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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공존을 위해 최우선 되는 것...


코로나 팬더믹으로 혼돈과 공허의 시대는 두 해가 넘도록 어쩐 된 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과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인류가 직면한 지루하기 짝이 없는 팩트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를 단적인 원인이라 꼽을 수 없지만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마스크 없이 대중이들이 집단적으로 광장에 모이고 스포츠나 콘서트를 관람하던 일상이 언제였던가? 


오늘날 인간이 지구 상에 공존하며 당연하게 누려왔던 상쾌한 공기와 자연 그리고 평안했던 일상의 소중함에 무지했던 우리들의 모습 속에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너무 모른 척 아니 당연시하고 살아왔다.


신종 바이러스와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기후는 현재 진행형이고 심각하게 인류를 위협해 오고 있다. 과거 전쟁과 질병 그리고 가난으로 인류가 고통받아 왔고 기후위기나 감염병 문제의 가장 심각한 부분 역시 불평등과 부조리 간극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상류층이나 부자들이 이러한 위기 가운데도 살아갈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 패턴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과 직면한다.


그 속에서 국가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대수롭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코로나 바이러스 위력이 실로 엄청난 것을 실감하며, 향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엄습해 오며 인류에 대한 심각한 경고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렇게 엄중하고 엄청난 문제에 직면한 현실 앞에서도 정치인들과 언론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결국 권력자들이 아닌 국민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 같으니 깨어 각성하자.


인류 공존을 위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존(共存)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 공존의 답을 구하기 앞서 지금 우리 현실에 직면한 위협들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지혜가 우선돼야 한다. 인류 번영 공존의 안내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선 가장 주목할만한 지구촌 환경문제는 21세기 후반 가장 관심 있는 이슈와 실천과제로 대두된다. 인구증가와 인간의 활동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은 기후변화로 이어지고 지구 온난화, 사막화, 엘리뇨 현상 등 인류에게 전쟁이나 기근만큼 위협적인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전 세계 인구가 78억 명에 육박하기까지 급격한 증가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20세기 후반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0.6°C 정도 상승하며, 인류의 활동이 온난화 유발의 주범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원래 400년에서 500년 정도를 주기로 약 1.5°C의 범위 내 변화하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심각성을 짐작케 한다. 이미 지난 2000년 7월 NASA는 지구온난화 지난 100년 동안 빙하가 녹아내리며 해수면일 약 23cm 상승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 가뭄으로 인한 산불과 사막화, 북극권 제트기류의 약화로 인한 극심한 한파와 폭설 등 다양한 기상 변화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재난들은 예측 불허로 더욱 불안케 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상승을 과학자들은 지구 최후의 보루라 통첩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2040년까지 20년 기간 내에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인류 공존을 위한 지구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걱정을 넘어 코앞에 닥친 분명한 현실임에도  그 원인과 이유를 회피하려 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과학과 자본의 발달로 엄청난 결과 물을 만들어내고 인간은 신의 영역에 까지 도달한 것 같지만 결국 개개인들은 심미적으로 바보가 되어간다.  


경제에 있어 환경은 경제순환을 위한 기본적인 측면으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기본 토대와 전제조건으로 당연히 경제원칙 보다 우선이다.


고유가, 경기침체, 물가상승 등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제반적인 원인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등 환경적인 요인이 더 지배적이란 관점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정말 소중한 가치들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나 자신부터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임 있는 주장과 실천이 시대가 공존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진정한 어른과 책임 있은 정치인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끝으로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본인의 SNS에 공유했던 글들을 통해 작게나마 더욱 공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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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어느 토요일, 오늘 저녁 밥상 메뉴는 '제주갈치' 다. 열심히 발라서 아이들 밥에 올려주고 나도 한입 떠서 오물오물 씹으니 맛있다.


문득 '갈치'를 언제까지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이 갈치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음미하면서 맛을 잘 기억해놔" 아들이 왜 하고 물어오는데 "응 환경오염 때문에..." 말해 놓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모든 자연환경은 어른들 책임이고 자연은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온 것 이라는데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든 생각이지만, 나 하나쯤이 아닌 몸소 실천하고 가장 소중히 생각했어야 했다.


부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탄소중립, ESG를 막중하게 생각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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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남시 청정지역 미사리는 정말 강변에 금빛 모레 사장을 낀 강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모래 사고가 참 많았으며 물새알 숨겨진 모래톱 따라 깊지도 않은 사구를 건너고 건너다보면 물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 때도 잡고 어느덧 당정섬 근처까지 갈 수도 있는 곳. 자전거를 타고 레미콘 공장 옆길로 올라가면 눈이 부시게 펼쳐진 미사리 강변은 늘어진 물가의 버들처럼 우리들 맘속 깊이 여전히 축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 강에서 여름이면 식구들과 친척들이 바리바리 음식을 싸서 강가에서 솥에 밥을 지어먹고 신나게 수영치고 놀던 기억이...


또 한편에는 그 미사리 강에서 형, 누나들이 많이 빠져 죽 기도한 슬픈 기억도 있습니다.


1970년대 여의도를 시작으로 주공아파트 건설붐이 일며 선사시대부터 간직한 천혜의 금빛 모레 사장이 순식간에 모레와 자갈을 퍼 나르는 골재 채취장으로 전락해 수심이 일정치 않았던 게 안타까운 사고의 원인입니다.


그렇게 금빛☆모레 사장을 간직했던 미사리 강변은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개발로 미사강변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그곳에서 놀며 자란 우리는 도시 개발에 밀린 아류 일지 모릅니다. 천혜의 자연 금빛 모레 사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가치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해 삶이 안정돼 문화를 찾기 시작한다면 최고의 자연문화 가치를 잃은 아이러니한 기회비용의 단면입니다. 개발과 보전 중에 과연 무엇이 옳은지 섣불리 판단키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마땅히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곳입니다. 자본의 투입으로 개발된 미사리는 이제 통째로 천지개벽을 하였지만 그 변화 가운데 발생될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속에는 엄청난 인구와 교통 그리고 환경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만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편리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는 잣대는 오직 부동산과 투자수익적 관점이 아닐까 묻고 싶습니다.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문명과 자본은 엄청난 도시 팽창과 인구변화를 불러일으키며 그로 인해 엄청난 환경과 자연을 훼손시켰습니다.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출현은 인류가 불러온 현실입니다. 


이제 더는 되돌릴 수 없는 데드라인을 모두 놓치기 전에 그 심각한 현실인식과 공존을 위한 범 시대적 총력 말고는 인류의 시간을 연장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러한 분명한 현실 앞에 더 이상은 모른 척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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