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시작한 이후, 내 수업을 듣는 모든 학기 학생들이 귀하고 예뻤다. 이제 4년차 강사.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있을까봐 강의를 하기 전엔 늘 바짝 긴장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걸로 수업을 하자고 마음 먹은지는 얼마 안됐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줄수 있을 것 같았다. 진심이 가서 닿았을까? 이번 학기는 유독 학생들과 합이 좀 맞는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정석 논문쓰기를 가르치며 영화와 콘텐츠 비평을 활용한다고 하면 그게 어떻게 수업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할수도 있지만, 충분히 가능했다. 한 학기 수업의 반을 논리적 사고를 연습 할 수 있도록 비평을 활용하고, 나머지 반을 논문을 쓰게 한다. 이번 학기도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활용하고 있다. 맞다. 역시 사심이 좀 섞인 강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며 아이들의 얼굴을 관찰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하고 의견을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 온종일 지쳤다가도 힘이 난다. 준비하길 잘했지,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선다.
<4월 이야기>, <러브레터>,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편집한 영상을 빔으로 틀어놓고 조별토론을 진행하던 중 한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 저 장면은 어떤 영화에요?"
"저게 <러브레터>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너무 멋지죠? 저 남자배우 제 첫사랑이었을걸요 아마. 남자배우 극중 이름이 후지이 이츠키."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남자 이츠키가 도서관 창가 커튼 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봐요, 옛날 영화도 진짜 좋다니까. 하고 말하는 사이 다른 학생이 다시 물었다.
"교수님 <러브레터>로 평론 쓰신 적 있어요?"
순간 멈칫했다. 내가 평론가로 활동하는걸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못썼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그치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권위를 갖거나 멋있어 보이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요."
"왜요?"
"무서워서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 못건드리겠더라구요. 저도 겁나는게 있답니다. 이십몇년을 좋아한 영화니까.."
"아..."
"근데 여러분도 알겠지만, 제가 부산에서 슌지를 만나고 왔잖아요? 그래서 쓰기로 맘 먹었어요."
"언제요? 어디에요?"
"11월 평론 원고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감독 신작으로 쓰기로 했고, 인터뷰 원고도 보냈으니까, 계획으로는 12월 아니면 1월 중에는 가지고 있는 지면 중 어딘가에는 쓰겠죠?"
"우와."
"마음 먹은대로 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러브레터> 평론을 보여주고, 종강인사를 한 뒤 영화 속 배경인 오타루 여행을 가 있겠네요. 그렇게 하기로 약속할게요. 사실 매일 매일 조금씩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말로 쓰고 싶거든요."
시험 잘 봅시다. 안녕을 말하며 아이들을 보내고 텅 빈 강의실에 서서 내가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진 않다.
정말로 써야 할 때가 됐다.
이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중요한 건 이제 더는 겁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