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현 Apr 16. 2024

교육운동은 무엇인가

유독 흐릿한 개념부터 정리해야


청소년인권운동을 한 지가 만 18년을 넘었는데, 교육운동의 언저리 혹은 내부에서도 나름대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 온 셈이다. 교육운동의 난맥상이나 문제점이라고 느끼는 점들이 여럿 있고 언젠가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길 꺼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돌아보니 격월간 《오늘의 교육》 등 지면에 그간 조금씩은 교육운동 비판 이야기를 쓰긴 썼음을 깨달았다. 우선 그런 글들을 다듬어서 게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사회운동에 관한 사유라기에는 약간 협소한 주제지만 편의상 이 분류로 넣겠다.

첫 번째 글은 2019년 5월에 했던 포럼 뒤에 평가와 후기를 겸해 《오늘의 교육》 50호에 썼던 원고를 편집, 개정했다.



2019년 5월 11일, '교육운동, 왜 자꾸 작아지는가 - 운동과 제도 그 거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교육운동을 돌아보는 포럼을 연 적이 있다. 당시 주요 주제 중 하나는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였다. 쉽지 않은 논의일 거라고 짐작하긴 했다. 하지만 당일의 논의는 예상보다도 어려웠다. 난점은 생각지 못 한 데서 불거졌다. 기획 단계에서 염두에 둔 핵심 질문은, 말하자면 '교육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혁신학교를 평가한다면 어떻게 이야기될까?'였다. 그런데 '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을 지식인으로 길러 내고 있는가'라든지, '혁신학교에서 입시를 후순위로 둬도 괜찮은지'라든지, '혁신학교 졸업생들의 현황을 조사하자'라는 이야기들은 대체 왜 나왔던 걸까?


그래서 포럼을 마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혁신학교/혁신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운동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부터 정리해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은 교육운동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교육운동은 '운동'이다


사회운동을 대략적으로 정의한다면, 사회 문제를 드러내 공론화하고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전개하는 정치적이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부분 집합으로서 교육운동은 교육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사회운동 혹은 교육 제도나 체제를 바꾸기 위한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교육운동에서 '교육'은 운동이 다루는 주제 및 분야를 가리키는 수식어라 생각해 왔으며, 교육운동을 당연히 '교육'이 아닌 '운동'의 일종으로 생각해 왔다.


요컨대, 교육운동은 좁게는 학교 교육을 비롯해 교육 제도에 관련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넓게는 학교 안팎을 아울러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 교육 관련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다. 교원 성과급제 폐지 운동, 무상 급식 운동, 두발자유화 운동,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운동, 반값 등록금 운동 등 2000년대 이후의 운동들을 일별해 보아도, 교육운동이 다루는 이슈는 매우 넓다. 그 주체도 교사를 비롯한 교육 노동자, 학부모(양육자) 등 시민 일반, 학생, 청소년·청년, 교수 등으로 다양하고,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지만 교육운동이란 말이 '운동'보다도 '교육'에 방점을 찍고 쓰이는 것 같은 장면들이 있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의 교육운동가"라고 하면, 이는 교육 제도나 체제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라 학교나 야학을 세우고 교육을 실시한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꽤 된다. 나는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활동 자체가 독립운동 관련 목적의식을 가지고 운동의 일부로, 교육을 수단 삼아 전개한 것이기에 그런 명칭을 쓰나 보다 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딱히 다른 운동적 의식 없이도 교육 철학이나 방법론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고 수업을 한 사람을 "교육운동가"라고 부르는 예가 그리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가령 좀 새로운 철학과 방식을 가지고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가나 혁신적인 방법으로 임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노동운동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사명감을 가지고 산림이나 바다를 깨끗이 관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나 전문가를 "환경운동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교육운동에 관해서는, 교육적 실천을 하는 것이 곧 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듯이, 특정한 지향과 방식으로 수업을 하거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교육운동"이라고 부른다. 교사들의 임노동도 줏대와 철학을 갖고 하면 곧 교육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운동을 대단히 범위가 넓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이란 활동 자체를 과대평가하는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교육 자체를 뭔가 훌륭하고, 신성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로 여기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혁신학교는 교육운동인가?


교육운동이 '교육'이 아닌 '운동'이라는 전제하에, 나는 혁신학교는 교육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혁신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교육운동은 있을 수 있다. (혁신학교를 뭐라고 정의할지도 이제는 다소 애매모호한 면이 있지만)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교직 문화를 민주화하고 학생 자치를 활성화시키고 수업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요구로 교육운동이 기획되고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이 그런 변화를 담은 모델 학교로 혁신학교를 지정하고 운영하는 것은 더이상 교육운동이 아니라 교육 정책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교사들이 혁신학교에서 수업 방식을 바꾸고 다른 교직 문화를 만드는 것은 교사들의 업무이자 노동이고 교육적 활동이며 의미 있는 실천이지만, 교육운동은 아니다. 혁신학교 안에서 학생 자치 활동이 활성화되는 것은 교육적 활동이고 어쩌면 사회운동이 자생적·자율적으로 전개될 토양이 될 수는 있겠으나, 교육운동은 아니다.


그러나 포럼 당일에는 참석자들 중 과반수(또는 발언한 사람의 과반수)는 혁신학교는 교육운동이라고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그들은 '수업을 혁신하고 좋은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운동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입장에서는 '혁신학교를 교육운동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어떠한가?'라는 질문은 곧 '혁신학교는 좋은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내가 논의를 답답하게 느낀 가장 큰 이유였던 듯싶다.


지금은 교육운동을 혁신학교 자체 또는 혁신학교 등의 정책과 분리시켜 놓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학교는 당연히 교육운동의 일부라고 간주하기보다는, 혁신학교는 교육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어떤 존재인가, 또는 그래야 하는가 이야기해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포럼 중 제기된 "혁신학교 내에서 오히려 교사운동(전교조 분회 활동 등)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주제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가 오가지 않은 것이 아쉽다. 혁신학교를 교육운동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중요한 접근법 중 하나가 혁신학교라는 정책과 환경이 교사운동을 비롯해 교육운동 전반의 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간판이 유도하는 함정


운동은 정치적인 활동이며, 공론장에서의 논의를 만드는 일로, 권력의 쟁취 과정으로,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로, 사회적 세력화와 이익 충돌 및 대결의 문제로 파악된다. 그리고 이런 운동은 대부분 '정치적인 과정', 곧 가치관의 충돌과 논쟁과 투쟁을 동반한다. 교육운동도 당연히 그렇고, 교육운동을 하는 모든 운동 주체들은 교육이 얼마나 첨예한 충돌이 일어나는 영역인지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운동에서는 유독 '교육'을 상식적이고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강조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좋은 교육을 하자는 것"은 모두가 당연히 합의하고 공유하고 있는 전제라고 이야기되며, 교사든 양육자든 그런 상식적인 문제의식과 순수한 마음으로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인 양 발언한다.(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교육운동이 정체되게 만드는 운동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운동이 잘 시행되는 모범적인 '정답'을 제시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은 경우도 왕왕 마주한다.


하지만 합리적인 논증이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예컨대 학생인권조례가 몇몇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고, 두발 자유화가 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어도, 여전히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획일적 제복을 입히려 들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있어도 교복이 없어지면 절대 안 된다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렇기에, 운동은 좋은 사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나는 혁신학교를 당연히 교육운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운동을 운동으로서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지 의심을 갖고 있다. (특히 교사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던 대로 하면 학교도 좋아지고 학생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혁신학교를 통해 입증하겠다는 욕망이 깔려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목표로 삼아 운동해 왔던 것을 우선 몇 개 학교에서라도 현실로 만들고 나면, 마치 좋은 수업 방법론이나 교수-학습 방법을 보급하듯이 이를 확산시킬 수 있고, 그러면 그것이 곧 교육운동이라는 오해가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례를 만들어서 그 성과를 입증하고 보급, 일반화시키겠다는 것은 운동의 방식이 아니다. 모범적인 사례가 여기에 있으니 이걸 모든 현장에 적용하라고 하는 것은 경영과 행정의 방식에 더 가깝다.


교육운동을 '운동'이 아닌 '교육'이라고 착각하면서 빠질 수 있는 또 다른 함정이, 교육운동이 곧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여기고, 교육운동에 대한 평가를 '교육받은 학생(졸업생)에 대한 평가'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마치 혁신학교를 평가해 보자고 했더니 혁신학교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 같은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교육에 참여했던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교육 자체에 대한 평가도 될 수 없을뿐더러, 교육운동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사실 전교조가 오래전부터 내세웠던 표어 중 하나인 "교육을 바꿔 세상을 바꾸자" 역시, 여러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실상은 '학생들을 다르게 가르쳐서 달라진 졸업생들을 배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자'라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성찰과 논의의 부족


교육운동에 대해 여러 고민을 가지고 활동해 왔고 몇 번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요즘에는 교육운동이 메타적인 논의, 평가하고 반성하는 자리 자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교육운동이 무엇인지부터 합의가 안 되어 있고, 공유하고 있는 인식은 불명료하다는 걸 깨달았듯이 말이다.


혁신학교를 교육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자는 것은 혁신학교의 효과나 의미 전체를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책이나 제도의 관점에서 혁신학교를 평가하는 것과 운동의 관점에서 혁신학교를 평가하는 것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달라야만 한다. 혁신학교가 교육운동에 어떤 의미인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질문하는 것은 혁신학교가 교육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긍정적 의미를 가졌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혁신학교는 교육운동이 아니라는 규정이 혁신학교의 의미를 깎아내리거나 축소시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교육운동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교육운동에 대해 불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거나 합의를 만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교육운동이 곧 좋은 교육을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교육운동과 학교를 잘 운영하고 수업을 잘하는 것, 교육운동과 교육감 선거나 교육청의 정책을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운동이 제대로 되어 올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교육운동이 대체 무엇인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떤 것이 아니어야 하는지, 그러한 이야기들이 교육운동 안에서 충분히 오가고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운동 주체들이 운동 자체에 대한 반성적 자의식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있거나 적어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교육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활동하고 연대한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좀 더 많은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모여서 교육운동이란 무엇인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수사를 걷어 내고 이야기 나누고 교육운동에 대한 인식을 정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교육운동 안에서의 성찰과 논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이 깊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치적 중립성'을 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