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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Dec 28. 2020

소년과 소녀, 장국영을 만나다

나의 레슬리 ep48 : 샤로수길 '아비정전' 소피, 이완 님의 레슬리

지난여름, 지인을 통해 샤로수길에 '아비정전'이라는 와인 바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한참 공사 중인데, 이름만 <아비정전>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그 작품을 모티브로 했고 '아비의 방'이라는 공간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몇 가지 홍콩 음식도 함께 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술한 이미지를 하나로 조합하자니 뭔가 좀 난해했다. 특히 '와인 바'와 '아비의 방'이라는 조합은 좀처럼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실제로 가본 그곳은 빈약한 나의 상상력을 간단히 비웃었다. 

<아비정전>을 여러 차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박에 이해할 법한 공간. 게다가 <아비정전> 속의 세 남녀를 모두 그려내고 있었다. '아비'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침대, '루루'가 마지못해 바닥을 걸레질하던 베란다, 그리고 '수리첸'이 콜라를 팔던 카운터. 퀸즈 카페의 한 코너를 재현해놓은 곳도 보였다. 전체 공간을 한눈에 둘러보고는 '<아비정전> 월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한 번쯤 해본 상상이었는데, 이런 걸 실제로 구현해내는 사람도 있구나. 순간 너무 감격스러운 마음에 도대체 이런 공간을 만든 분들은 또 무슨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에게 공간 구석구석을 설명해준 대표님을 붙잡고 물었다. 장국영과 왕가위 중에서 도대체 누구의 팬이시냐고.

"둘 다"라는 쿨한 대답에 나는 다짜고짜 인터뷰를 하자고 졸랐다. 나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소개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인터뷰하고 싶다는 말부터 꺼내버렸다. 돌이켜보면 퇴짜 맞아 당연하다 싶은 접근이었지만 다행히 두 대표님은 나에게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펼쳐내주셨다.






때마침 '當年情'이 흐르던 11월 어느 날의 아비정전




1. 소년, 아비정전을 만나다.

80-90년대 비디오 시대를 관통하며 성장한 소년, 이완(Ewan) 님은 일탈조차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로 배운 비디오 키드였다. 그의 왼편에는 매일 쌍절곤을 휘두르던 홍콩 영화광 이모부가 계셨고, 오른편에는 중고 가전제품 판매상의 아들인 친구가 있었다. 덕분에 매일같이 홍콩영화를 보며, 더블데크 비디오를 가진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작품들을 복제해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꾸려가며 성장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홍콩영화를 본 친구들이 그를 보며 "장국영을 닮았다" 말하기 시작했다. 흠모하던 홍콩스타를 닮았다는 말에 내심 기분이 좋았고,  시간들은 결국 그에게 '장국영 같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연기를 전공했는데, 그가 연기에 대해 하나씩 눈을 떠가는 만큼 반대로 홍콩영화는 점점  쇠락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기를 하며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그의 눈에는 홍콩영화의 침체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시 그의 앞에 홍콩영화와 장국영을 소환해낸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성월동화>를 보여주었다.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이 학교에서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 무슨 사건이 되겠느냐 싶겠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정말로 사건이었다. 그 영화를 본 친구들이 어릴 때 그러했듯 그에게 "장국영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지금 같으면 혹은 어린 시절 같으면 무척 고마워했을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불쾌했다. 한참 예민하고도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어린 그의 눈에 장국영은 이미 전성기가 지난 '아저씨' 배우로 비춰진 것이다. <성월동화>의 브릿지 헤어마저 흰머리처럼 보일 만큼. 그래서 소년은 결심한다. '꼭 좋은 배우가 되어서 언젠가 장국영이 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다'고.


그 뒤로 장국영은 그에게 있어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었다. 장국영을 뛰어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 결과로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유명 극단에 최연소 합격자로 입단했다. 하지만 '장국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집착에 가까운 명제는 그를 계속 괴롭혔다.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극단에서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와 성악과에 입학했다. 장국영처럼 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솔직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주변의 반응은 거셌다. 특히 친구들은 "왜 자꾸 홍콩배우와 함께 연기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느냐"며 그를 나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심과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던 친구들과 인연을 정리했다. 그렇게 '장국영'이라는 목표에 휘둘리고 차이며 온몸으로 방황을 하던 그는, 군대 입대를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2003년 4월 1일의 소식을.



"당시만 해도 장국영에 대한 제 감정은 그야말로 애증이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제 인생이 자꾸만 변했기 때문이죠.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집에 있는 비디오를 꺼내 하루 종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천녀유혼>, <패왕별희>..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는 늘 장국영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절대로 이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비정전>을 보다가 장국영이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했나 싶어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 작품 속에서 그는 제가 배운 연기 지식을 빠짐없이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었던 건가' 뒤늦게 깨닫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후, 그는 홍콩으로 가는 짐을 꾸렸다. 사스(SARS)로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홍콩에 도착해 청킹맨션에 방을 잡고 레슬리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도 가보고, 카페 '위닌종정'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그 여정을 끝내며 그는 목표를 다시 수정한다. "장국영을 뛰어넘겠다"가 아니라 "장국영 같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반드시 출연하겠노라고.


장국영이 애증의 대상에서 맹목적인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를 옮긴 후로 그는 본격적으로 '장국영 벤치마킹'을 시작한다. 장국영 같은 성격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로는,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에 가서는 영어도 열심히 배웠고 노래도 익혔다. 그야말로 악착같이 노력했다.


연기 전공자로서의 자존심을 접고 빠른 TV 출연을 위해 연기학원을 다니며 드라마에 출연했고, 한때 유명 소속사에도 몸 담으며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주연을 하기에는 못 생겼고(!), 조연을 하기에는 너무 잘 생겼다"는 칭찬인지 혹평인지 모를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 단계에서 캐스팅이 좌초되곤 했다. 결국 그는 그 끝에 배우의 길을 접었다.


하지만 늘 돈키호테처럼 목표한 것에 저돌적으로 도전하는 그의 인생은 그 이후로도 모험으로 가득했다. 잡지사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기도 했고, 태국과 중동을 오가며 무역 사업도 했다. 그렇게 그의 인생에서 장국영과 왕가위로 가득했던 꿈, 그리고 <아비정전>은 잊혀져가는 듯했다.



영화 속에서 2020년의 서울로 시공간을 이동한 것 같은 아비의 침대




2. 소녀, 화양연화를 만나다.

소녀, 소피(Sophie)  역시 학창 시절 영화광이었. 영화반에 소속되어 다양한 영화들을 섭렵했다. 그중에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화양연화>였다. 뒤이어 <게이샤의 추억>, <연인> 등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동양적 매력을 가진 작품들에 매료되었지만, 언제나 그녀의 넘버원은 <화양연화>였. 그리고 소녀는  작품에 빠져들면서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우에 대한 그녀의 꿈이 지는만큼 사람들은 정반대의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모델학과에 진학하라는 권유가 많아진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잘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확연히 달랐다 보니,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학원에 다니면서도 늘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는 연기와 모델 중에 어느 쪽이  나을 것 같은지 의견을 묻곤 했다. 그녀 나름으로는 절박해서 한 질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기 하나에만 매달려서 진지하게 임하는 학원생 중에는 그녀를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양손에  떡을 저울질하는  같은 그녀가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그녀의 자질과 가능성을 알아본 은사님이 이끌어준 덕분에 그녀는 결국 모델이 되었다. 활동 초기에 프랑스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오래도록 활동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간 것이 아니다 보니 직접 모든 상황에 부딪혀가며 일했다. 덕분에 고생도 참 많았다. 프랑스어 기초를 떼고 떠났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이따금씩 프랑스가 아닌 제3국에서 일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더 난감해졌다. 그 나라의 언어 영어도 하지 못해서 항의를 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 그녀는 모델로서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를 누비며 일했고, 한동안은 홍콩에서 지내기도 했다. 동료 모델들과 셩완의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일했다. 비록 몸매 관리 때문에 그 맛있는 것 많은 홍콩에서 과일주스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날도 많았지만, 토마토 라면과 완탕면은 언제나 그녀의 소울푸드였다. 

그렇게 소녀 역시 <화양연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아비정전> 속 퀸즈 카페에서 루루가 피웠던 담배 CRAVEN "A".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던 담배인데 생각보다 사이즈가 상당히 작았다.




3. 소년, 소녀를 만나다.

몇 년 전 이완 님은 사업차 태국에 갔다가 페이스북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십수 년 전 연기학원에서 말간 얼굴로 “연기가 나을까요, 모델이 나을까요” 하고 묻던 열아홉 살의 소녀 소피 님이었다. 마침 그녀도 태국에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다시 만난 소녀는 대견하고도 멋졌다. 장만옥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것은 물론, 그 옛날 "모델이 돼라"는 자신의 충고를 따라서 성공한 모델이 되어 세계를 누비는 그녀가 대견했다.

연기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덕분에 양손에 쥔 떡을 저울질하는 소피 님을 못마땅해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완 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고 보니, 자신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반면에 고민 끝에 모델로 성공한 그녀가 멋져 보였다. 물론 정작 소피 님은 모델이 더 어울린다는 이완 님의 충고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어쨌든 배우가 되고 싶었던 소년과 배우와 모델 사이에서 갈등하던 소녀는 그렇게 십수 년 만에 다시 만나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는 세계를 누비며 일하던 두 연인을 동시에 서울에 묶어놓았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기에 와인을 물처럼 마셔왔던 소피 님이 꿈꿨던 것은 와인 바였다. 하지만 이완 님은 "나는 무조건 장국영과 관련된 것을 먼저 해야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니 장국영이 와인 대사로 임명될 정도로 와인을 좋아했다는 사실과 소피 님이 장만옥을 닮았다는 것, 그리고 이완 님의 최애 작품이 <아비정전>이라는 것이 하나 둘 퍼즐처럼 조각모음 되었다. 지금의 '아비정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두 사람이 아주 초반에 계획했던 것은 3층짜리 건물을 임대해 층마다 <아비정전>, <화양연화>, <2046>를 테마로 꾸미는 것이었다. 각각 초록, 빨강, 파랑으로 메인 컬러와 콘셉트까지 모두 정해두었다. 하지만 그 공간을 계획했던 건물이 상권과 너무나도 벗어난 위치에 있던 탓에 고심 끝에 지금의 자리로 결정하고 <아비정전> 단 한편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대신 아쉬워하는 소피 님을 위해 당초 아비가 즐겨 찾던 '퀸즈 카페'로 구상했던 안쪽 공간은 수리첸과 주모운이 사랑을 나누던 화양연화의 '골드핀치 레스토랑'으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다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비정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아비와 수리첸의 오후 3시'를 담아낼 시계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시계가 없이는 '아비정전'을 열 수 없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은 시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전 세계 웹사이트를 뒤진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바나 스타일의 방향을 선회하려던 어느 날, 다행히 이완 님이 똑같은 모양의 시계를 찾아내고는 "우리, 아비정전 할 수 있게 됐다!"고 외쳤다. 물론 극 중의 시계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서 직구로 구매한 시계를 두 사람은 손수 노란색으로 커스터마이징 해야 했다.


또한 지금과 같은 인테리어를 구현하기 위해 인테리어 업자들을 많이도 만났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면 다들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었다. 수소문 끝에 영화 미술팀 출신이 운영하는 곳을 찾았으나 예산을 말해줬더니 성에 차지 않았는지 대뜸 "일할 마음이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하나씩 스스로의 힘으로 해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넉 달 넘는 시간 동안 한 땀 한 땀 모든 것을 직접 해나가다 보니 처음 인테리어 업자에게 이야기했던 금액의 다섯 배 넘게 쓰게 되었다고.



루루의 베란다를 장식한 '아비 테이블', 그리고 두 사람이 붓으로 정성스레 칠한 의자들 [제공=아비정전 인스타그램]




4. 소년과 소녀, 그들만의 '아비정전'을 만들다.

'아비정전'이라는 공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는 '디테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영화 속의 공간과 감수성을 살리기 위해 두 사람이 쏟은 정성과 노력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오후 3시의 시계는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아비의 침대에 올려진 가방은 실제로 영화에 등장했던 그 가방과 동일한 모델이고, 루루가 앉았던 의자는 어렵게 동일한 모양의 의자를 해외에서 들여와서 붓으로 하나씩 색칠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비의 피규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천녀유혼 피규어를 사다가 목을 떼서(!) 다른 몸에 붙이고 런닝과 팬티를 손수 지어서 입혔다. (그래서 아비 치고는 몸이 참 실하다)


하지만 이 디테일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선 며칠 전에는 루루의 베란다에는 새로운 테이블이 들어섰다. 중앙에 아비의 얼굴을 새긴 테이블이. 그리고 아비의 침대에도 베드 테이블이 설치되었다.

공간뿐만 아니라 음식과 술도 좀 더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특히 시그니처 술에 대한 고민이 깊다. 홍콩의 한 브루어리에서 'Days of being wild'라는 맥주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수입을 하려고 했으나, 술이 면세인 홍콩과 그렇지 않은 한국 간의 격차 덕분에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대신에 영화 <해피투게더>의 두 주인공이 선보인 탱고가 연상되는 패키지를 가진 맥주를 찾아 '해피투게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마셨을 때 세 주인공의 느낌이 나는 와인을 찾아 각각 아비 레드/화이트, 수리첸 레드/화이트, 루루 레드/화이트라 이름 지을 예정이다. 현재 아비 레드와 아비 화이트는 적합한 와인을 찾아내어 협상 중이라고. 

시그니처 술이나 메뉴에 장국영의 이름을 넣을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장국영은 사랑하고 동경하는 대상으로서 두고 싶기에 그 이름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아비와 수리첸, 그리고 루루 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한다.



"저는 사실 장국영 때문에 인생이 바뀐 경우는 저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장국영으로 인해서 전공을 정하고,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분들을 보면서

대단한 분들이 많구나 놀랐습니다.

반면에 '장국영을 알까 싶은' 아주 어린 손님들이 찾아오시는 것도 놀랍습니다.

그렇게 장국영과 <아비정전>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의미 있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다. 언젠가 영화 <아비정전>의 감독인 왕가위와 극 중에 등장했던 배우들이 이곳을 찾게 하겠다는 것. 장국영은 이미 세상을 떠나 그가 이곳에 찾아오는 상상을 수는 없지만, 왕가위 감독만큼은 꼭 이곳에 와주었으면 좋겠다. 왕가위 감독이 방문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완 님은 씩 웃으며 두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2046>에 등장하는 '오리엔탈 호텔'이 장국영을 위한 이름인지 묻고 싶단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알지만, 아무리 봐도 장국영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라도 그 답을 꼭 듣고 싶다고. 그래서 언젠가 '아비정전'에도 '오리엔탈 호텔'의 간판을 달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두 번째로는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한 순간 스쳐가는 역할로라도 출연하게 해 달라 부탁하고 싶다고 한다. 태국의 인기가수 버드 통차이가 <2046>에 짧게 등장한 것처럼, 그 자신도 그렇게 왕가위 영화의 한 장면에 오래도록 남고 싶다고.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겠다는 목표와 '장국영 같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국영처럼 왕가위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되는 것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사실 '아비정전'은 아직 정식 오픈을 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말부터 가오픈 상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영화 <아비정전>의 국내 개봉일이었던 12월 22일에 맞춰 정식 오픈을 하려 했으나,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 때문에 일정을 뒤로 미뤘다.


코로나 덕분에 꾸리게 된 공간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정식 오픈을 미루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두 사람을 이 시간을 정식 오픈 이후에 선보일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시기로 삼으려고 한다. 미흡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을 하나씩 다듬어나가고, 음식과 술을 좀 더 보강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식 오픈 이후에 진행할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고민 중이다.


'아비정전'의 공간 한 구석에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내용 모를 메시지를 남기고는 봉해버린 앙코르와트 벽이 재현되어 있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적어 이곳에 남기면 '아비정전'에서 전달을 해줄 계획이라고. 

단순히 영화의 콘셉트와 음식, 술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의 경험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아 정식 오픈 이후가 기다려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식 오픈이 좀 늦어진들 어떠랴 싶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만의 세트장에서 수리첸과 아비가 되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그들이 사랑한 '아비정전', 그리고 장국영을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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