못해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거나 보호 처분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향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소년법」 등 사법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청소년 등 소수자들이 보호·지원을 악용한다는 식의 혐오 담론에 적극 대처하여 그 위세를 약화시키는 것 아닐까? 나아가 범죄가 줄어들도록, 재범이 일어나지 않도록 청소년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 아닐까? 정말로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처벌 대상을 확대하기보다는 예방에 더 힘써야 마땅하다.


청소년의 인권 보장과 청소년의 자율성·독립성을 주장한다면, 청소년 범죄의 경우 온정주의적으로 대우받는 것도 부당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일단 범죄에 연루되는 청소년은 전체 청소년 집단 중 극히 소수임에도, 청소년 전체의 인권 및 사회적 지위가 범죄에 대한 처분 문제와 결부되어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차별의 논리임을 짚을 필요가 있다. (소수자 집단을 이처럼 하나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은 차별의 대표적인 불합리성이다.)


인권 보장을 주장하거나 엄벌주의를 우려하는 입장을 곧 온정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분법적 접근일 따름이다. 지금까지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에 대해서는 온정주의냐 엄벌주의냐 하는 이분법만 작동했다. 그리고 사실 온정주의는 간접적으로 엄벌주의를 불러오게 된다. 청소년들은 순수하고 무고하며 가족(부모)과 환경의 책임만 있다는 식의 온정주의는 청소년을 타자화하고 시혜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러한 순수성을 벗어난 듯한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엄벌주의를 적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재범 예방의 효과성 등 사회적 공익을 고려한 것이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합한 지원을 위해서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며 또 살아갈 존재로 여기는 것, 그리고 범죄를 범죄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자 공동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청소년 관련 사법 제도를 논하는 데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관련된 정확한 실태 조사와 상황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소년법」 등이 청소년에 대한 특혜인 양 호도하는 '역차별' 논리, 소수자 혐오 주장들에 휘둘려도 될 만큼 단순하고 가벼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 2022년 8월 〈프레시안〉에 쓴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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