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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Dec 14. 2020

그렇게 떠날 줄 몰랐던,
나의 친구 장국영

나의 레슬리 ep47: 모인그룹 대표 정태진 님(T.J.)의 레슬리

장국영, 혹은 왕가위 감독의 한국 팬이라면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회사가 하나 있다.
바로 왕가위 감독 작품의 한국 제작자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모인그룹'이다.


모인그룹은 잘 알려진 대로 <타락천사>부터 시작해 왕가위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에 투자했고, 레슬리가 출연했던 <동사서독>과 <해피투게더>를 국내에 소개한 곳이다. 덕분에 두 작품이 개봉할 당시부터 레슬리의 팬이었다면 왕가위 감독의 택동영화사는 몰라도 회사의 이름은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모인그룹이라는 이름이 생경하다 하더라도, JTBC <방구석 1열>에 여러 번 출연해 장국영과 왕가위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기억할 것이다. "국영이가" 혹은 "가위가", "숙평이가"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홍콩 영화계 거물들의 일화를 들려주었던 인물, 정태진 대표. 그가 바로 모인그룹의 수장이라고 설명한다면 다들 무릎을 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정태진 대표가 지난 봄과 이번 가을 두 번에 걸쳐 TV에 등장해 들려주는 '국영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레슬리는 어떤 모습일지. 방송으로 편집되지 않은 풀버전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기대를 안고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과연 입구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인터뷰는 잠깐 뒤로 미뤄두고 하나하나 찬찬히 구경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자료들이 즐비했다. 그야말로 금은보화가 쌓여있는 보물창고를 바라보는 알라딘이 된 기분이었다.

촬영 도중에 제작이 중단되었던 <북경지하>의 대형 포스터가 눈길을 잡아끈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막문위의 팬이기도 한데, 생전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타락천사>의 포스터도 있었다. <해피투게더>와 <동사서독>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홍콩영화, 혹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로 꾸려진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처음 상경한 시골뜨기가 된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 안 쪽에 자리한 정태진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방구석 1열>을 라이브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 기분은 직후에 펼쳐진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다음부터 이어진 인터뷰는 그 시절 홍콩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나만의 방구석 1열'이었으니까.






그가 홍콩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신상옥 최은희 부부와 일하게 되면서 홍콩과 연을 맺게 되었다. 홍콩은 당시 아시아의 최고 영화감독과 배우였던 두 사람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고, 아시아 영화의 자본이 모이던 곳이기도 했다. 더불어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차례로 북한으로 납치된 곳이기도 했다. 성룡조차도 배우가 아니라 스태프였던 시절이었다.


홍콩 영화사 대표들과 막역한 두 부부와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맥을 넓혔다. 그리고 그 인맥은 자연스럽게 홍콩 영화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으로 이어졌다. 첫 수입작인 <극도추종>은 그가 무려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鄒文懷 / Raymond Chow) 회장과 직접 협상해서 가지고 온 작품이었다.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잘 팔린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고, 앞으로 잘 팔릴 것이라는 사업적인 계산 역시 없었다. 그저 홍콩에서 맺은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인도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홍콩 영화 자체가 참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 바이어들은 배우만 보고 작품을 택했죠.

탑배우들이 촬영만 시작했다 하면 무조건 선구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흥한 경우도, 그래서 망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반대로 사람과 인연을 보고 작품을 들여왔지요.

덕분에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렇게 홍콩 영화계와 깊숙이 연이 닿은 후, 배우들과도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 또한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나중에는 배우들이 먼저 그에게 연락해 "내가 출연한 이번 영화는 괜찮을 것 같다." 내지는 "이 영화는 내가 출연한 작품이지만 절대 하지 말아라."라고 미리 고급 정보를 건네주기도 할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배우 중에 제일 먼저 친분이 생긴 이는 성룡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친해진 사람이 배우이자 제작자인 등광영이었다. '따거'라고 불렀던 등광영과는 특히 막역한 관계였는데, <아비정전> 당시에 그가 배우 한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바로 <아비정전>의 주인공, 장국영이었다.



사무실 한 켠에 걸려있던 레슬리와 함께 찍은 사진 [제공=모인그룹]



그런데 등광영이 장국영에게 정태진 대표를 소개한 멘트가 재미있다. '코리안 따거'라며 소개했다고.

레슬리의 젠틀하고 조용조용한 첫인상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레슬리를 "한마디로 신사예요"라고 정의한다. 서로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소개하고 소개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레슬리는 '코리안 따거'인 정태진 대표를 많이 따랐다. 그 역시 새로운 작품이 들어갈 때면 "관심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줄 테니 언제든 이야기하라"며 정보를 주기도 했다.

한편 젠틀한 신사이면서도 장난꾸러기였던 레슬리는 그와 만나면 별 것 아니지만 재미난 선물을 건네거나, 장난을 걸어오곤 했단다. 정태진 대표는 지금도 그 선물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며 웃는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 레슬리는 정태진 대표에게 감독 한 사람을 소개한다.

당시 4전 2승 1무 1패의 기록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왕가위 감독이었다.


절친한 형인 등광영이 <아비정전>의 실패로 속 썩은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등광영과의 인연으로 그는 '중앙극장' 관객 난동 사건을 손수 수습하기도 했다고) 처음 왕가위 감독을 소개받았을 때는 '아, 그 망한 감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왕가위는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고, 결국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굳게 믿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타락천사>부터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왕가위 감독과의 오랜 협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해피투게더>를 꼽았다. 장국영의 출연작 중 원픽인 것은 물론이고, 본인이 투자한 작품, 나아가 왕가위 감독의 모든 작품 중 No.1이라며.

이 작품은 그가 기획부터 시작해 공동 제작자로서도 활약했고, 그 결과로 왕가위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에도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촬영 당시 공동 제작자로서 아르헨티나의 촬영 현장에도 함께 있었는데, 머나먼 타국의 힘든 현장이었지만 재미있는 기억도 많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 왕가위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두 주연배우들과 장난스레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그런데 그의 말대로 애초에 <아비정전>이 처절하게 망한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제작에 참여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결과가 좋았으니 <해피투게더>도 <화양연화>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지만, 처음 협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과도한 모험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정태진 대표는 이런 나의 '우문'을 단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저는 영화를 보고 투자한 게 아니에요. 왕가위라는 사람을 보고, 그와의 우정을 보고 투자를 한 거죠."

홍콩 영화와의 시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왕가위 감독과의 오랜 인연과 협업도 그렇게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아니지만, 훗날 그가 투자와 기획으로 참여했던 <색정남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콩에서는 흥행이 잘 됐지만, 국내에서는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서 한동안 창고에 묵혀두었다가 개봉을 했다. 투자는 물론, 직접 스탭으로도 참여했던 작품이 정작 한국에서는 제때 개봉하지 못했음에도 그는 "검열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다"며 쿨하게 답한다. 사업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 일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하지만 뒤늦게 개봉했음에도 다행히 비디오 시장에서 선전해준 덕분에 <색정남녀>로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고.


그렇게 사람을 따라 일하다 보니 그는 "미쳤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국내에 <야반가성>을 들여온 장본인 역시 정태진 대표인데, 홍콩 영화하면 액션이 전부였던 시절에 멜로 영화를 수입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모두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훗날 그가 국내에 소개한 <첨밀밀> 역시 <야반가성>과 비슷한 수순을 밟았지만, 지금은 한국인들이 홍콩 영화하면 첫 손에 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정태진 대표 소장품인 <금지옥엽>의 한정판 굿즈. 거울에 그려진 레슬리의 얼굴이 멋지다. 거울 앞에는 '고가명'이 로즈에게 보낸 카드도 있다.



나는 정태진 대표를 만나면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에 부산영화제에서 GV를 하면서 "언젠가 '장국영 영화제'를 열어보고 싶다"고 말한 있었는데, 사실 국내에 '장국영 영화제'를 나보다 앞서 개최한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정태진 대표다.  

그래서 그를 직접 만나면 그가 2009년에 개최했던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 페스티벌>과 같은, 레슬리의 팬들을 위한 자리를 다시 만들 의향이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지금, 저런 행사가 다시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사심을 담아. 하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 행사는 오로지 팬들을 위해 마련한 행사였어요.

당시 제가 국내에서 장국영의 영화 판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말 끝에 레슬리를 '그렇게 세상을 떠날 줄 몰랐던,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라 말하는 그의 표정이 아련하다. 레슬리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는 모두가 잘 아는 대로 홍콩에서 SARS가 절정일 때였는데,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곧장 홍콩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SARS 덕분에 노선이 대폭 줄어서 평소보다 2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는 그렇게 아까운 친구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이런 그의 진심과 의리가 홍콩의 배우들에게 전해졌는지, 홍콩 배우들은 국내에 행사가 잡힐 때면 "일단 TJ와 먼저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할 정도라고 한다. 덕분에 모인그룹에서 수입하는 작품이 아님에도 수많은 내한이나 홍보에 조언과 도움을 주게 된다고. 말하자면 홍콩 스타들에게 있어 정태진 대표는 한국으로 가는 관문과도 같은 존재인 듯하다.


그리고 수십 년간 '한국으로의 관문' 역할을 했던 그는, 이제 '한국에서 세계로 가는 출발지'로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홍콩의 콘텐츠를 국내에 소개해왔던 모인그룹이 한국의 콘텐츠를 현지화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그가 직접 제작하고 연출한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가 왕가위 감독과 손잡고 중국 현지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라고긴 세월 차곡차곡 쌓아온 다양한 IP(Intellectual Property / 지적재산권)를 활용하여 공연을 영화로, 다시 영화를 공연으로 만들어 전 세계로 나갈 예정이다. 말하자면 모인그룹의 2막이 시작된 셈이다. 비즈니스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태진 대표의 진심이 이번에는 한국의 콘텐츠에 실려 세계로 널리 뻗어나가게 되기를 바라본다.






신상옥 최은희라는 의외의 인물부터 등광영, 왕가위 감독, 그리고 장국영까지. 마치 홍콩영화의 연대기를 듣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왕가위 감독이 한국인 제작자와 연이 닿게 된 시작점에는 등광영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레슬리가 존재했다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대화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허락을 받아 다시 한 번 찬찬히 그가 가진 소장품들을 구경했다. 한 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는 왕가위 감독의 아트 포스터 모음집과 레슬리 영화의 한정판 굿즈들, 그리고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 페스티벌>의 포스터까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차곡차곡 쌓여있는 자료들이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온 홍콩 영화에 대한 애정의 증거인 것 같아 마음이 찡해졌다.


그래서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태진 대표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래도 홍콩 영화를 향한 그 뜨거운 마음만은 그대로 간직해달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홍콩영화를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아주 뒤늦은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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