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weller Jul 04. 2024

4살 난 조카와 함께 한 일주일

엄마와 나 단 둘이서 우당탕탕 육아체험기

내게는 4살 난 남자 조카가 있다. 내 인생 첫 조카이자 태어날 때부터 애지중지해 온 아이라 더욱 특별한 친구다. 한국에서 태어난 조카는 2살이 될 때 미국으로 갔고, 얼마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앞으로 몇 년을 한국에서 다시 살게 되었다. 애들은 자기 좋아하는 걸 귀신같이 안다. 그래서 나는 조카의 봉이다. 주로 훈육을 담당하는 부모와 달리 이모는 그저 귀여워해주는 게 다다. 한국에서도 사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보지 못하지만, 이번엔 좀 길게 조카를 보게 됐다. 미국에 계신 제부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부부가 급하게 일주일 동안 미국에 간 것이다. 원래라면 3일 정도 머무르다가 돌아갈 요량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일정 변화로 나는 더 오래 동생네 머무르게 됐다. 2-3주 만에 만난 조카는 현관문에서 나를 맞이하며 꼬옥 안아준다. 꽉 껴안은 만큼 나를 그리워했다는 표시 같아 행복해진다.


나와 엄마(할머니), 그리고 귀여운 조카와 늦은 저녁에 퇴근하시는 할아버지까지. 우리는 그렇게 갑자기 함께 하게 됐다. 동생 부부 없이 조카를 봤던 적은 단 하루밖에 없었지만 이건 얘기가 좀 다르다. 6일 동안 엄마와 내가 전담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동생이 육아하는 걸 옆에서 도운 게 전부였던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난 그저 조카와 재미나게 놀아주는 게 다였는데, 이젠 그야말로 전담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생이 떠난 날, 설상가상으로 내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간 과로한 탓인 것 같다.




조카는 유치원에 다녀오면 무조건 나부터 찾는다. 이모랑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 생각만 한다. 최근 그나마 운동을 조금 시작해서 예전보단 체력이 나아지긴 했지만, 요즘 애들 놀이터는 별의별 작은 구멍과 머리에 닿는 봉으로 자주 부딪히기 일쑤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조카는 해맑게 웃으며 작은 손으로 나를 부른다.


빨리 같이 놀자며 귀엽게 나를 쳐다본다.


”Come 이모. Come. Let’s play with me.”(빨리 와 이모~ 나랑 같이 놀자 | 조카는 한국말을 알아듣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영어로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 유치원을 다니면서 조카는 제법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한국 또래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울리기는 어려워한다. 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봐.라고 해도, “They don’t like me.”(쟤네는 나 싫어해.)라고 한다. 아니야. 쟤네는 너랑 노는 거 좋아해. 단지 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라서 말을 못 거는 것뿐이야. No. I want to play with YOU. 아냐 아냐 나는 이모랑 놀 거야. 아직 한국 유치원에 다닌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적응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카가 이런 말을 할 때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다.




가장 마음이 약해질 때는 아침에 유치원 교복을 입힐 때다. 엄마가 있을 때는 혼자서 척척 잘도 입던 애가 할머니랑 이모는 만만한지 도무지 옷을 입으려 하질 않는다.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난 양말을 입을 거야. 난 소파에서 누워서 입을 거야. 결국 할머니와 나는 억지로 바지를 벗기고 입힌다. 애는 마구 소리 지른다. 서럽게 운다. 이렇게 유치원에 가기 싫으면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하나. 어린것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쓰려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엄마랑 나는 난감하다. 머리에선 이런 나를 비웃는 듯 계속 미열이 난다. 결국 우리는 비밀무기(?)인 타요 비타민으로 유인해 아이 옷을 어찌어찌 입힌다. 애기가 좋아하는 페달 없는 주황색 자전거를 들고나간다. 또 막상 밖으로 나가면 씽씽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차를 타러 간다. 애들이란 참 신기하다. 세상 떠나갈 것처럼 울다가도 3초 만에 갑자기 괜찮아진다.


결국 억지로 옷 입고 유치원 차 타신 귀여운 아이..


유치원 차에 오르면 조카는 창밖으로 우리를 열심히 찾아 손하트를 날린다. 나는 손으로 뽀뽀를 날린다. 그러면 그 애도 따라 손뽀뽀를 날리며 손을 흔든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안전벨트를 매고 우리에게 인사한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이따 가치 놀쟈. 서툰 한국어로 말한다. We'll play after. 영어도 야무지게 덧붙인다.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유치원차가 출발하면 나와 엄마는 한숨을 돌린다. 이제 오후 3:40까지는 자유시간이다. 하필 이 기간에 몸살이 걸린 나는 아이를 보내고 집에 오자마자 잠에 든다. 점심때가 돼야 잠이 깬다. 밤새도록 아기와 아기침대에서 잠을 자다 보니, 얘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깬다. 잘 자다가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할 때는 그저 괜찮다고 달래주기도 한다. 애기가 자다가 잠깐 껬을 때 옆에 내가 없으면 이모를 데려오라고 하니, 꼼짝없이 잠은 애기침대에서 자야 하는 것이다. 엄마랑은 오랜만에 만난 거라 애기가 없을 때 수다를 떨 만도 한데, 이번엔 몸도 아파서 그런지, 엄마와 거의 대화를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아쉽다. (그래도 우린 정말 멋진 팀워크를 이뤄냈다.)


엄마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정신이 들면 금방 조카가 유치원 하원하는 시간이다. 하필 이런 시기에 몸이 내 맘 같지 않은 게 한탄스럽다. 굳은 마음을 먹고 유치원 버스로 향한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동네로 들어온다. 열린 문 사이로 조카의 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이모랑 할머니가 마중 나온 걸 알고 신이 난 것이다. 어렵사리 자기 몸집만 한 안전벨트를 풀고 조카는 뛰쳐나온다. 그리고 이모랑 할머니를 꼭 안아준다. 자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아이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제고 달려가 끌어안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걸까.


You remember what we made..? (이모 아까 우리가 만든 거 기억나지..? (씨익)) 그날 유치원 가기 전에 우리는 magnatiles라는 장난감으로 공항을 만들었다. 엄마 아빠가 공항에 가셨으니까 우리도 공항을 만들어보자. 관제탑과 활주로, 게이트, 레스토랑, 화장실, 카페, 키즈룸 등등 정말 그럴듯한 공항을 만들어놨다. 조카는 집에 가서 그 놀이를 이어갈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귀여운 녀석. 요즘 부쩍 한국말이 는 애기는 놀면서도 한국말을 계속하려고 한다. 아니야 아니야. 여기 있어. 올롸간다.(올라간다) 도와져(도와줘) 나 이거 할뢔(할래).

모서리에 자석이 달려 있어 어떤 모형이든 만들 수 있는 신개념 장난감 magnatiles.


조카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때는 얘랑 같이 놀 때다. 나를 닮은 건지, 자기랑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보스 기질이 다분하다.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막 바꾸기도 한다. 숫자 빨리 놓기 시합을 할 때나 퍼즐 빨리하기 시합을 하면, 투정을 부리며 말한다. I can't do it. I need help!! 그래 이모가 도와줄게~ 하고 도와주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얄밉게 말한다. Now you can do yours. 그러고 나서 내 걸 마무리지으려고 하면, I won! 하고 외친다. 사내아이라 에너지가 넘쳐나긴 하지만, 꽤나 차분하게 노는 편이다. 뭔가가 흐트러지는 걸 싫어한다. 정리를 잘한다. 칭찬받으면 으쓱해한다. 솔직히 뭘 해도 귀엽다.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씻기는 일이다. 오랫동안 조카를 봐 왔지만 내가 책임지고 애를 씻겨본 적은 없었기에 부담이 됐다. 분명 제부가 가르쳐준 대로 샤워기를 켜고 이리저리 해봐도 애기는 머리에 거품만 대면 눈이 아프다며 울어재낀다. My eyes hurt!!! 으아아아앙~~~ 눈을 감으라고 해도 애기는 기어이 눈을 뜨고 눈이 아프다며 운다. 이모가 미안해 미안해~~~ 이제 다 됐어~~ 이 말만 반복한다. 애기 얼굴은 어찌나 작은지 세수를 시키려고 애기 얼굴에 손을 갖다 대면 한 손안에 귀여운 눈코입이 다 들어온다. 언제나 입 주변에는 초코,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있다. Do I have a chocolate face? 장난스럽게 애기는 물어온다. 그럴 때면 이 고된 육아의 고통은 잊힌다.

그래도 다 씻기고 아기공룡 타월 입히면 세상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진짜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ㅠㅠ 세상사람들 우리 비니 모르는 사람 없게 해 주세요...




아기는 확실하고 철저한 나이트 루틴이 있다. 이렇게 씻고 나면, 칫솔질을 하고 어린이 성경 이야기를 읽고, 아이패드로 읽었던 성경 콘텐츠를 보고, 같이 짧게 기도한다. 그리고 나선 그날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침대에서 서 읽어주고, 물을 마신 뒤 잠을 청한다. (가끔씩 자다가도 '몽뫌롸~ 몽뫌롸' 한다. 대충 '목말라'라는 뜻이다.) 애기 잠을 재울 때가 제일 재밌는데, 얘는 누워서 자기만의 재미있는 상상 속 계획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엄청 큰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거야. 온 집안을 내가 다 꾸밀 거야. 모든 사람들을 다 초대할 거야. I'm gonna set up the whole house with decorations. And it's gonna be a christmas party. And I'm gonna decorate everything. and I'm gonna build an apartment, 잠을 청해야 하는데 애기는 신이 나서 작은 두 손까지 사용해 가며 크리스마스 파티 계획을 설명해 준다.


잘 때는 이런 아기천사가 따로 없다.


결국 제부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생 부부가 미국에 가기 전부터 아기에게 친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가긴 했지만, 그날 밤 아기를 재우며 나는 다시 한번 친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비니야, 보니까(루마니아어로 ‘할머니’라는 뜻, 제부는 루마니아에서 이민 온 부모 밑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 부모님과는 루마니아어로 대화를 한다.) 돌아가셨어. 알지? 그치만 보니까는 예수님 곁에서 행복하게 계셔. 그니까 죽는다는 건 슬프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일인 거야.

그럼 스시도 죽어?

스시도 죽지. 우리가 스시를 앙 물어서 꿀꺽 삼키면.

그럼 미스 도일도 죽어? (조카가 미국에서 다니던 어린이집 담임선생님. 조카가 많이 좋아하던 분이셨다.)

그럼 그럼. 그치만 미스 도일도 천국에 가실 거야.

그럼 이모도 죽어?

그렇지. 언젠가는 이모도 죽을 거야. 그럼 비니는 이모랑 함께 한 이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모를 생각해 줘. 알겠지?

okay.

그날을 생각하니 갑작스레 코가 찡해졌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애써 눈물을 참았다.


우리가 하루를 더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왜 우리는 오늘 살아있는 걸까. 조카에게 충분히 사랑받았던 소중한 기억을 주기 위해서라면, 오늘 하루를 더 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 이모와 함께 놀았던 시간이 아이에겐 희미한 기억으로 남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 기억 조각을 무의식 어딘가에 붙들고 세상을 살아갈 아이를 상상해 본다.


다음 날 아침도 어김없이 밝아왔고, 새벽 6시에 조카는 어김없이 또 대담하게 요구를 한다. 이모 같이 놀자. 나는 '10분만 더'를 여러 번 외치다가 졸린 눈으로 magnatiles를 집어 든다. 자, 오늘은 뭘 만들어 볼까?

조카와 magnatiles로 함께 만든 빌딩. 이 날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이 예뻤다.



P. S. 제부가 지난 일주일이 어땠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했다. 아주아주 의미 있고.. 가치 있고.. 힘든 시간이었어. 제부는 깔깔대며 웃는다.

작가의 이전글 1년이라는 시간은 순전히 인간 위주의 구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