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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금술사 #1

집필 중인_ 메타 4 김 작가 TIME S 시리즈 첫 공개!

시간의 유래

7세기 사비니아노 교황의 교서가 수도원 종이 24시간에 일곱 번 울리도록 포고하게 되면서 기계식 시계 정시가 유래되었다. 결국 수도원 내의 인간 활동을 보다 통제하는 규칙이 되었다. 시계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수단 일 뿐 만 아니라 인간 활동을 동시화 시키는 수단이다. 시계는 선두적 기계이며 다른 기계가 열망하는 모범이다.


만일 시간이 우리의 삶을 규칙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라면  그 수단은 권력에 의해서 움직여질 것이고 그 권력의 힘은 자본에서부터 파생될 것이다.


실제로 기계식 시계가 발명되고 증기가 발명되면서부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었다. 물질과 자본이 중심 된 삶 속에서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시간에 예속되어 살아가며 자본을 거머쥐기 위한 수단이 목적이 될 뿐이다.


글을 통해 우리가 시간속 주인이되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계기로 삼고 각자의  가운데 진정한 목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시간의 종결인 죽음에 대해 잠시

죽음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믿을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우리의 삶 끝자락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인간의 생체학적 죽음과 영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후세계를 말하는 종교적 차원에 죽음을 믿는가? 무거운 이야기로 부담되면 뒤로 건너뛰어 읽어도 괜찮다. 이야기를 풀기 전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키워드인 ‘시간’에 대해 말하려면 그 종착점이라고 볼 수  있는 죽음 대해서 살짝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는 정도니까.  


죽음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 달리말해 영을 가지고 있고 생체학적으로 육체가 죽더라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아 영혼이며, 그 영이 어디에 머물 것 인지를 준비하는 기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라 하며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고 인간의 백년도 되지 않는 삶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라 한다. 불교에선 자기 성찰을 통해 열반 즉 부처가 되며 인과응보 윤회를 통해 우리가 전생과 이생을 통해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환생을 하며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삶은 전생의 업보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종교적 측면에 관점이 있고, 무교 즉 자신을 믿으며 사후세계를 믿지 않고 죽음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현실에 충실하자는 이들도 있지만 무엇이든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어찌되었든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만 그 생각의 자유 함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즉 선택이 자유롭지만 그 결과 또한 자신의 몫이다. 이 생각 역시도 삶이라는 짧지 않은 여정 가운데  수 없이 뒤바뀌기기도 할 것이다.


가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조금 유사한 순간을 경험하곤 하는데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이 되지 않은 ‘데자뷔’ 현상을 경험할 때 어떠한 상황이 마치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며 일생을 마치 드라마처럼 누군가 짜놓은 극본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한 적이 가끔 있다. 이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전생에 대한 기억 때문인가 하는 묘한 기분이 들지만 지극히 개인적 경험과 기분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의문스럽긴 하다. 이 이야기를 더 하면 주관화의 오류이니 이쯤 하고 대신 이런 질문을 하나 던진다.


그럼 누군가가 시간이라는 둘레 속으로 우리를 끼워 넣었다면 말이다.


누구도 삶에 대해 정해진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대게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사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살면서 가끔 스쳐 지나가는 정도이지 심각할 정도로 고민에 빠지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만큼은 삶과 시간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고 정리된 생각들을 치열하게 풀어낼 것이다. 생각이라면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시달려본 이 작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이 주는 시간에 의미를 끊임없이 헤집어 볼 작정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금 과장해 미치기 직전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과 지인들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 아프게 살려 든다는 우려 섞인 충고를 수 없이 들었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소중한 분들에게만큼은 생각의 무게를 십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음을 약속한다. 이 책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쉼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 각자의 삶 속에 좌표를 정하는 용기로 더해지길 바란다. 더불어 삶이라는 지극히 한정된 시간 속 연속되는 주체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시간을 극대화시키는 해법을 찾고 행복의 진정한 조건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는 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덜컥 나에게 묻는다면 나를 드러내고 나의 존재를 알아가기 위해서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것 같다.


삶의 현자들 또한 많은 삶의 중요한 의미를 여러 곳에서 찾으려 하지만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많은 의미들만  간직한 채 그 한계적 상황과 국면들을 어쩔 수 없이 대부분 받아들이고 순응하려 애쓴 흔적들만 남긴다.


인간이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란 것도 사실 삶이라는 테두리 속에 각자의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인간들을 통해서라고 믿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 비추는 방법은 타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생각의 현실 통로가 바로 우리들

삶이라는 무대이기에 오늘도 그 속에서 발버둥 친다.


 대게 사람들의 자아는 이기적인데 반해 그 이기심 속에 감추어 있는 것중 하나가 바로 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외모를 통해서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나 물질적인 것을 통해 서든지 타인 앞에서 우월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는 인간이 욕망이라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타는 순간 물질과 자본에 노예가 되기 쉬운 이유이기도하다.


이렇게 이타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혼자서 살아가기 쉽지 않지만 각자의 내면은 오직 혼자 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누가 대신 할 수 없는 절대적 사실을 기억한다면 인간이 얼마나 또한 나약한 존재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은 지금 어디쯤

우리의 생각은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현실은 직시이지 생각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시간의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에 존재하지 현실에 메이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면 현실에 머무르면 된다. 바쁜 일상과 현실 속에 과거와 미래에 머무르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면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

행복은 순간을 직시하는 순간부터 준비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게 10억만 있었더라면”이라고 행복에 조건을 내세우는 순간 행복은 조건으로 결정된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 만족으로 주어지는 과정의 행복은 10억이 없기에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행복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전에 말이다.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혀 소소한 과정의 행복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0억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은게 아니라 10억을 벌겠다는 행복한 목표가 없는 것이다. 사실은 10억을 벌기 위한 목표가 생기는 순간부터 행복의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고, 10억의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 가장 행복한 기억 역시도 그 과정에 있을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돈이 주는 행복의 의미와 다르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중요한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원하던 대기업 최종 합격통보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세상은 유독 아름다워 보일 것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이다.  배부름의 만족감보다 합격의 기쁨이 크기 때문이고 계속 그 기쁨을 배가시키려 할 것이다. 결정적 순간이 어떤 결과로 파생되며 기쁨이 이어지는 행복말고 일상에서 행복을 끄집어 내는 방법은 잘 알지 못한다.


 결국 나이가 지긋이 들고 우린 그 진귀한 해답을 얻을 것인데, 결론부터 시원하게 말한자면 그것은 시간 속에 숨겨있는 비결을 깨닫는 것이다. 시간을 지나온 경험은 다시 시간을 거슬러 우릴 추억으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인생을 오래 산 현자들은 역경 속에도 행복이 있고 고난 속에도 감사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매일 산해진미와 아방궁과 같은 대저택에 산다한들 걱정과 불안이 있기 마련이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불행과 행복이 함께 존재하거늘 우리는 흔히 재력이 많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나는 행복으로부터 마비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부자로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가? 하는 원론적 답변으로 회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한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행복, 시간, 돈 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다소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실망했다면 계속해서 시간의 주인이 되는 더욱 구체적인 방법들에 주목해 주길바란다.


잠시 초등학교 때 소풍 가던 추억 속에 잠겨본다.

그 시절 소풍이라는 말 한마디에도 얼마나 신이났던지.

소풍 하루 전날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풍당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날씨 좋은 화창한 봄날 학교에서 가까운 공원이나 산으로 가는 정도를 가지고 무엇이 그리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지. 소풍 때면 늘 동행하던 솜사탕 장수와 도깨비가면, 쥐포구이, 뽑기아저씨 우리들의 즐거움을 한껏 증폭시키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우리는 수건돌리기와 보물찾기가 주는 즐거움 플러스 맛있는 김밥, 계란과 사이다를 먹고 난 후 소풍 간다고 받은 용돈으로 솜사탕과 뽑기 아저씨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내 기억이 행복한 건지 진짜 행복했던건지 푸르른 녹음위에 따사로운 오후 햇살과 행복한 그날의 기분은 여전하다.


무엇이 그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소풍날 행복한 기대감이 선물한 기쁨들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행복 역시 소풍가는 기분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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