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슬리 ep50 : 내가 사랑한 배우 장국영 (8)
레슬리의 필모그래피 중에는 내가 끝끝내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작품이 하나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異度空間 이도공간 Inner senses>이다.
레슬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제대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나는, 한동안은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 작품에 부제처럼 새겨진 '장국영의 유작'이라는 타이틀은, 이 영화를 더더욱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떠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몇 번인가 시도해 보았지만 그저 계속 켰다 껐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무렇게나 뒤로감기 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잠시 멈춰서 몇 장면을 보고, 다시 또 뒤로 후루룩 감았다가 몇 장면을 재생하는 식으로 드문드문 보았다. 1부터 10까지 한 단계씩 차근차근 걸어가야 할 길을 1에서 4로, 4에서 6으로, 6에서 8로, 8에서 10으로 점프하면서 그렇게 겨우겨우 보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본 결과는 참혹했다. 이 영화를 진심으로 싫어하게 되었으니까. 이 영화와 그의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되며 만들어낸 오해도 싫었고, 거칠다 못해 조악하다 싶을 정도였던 시각효과는 더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싫은 것은 이 영화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늘 완벽을 기했던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기엔 이 영화는 너무 초라한 실패작으로, 졸작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이도공간>을 떠올리거나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저 부정하고 싶은 무언가였고, 다시는 들춰보지 않을 무언가였다.
그래서 이 작품이 복원되어 다시 개봉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의 심정은 그저 "아, 그렇구나"였다. 나는 극장에 가서 이 작품을 볼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모처럼 재개봉되는 작품이니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영화가 재개봉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기사를 읽고, 또 계속해서 영화 속 장면들과 마주치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런데 막상 극장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고나니, 도저히 혼자서는 갈 자신이 없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 뛰쳐나오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다른 두 분에게 SOS를 쳤다. 다행히 그분들이 손을 잡아주셔서 홍콩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토요일 오후에 극장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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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張國榮 Leslie Cheung이라는 이름이 스크린에서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늘 복잡하다. 볼 때마다 '아, 레슬리' 하는 탄식을 하게 되는데, 탄식의 한쪽에는 반가움이 다른 한쪽에는 안타까움이 매달려있다. 그동안은 늘 양쪽 감정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오늘은 안타까움 쪽으로 무게가 훅 실린다.
하지만 컨퍼런스에서 "귀신은 없다"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레슬리의 확신에 찬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걱정과는 달리 곧장 극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집중은 내 예상과 달리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귀신을 본다는 여자와 귀신은 없다고 말하는 남자가 만난다. 여자는 환자이고, 남자는 그녀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다. 남자가 확신하듯 여자는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겪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 현실에서 일어난 상황들이 만나 만들어낸 환각이었다. 결국 남자의 노력으로 여자가 자신의 이도공간에서 빠져나오고 둘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자의 눈에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여자의 귀신이 남자에게 옮겨간 것이라 짐작하지만, 알고 보니 남자에게도 숨겨진 이도공간이 있었다. 심지어 여자와 남자는 놀랍도록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경험이 남자에게는 이도공간에 갇히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이도공간이 가져온 결과였다는 것뿐.
변심으로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살로 인해 평생 고통받아온 피해자이기도 한 남자, 짐. 그리고 완전히 그 반대의 상황과 입장에 서 있는 여자, 얀.
짐은 얀을 치료하면서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과 반대편에 선 이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얀의 일기는 여자 친구의 일기와 빼다 박았을 테고,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얀과 함께 하는 수영은 과거 여자 친구와 했던 행동의 무의식적 반복이다. 그렇게 저 깊은 이도공간 속에 묻어두었던 짐의 기억들이 계속 자극받는다. 또 늘 홀로 지내왔던 탓에 스스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본인의 문제와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얀이 그러했듯, 짐도 과거의 기억과 오랫동안 갇혀있었던 자신의 이도공간 속에서 빠져나온다.
이 작품은 극 초반에는 귀신을 보는 여자가 나오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귀신 따윈 없다며 관객을 안심시키는가 싶더니, 이내 얀의 귀신이 짐에게 옮겨간 것처럼 군다. "귀신은 없다"고 말하던 짐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여주며 "거봐, 귀신은 있다니까"하는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공포영화의 탈을 쓴 심리극이었다. 짐과 얀의 심리극인 동시에, 그 장르를 놓고 관객과 나누는 심리극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귀신의 외양을 다루는 방식만을 보고 거칠고 조악하고 유치하다고 분노했으나, 다시 보니 연출이 의외로 섬세했다. 왜 그 섬세함이 귀신의 외모나 연출에는 발휘되지 않은 것인가 싶어 뒤늦게 어이없어졌을 정도로.
사실 <이도공간>은 그동안 내가 '아니 레슬리는 왜 이런 작품을 골랐냐'며 분통을 터뜨렸던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20년을 바라보는 지금이 되어서야 왜 그가 이 영화를 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작품을 보는 그의 안목에는 변함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자신들의 이도공간에서 빠져나온 짐과 얀을 바라봤을 레슬리 본인을 생각하니 더욱더 마음이 먹먹해진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레슬리가 촬영 당시에 우울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면, 끝끝내 모든 것을 털어낸 짐을 연기하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본인의 감정과 마음에 더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면서 점점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레슬리의 이도공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어느 새벽, 건물 옥상에서 촬영을 마치고 다시 '장국영'으로 돌아왔을 그 순간의 그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 스크롤이 멈춘 후까지 객석에 앉아있다가 자리를 뜨면서 <이도공간>을 향한 나의 곱지 못했던 시선에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미움을 받을 영화는 아니었는데, 너무 긴 세월 오해하고 있었다. 이번에 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토록 이 영화에 눈을 흘기며 살았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오해를 풀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작품 내내 빛났던 레슬리의 놀라운 연기에도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가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연기한 작품을 그토록 오래 외면했다니. 또다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더위를 뚫고 열심히 걷다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다시 짐과 얀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영화의 화질이 장면마다 조금씩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모아 온 필름이 마치 패치워크처럼 한 장면 한 장면 기워지고 덧대어졌을 것이다. 이 작품의 재개봉에 기울여진 노고가 글로 읽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생생하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신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덧붙임
* <영웅본색>의 송자걸과 아성은 세월이 흘러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어제는 적, 오늘은 친구. 오늘은 연인이었다가 내일은 제수씨. 역할에 따라 뒤죽박죽 바뀌는 배우들의 관계는 국적불문 늘 흥미롭다.
* 알고 보니 짐은 엄청난 부호였다. 페이닥터인데 수영장 딸린 저택에서 혼자 살고(그것도 홍콩에서!), 개인 사무실은 코즈웨이베이 리 가든스의 오피스동에 있는 듯하다. 아니 그 동네 땅값이 얼만데. 거기에 개인 사무실에는 직원도 있다. 병원 월급으로는 택도 없을 텐데, 유산을 받은 걸까, 주식투자에 성공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천문학적인 상담료를 받는걸까.
* 쓸데없는 궁금증 하나. 이따금씩 화면에 하나 가득 등장하는 짐의 타이핑 장면은 레슬리가 직접 한 것일까, 스태프가 한 것일까. "오빠, 중타 영타 각각 1분에 몇 타나 치시나요?" 하는 쓸데없고 이상한 궁금증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