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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Sep 22. 2020

17 후회가 밀려올 때


요 며칠 싱숭생숭했다. 동거인과 함께 12월 중순 즈음 한국에 들어가기로 얘기를 마쳤다.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난 7개월 동안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했나 생각하며 밤마다 울기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살려고 노력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전자와 같은 생각이 드는 날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부터 했다. 지난날 해온 내 선택들을 하나씩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왜 용기 내지 못했을까, 왜 빨리 시작하지 않았을까, 역시 난 안 되는 거였나 하면서 후회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꾸준히 책을 읽으며 감상도 빠짐없이 남기고 그 기록들이 눈에 다 보이는데. 참 이상하다. 정신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이 행동을 할 때마다 예전에는 이불속에 들어갔다. 이불을 지붕 삼아 그 안에 몸을 웅크리고는 잠에 들었다. 


그런 나를 구출해주는 건 대부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동거인이었다. 어르고 달래 저녁을 먹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안달복달하는 그 모습. 그 모습을 보며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정신 줄을 다시 붙잡곤 했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타인에 손에 쥐어진 정신 줄을 붙잡아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타국에서 생활하며 배운 게 있다면 내 정신 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휘둘리더라도 내 손에서 휘둘려야지 놓치거나 다른 사람 손에 쥐어줘서는 안 된다.


한 게 없어 보여도 정신 줄 잡는 방법 하나만큼은 제대로 터득했다. 손에 힘이 빠질 때마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뭐든 해야 한다. 재고 따지고 할 거 없이 기회가 오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국에서 내 힘을 기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덴마크어 학원에 갈 수 있게 된 이상 빠지지 않고 가야 하고, 토플 점수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 이상 매일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아침에 몸이 뻐근하면 스트레칭으로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야 하고, 우울감이 짓누르는 느낌이 들면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걷거나 뛰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글을 쓰면 된다. 생각해보니 그간 마음만 먹었던 것들을 이곳에 와 참 많이도 실천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땐 목이 빠져라 저 멀리 내다보기만 했는데, 끝이 보이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간다 해도 딱히 바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멀리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 처한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좌절하는 대신, 지금은 던져두고 멀리 내다보는 연습.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의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닐지라도 뭔가를 계속하도록 만드는 연습. 멀리 보니 지금 내 나이는 인생의 중반도 오지 않았다. 근심 가득한 표정을 하고선 한숨만 푹푹 쉬어대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어느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자기 소개에 이렇게 썼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책임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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