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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May 28. 2021

유럽에서 여름 나기


날씨 어플의 '비' 표시가 현저히 줄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주 7일 중 최소 6회 이상 비 표시가 있었는데 이번 주는 해가 더 많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 말씀.


브런치를 뒤져보니 작년 6월의 난 자전거 타고 옆 동네 공원에 놀러 갔었다. 그즈음, 반팔티에 UV 차단 카디건을 입고 다닌 기억이 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덴마크 여름이 언제였는지, 여름이 있긴 했었나 의아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다. 덴마크의 여름은 5월 말부터 시작한다.


작년에도 덴마크에 있었는데, 그땐 어땠나 되새길 때마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마냥 즐겁게 떠올릴 기억이 아니어서 그런가. 사실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순간에 충실하고 열심히 기록한다. 순간에 충실한 만큼 그날은 더 자세히 기록되고, 오감에 저장된 기억은 우연히 스친 냄새, 소리, 바람 등에 '나 좀 떠올리소' 하며 열렬히 반응한다.


아껴 읽던 문보영 작가의 <일기시대>를 원 없이 읽었다


아침의 나는, 바람과 햇살에 매우 충실했다. 눈 뜨자마자 커튼을 촥 열어재껴 암막 커튼 뒤에서 환호하던 햇살을 방 안으로 들여보내 주고는 싹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선크림을 단단히 바른 후 접이식 의자를 착 펼쳤다. 테라스용 의자를 살 때만 해도 일 년에 몇 번이나 쓸런지 의심을 품으며 구매했는데 중요한 건 횟수가 아니었다. 이토록 상쾌한 몸으로 테라스에 나가, 청량한 바람을 따스한 햇살과 함께 느끼며, 자연광 아래에서 아껴 읽던 종이책을 마음껏 넘겨볼 수 있게 하는 테라스 의자를 소유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날씨처럼 햇살도 극단적이어서 의자 네 다리 중 두 다리는 그늘진 집안에 걸쳐놨다. 이마 정중앙을 조준하는 강렬하디 강렬한 햇빛을 구름이 살짝 가려주는 틈을 타, 그 순간을 만끽했다. 훗날 콧구멍이 뻥 뚫릴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뜨거운 햇빛이 내 이마를 정조준할 때마다 나는 이 순간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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