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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테나 Aug 16. 2022

영화 ‘비상선언'의 비행 씬, 실제 비행과 다른 점?

전지적 조종사 시점에서 본 '비상선언'

2020년 코로나19 속에 제작되어 2년 만에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은 모두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고속열차 KTX가 소재인 재난영화 부산행의 비행기 버전이 연상되는 영화 ‘비상선언’의 제목인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은 비행기가 조종 불능, 납치, 테러, 응급환자 발생 등으로 정상운항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한다.

연료 부족 또는 기체의 기술적인 문제로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기장은 지역 관제소와 항로 주변에 운항 중인 다른 비행기에게 비상선언을 통보하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비상착륙을 진행하며, 이때 접근 공항과 이착륙 중인 다른 비행기는 비상선언을 선언한 비행기를 우선적으로 착륙시키기 위해 협조를 한다.


개인적인 관람평은 현실과 차이가 나는 비행장면을 제외하면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하늘과 땅에서 함께 재난에 맞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코로나19 속에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공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개봉을 앞두고 언론의 극찬과 흥행을 위해 제작사가 공들인 노력에 비해 관객 평가는 극과 극으로 8월3일 개봉 이후 10여 일이 지난 현재 ‘비상선언’은 이전에 개봉한 ‘탑건: 매버릭’과 이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쪽에서 얘기하는 작품성(Cinematic Quality)은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여객기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이기에 배우들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 B777-200ER의 시점에서 영화 속 비행 상황을 개봉 이후 현직 파일럿과 함께 관람하면서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탑건: 매버릭’이 F/A-18E/F 슈퍼 호넷으로 보여준 리얼리티로 인해 눈높이가 높아진 국내 영화 팬들에게 ‘비상선언’이 보여준 비행 씬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돋보이는 부분은 재난의 무대인 B777 조종석과 기내 세트와 회항을 위해 선회하는 장면에서 태양빛이 기내에 비치는 각도까지 시각적 사실감을 더한 연출은 매우 훌륭했다.

다큐멘터리와 달리 영화 속에 전투기나 여객기의 비행 장면은 오버 액션이 많은 편이지만, 비상선언 속에서 배우들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 B777-200ER 여객기의 공중 기동은 전투기를 넘어서는 수준의 비행이다.

30,000피트 전후 고도에서 900Km/h 속도로 순항 중에 조종간이 밀리면서 30도 이상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급강하 상태에서 360도 선회 비행을 거쳐 3,000피트 전후 고도에서 기적에 가까운 기체 회복 장면부터 미국 하와이 호눌루루 관제의 착륙 거부로 인천공항 이륙 후 왕복 15,000Km 가까운 거리를 잔여 연료로 회항, 나리타공항과 서울공항을 거쳐 B737도 불가능한 충북 성무비행장(활주로 길이 1,200m)에 기체 자체 중량만 138톤인 B777-200ER의 노즈기어 터치다운 착륙까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비행이다.

오늘날 제트 여객기 중에 가장 강력한 출력을 가진 B777의 쌍발 엔진이 정상 가동되고 있고 양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통제가 가능한 급강하라면 기체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비상선언’이 보여준 기체 상태라면 음속을 돌파해 스톨에 빠져 추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최대항속거리 14,310Km, 최대순항속도 1,066Km/h, 최대연료탑재량 171,177L인 B777-200ER의 시간당 평균 8톤 연료 소모량을 감안하면 인천국제공항~하와이 호눌루루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까지 9시간 걸리는 7,600Km 비행에 탑재되는 연료량은 80,000L 내외로 이를 감안하면 실제 상황에서는 하와이 근처 바다에 불시착했다. 최대 탑재연료를 실어준다고 해도 직항으로 왕복 19시간 걸리는 비행 자체는 절대 불가능하다. 

위 외에도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장면은 비상선언 선포 시점, 미국과 일본 당국의 비상선언 선포 민간 여객기 비상착륙 거부 조치, 민간 여객기를 향한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의 플레어와 기관포 발사,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주둔 기지인 서울공항에 민간인 난입 시위 장면이다.

비행 전반에 걸친 운항 관련 연출과 달리 기내 서비스와 방송, 운항승무원 식사 메뉴 차별 제공 등의 객실 연출은 매뉴얼 이상으로 객실승무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최고였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1983년 대한항공 KE007편, 2011년과 2013년 아시아나항공 OZ991편, OZ214편 사고 당시 기체와 승객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운항 및 객실승무원들을 잠시나마 떠올려 본다. 


회항 중에 우리 주변국으로 역사적으로 주적이나 마찬가지인 일본 나리타공항 관제의 착륙 거부와 자위대 전투기의 무력 행사 장면에서 화가 나는 건 관람객 모두 이심전심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역사 의식을 되새겨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 보여지는 대목이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증가하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입으로만 방역을 외치는 무책임의 끝을 보여주는 질병관리청장과 달리 영화지만, 바이러스로부터 공중과 지상에 있는 국민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국토부장관 전도연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낀다.

그녀가 허무한 표정으로 공항 주기장에 서있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흐릿하게 등장한 여객기는 아시아나항공 B777-200ER 기체로 보인다. 

제작 초기 아시아나항공에 제작 협조가 들어왔으나, OZ214편 사고와 동일 기종인 자사 여객기가 테러 대상으로 비쳐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려되어 거절했다고 하며, 최종적으로 극중 항공 관련 자문은 티웨이항공이 맡았다.


[사진: 쇼박스, CGV, 파라마운트 픽쳐스,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보잉, 플라이트레이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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