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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Dec 17. 2023

공기의 기록; 2023.12.17

두문불출한 지 17일째.





침대와 책상


서재 겸 작업실로 쓰는 작은방은 너무 춥다. 같이 사는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해 보일러를 아끼지 않고 돌리는 중이니 집 전체가 추운 건 아닌데, 책상 옆면을 벽에 붙여서 그런 건지 바깥과 맞닿은 외벽의 찬 공기가 작은방 안쪽까지 그대로 스며든다. 복도식 아파트의 단점이다. 손끝과 발끝이 얼어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재계약을 하며 방구조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꼬박 한 달 전이다. 큰방에 둔 슈퍼싱글사이즈 침대를 버리고, 작은방의 책장과 짐들을 침대가 있던 자리로 옮긴 후 140cm 이상의 큰 식탁을 사서 서재 겸 책상으로 써야겠다고 계획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땐 이전 집의 무분별한 구조에 질린 상태였다. 제대로 된 독립 후 처음 꾸려본 집의 풍경은 많이 성글고 불편했다. 이번만큼은 서재와 침실을 꼭 구분하고 싶었다. 한 여름에 이사했고, 가을쯤부터 짐정리를 했다. 그땐 에어컨이 있는 큰방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말하자면 잠이 모자란 시절이었다.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은 많이 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침대를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수면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하루에 네 시간을 자기도 하고, 자기 위해서 억지로 열네 시간을 누워 있어 보기도 했다.


보조제의 도움 없이도 잘 수 있는 삶을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잠의 루틴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동안 삶의 모양도, 일의 시간과 종류도 변했다. 침대는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책상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책상 앞에서 졸거나, 책상에 엎어져서 자거나... 그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행복하니까 좋은 일이라고 믿기로 했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침대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벌떡 일어나 작은방 책상 앞에 가 앉았어야 하는데, 춥다는 핑계로 한참을 미적거렸다. 작은방의 책상을 빼면 딱 100cm만큼의 가로 공간이 남는다. 옷장을 붙박이로 짰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큰 침대는 둘 수 없다. 고양이들 옆에 누워 한참 동안 싱글침대 프레임을 검색했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버려야 살 수 있다. 매트리스를 들어서 현관 밖으로 빼내고, 원목 프레임을 해체해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왕복해야 원하는 공간을 꾸밀 수 있다. 손이 덜 시린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또 아무것도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이 원고를 다 쓰고 나면 침대를 버리고 책상을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책상과 운동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운동을 멀리하게 된다. 한번 책상에 앉으면 집중이 깨질까 봐 물도 잘 못 마시러 가는 성격 탓에 한 자세로 오래 모니터나 책의 낱장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다. 그래서 원고 한 편이 끝날 때마다 몸이 굳고 아픈 게 아닐까, 하고 얼마 전 생각했다.

지난여름부터 헬스를 하기 시작했다. 올여름은... 한마디로 아무튼 '이상한 여름'이었다. 생전 한번 겪기 힘든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헬스도 그중 하나였다. 응급실에 실려간 그대로 일주일을 꼬박 입원하고 나온 후 PT샵을 찾았다. 거기서 여러 운동을, 데드리프트를 배웠다. 그리고 데드리프트를 짝사랑하게 됐다.

좋아하는 만큼 여러모로 잘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달은 거의 못 가고 있다. 밀린 원고 투성이에, 목숨 걸고 쓰는 원고들도 있고, 학기말이라 여러모로 여유도 없다. 그 와중에도 매일 데드리프트 생각이 난다. 나는 내가(요가와 필라테스를 제외한) 운동을 좋아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서른 해가 훌쩍 넘도록 알지 못했다. 달리기조차 무서워서 잘 뛰지 못했었는데, 데드리프트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무척 놀랍다. 그렇지만 데드리프트도 날 좋아할 만큼 내가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확신이 없으므로, 짝사랑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아무튼 모종의 사유로 스스로를 가둔지 17일째. 연말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침대와 책상, 집과 학교를 오가고 있다. 와중에도 데드리프트 생각이 난다. 쇠봉과 원판 생각이 나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등을 펼 때, 애매하게 바닥을 바라보며 봉을 당길 때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이 자꾸 떠오른다.


목숨을 거는 일


선생님이 봉 들 때마다, 동작을 취할 때마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목숨을 걸라고 하셨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뭐든 마음먹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긴 했지만 목숨을 걸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연락을 받고 '목숨을 걸기로 마음먹은 지' 보름이 좀 넘었다. 목숨을 건다는 결심이 완벽하게 최선인 결과로 무조건 나타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나에게는 그 연락이 어떤 트라우마이기도 했고, 방어기제이기도 했고, 비밀이자 추억이기도 했던 무언가를 온전히 세상에 털어버릴 최후의 기회처럼 보였다. 남들한테는 어떤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알았다. 내가 이 세계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고, 이제 나아가 더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밖에 나가고 싶다. 손도 시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싶다. 빈봉이나 원판을 들고 스쿼트도 하고 멍하니 트리도 쳐다보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 만나서 포옹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 내년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고양이도 먹을 수 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한 조각 사서 돌아와 녀석들과 크림 한 스푼 정도는 사이좋게 나눠서 먹고 싶다.


그렇지만 정말로 목숨을 걸고 빠져나오고 싶은 일이 있다.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해, 가만히 갇혀서 왜 갇혔었는지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꾸역꾸역 해보는 중이다.








이것 외에도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어디까지 말해야 될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답답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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