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중주>를 보고
영화 <칠중주>를 드디어 보았다. 부산영화제 개막 상영을 놓치고서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개봉일만을 기다렸건만, 뚜껑을 열고 보니 무척 난해한 시간대에만 상영되고 있었다. 근로소득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상영시간대를 놓고 이리저리 고민하던 끝에, 결국 무리해서 봤다.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홍콩을 대표하는 7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라는 것, 그리고 참여한 감독들의 이름 정도만 아는 채로 봤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그들이 그린 홍콩의 이야기를 좀 더 날것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 오후 1시 40분, 그것도 월요일. 관객석에는 나까지 딱 다섯 명이 있었다. 관객 수를 세고 나니 이런 시간에라도 볼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자 곧바로 소년의 내레이션이 들렸다.
"내 이름은 홍금보"라고 말하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첫 주자는 홍금보였다. 제목은 <수련>으로, 기술이나 무술을 연마한다는 의미를 가진 원제 <練功>의 느낌을 잘 살렸다. 홍금보 감독이 50년대에 경극훈련을 받던 시절을 그렸다.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어린 학생들이 모진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승의 눈을 속여 낮잠도 자고 농땡이도 부린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격노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특히 대사형인 홍금보에게 호된 벌을 내린다. 그렇게 고된 시간을 보내고 난 학생들은 그 뒤로는 한눈팔지 않고 수련에 정진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화면에 나타난 현재의 홍금보. 에피소드는 벌을 받다 생긴 흉터가 아직도 그의 몸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 에피소드가 특별한 것은 홍금보가 회고한 과거가 '칠소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칠소복은 뭘까. 홍금보 주연의 영화제목 아니냐고 묻는다면 맞다. 하지만 칠소복은 영화제목이기에 앞서 경극배우 우점원(于占元)에게 사사한 경극연기반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평소 그는 제자들을 경극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따온 칠소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나중엔 아예 그중에서 7명을 선택해 팀을 꾸렸다.
우점원은 자신의 이름 끝자인 '원'을 제자들에게 돌림자로 내렸다. 칠소복 시절의 이름으로 7인의 정예멤버들을 소개해보면 이렇다. 원룡元龍(홍금보), 원루元樓(성룡), 원규元奎(영화감독 원규), 원표元彪, 원화元華, 그리고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는 원무元武와 원태元泰가 '칠소복 오브 칠소복'이었다.
또한 정예멤버 이외의 수하생들 또한 만만찮게 쟁쟁하다. 영화 <쿵푸허슬>에서 담배를 꼬나문 악독한 건물 주인아주머니를 연기한 원추元秋, <강시선생> 시리즈의 임정영(원영元英), 원화평 감독(원경元慶) 등도 칠소복 출신이었다.
훗날 홍콩영화계를 움직이는 거물들의 수련생 시절. 홍금보를 제외하면 그중에 누가 성룡이고 누가 원표이고 원화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이례적으로 여자수련생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긴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저 어린 학생들이 자라 훗날 홍콩영화를 좌지우지할 거물이 된다는 걸. 결국 홍금보 감독은 이 에피소드로 홍콩영화의 황금기가 잉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는 결코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이 짐작을 뒷받침하듯 <칠중주>에는 홍금보 외에도 칠소복 출신들이 둘이나 참여했다. 원화는 <회귀>라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고, 원화평은 <미로>라는 에피소드를 감독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수련>이 말하는 바는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우점원을 연기한 배우는 홍금보의 아들이다. 홍천명이라는 배우인데, 그는 홍금보가 한국인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남이다. 과거 영화 <칠소복>에서는 홍금보가 직접 우점원을 연기했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아들에게 넘겼다. 무척 흥미로운 캐스팅이다 싶으면서도, 스승의 역할을 차마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제자 홍금보의 마음이 느껴져서 애틋해진다.
이어진 에피소드는 허안화 감독의 <교장 校長>이다. 1960년대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오진우가 주인공인 교장선생님을 연기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우아하고도 다정한 선생님들과, 당돌하지만 순진한 구석이 남아있는 그 시절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젊은 여교사와 중년의 교장선생님은 서로를 남몰래 마음에 담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로 세월은 무심히 흘러 교장선생님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여교사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납골당에 찾아가 눈물을 흘린다.
이 작품은 왈츠 같았다. 천천히 느린 리듬으로, 서로의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추는 왈츠. 사실 처음에는 여교사의 일방적인 짝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늦은 밤 아이들의 숙제를 채점하는 교장의 목소리를 훔쳐 듣고, 무심하게 밥을 먹는 그를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딱 그랬다. 하지만 반면에 교장의 관심은 아이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긴 세월이 흘러 여교사의 납골당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야 알았다. 아, 교장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구나.
서로를 짝사랑하다가 보낸 세월이라니. 심지어 상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조차 없는, 그런 말간 짝사랑. 그러나 꽤 진심이었던 마음. 여교사가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몸이 약해서 그렇다"고 답했다는 장면을 보는데, 내게는 그 말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만큼 강하지 못해서"라고 들렸다. 아마도 둘은 평생 서로를 잊지 못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실제로 평생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독신으로 산 司徒華(사도화)라고 한다. 사도화는 40년간 교직생활을 한 교장선생님 출신의 사회운동가였는데, 젊은 시절 함께 일했던 여교사 黃少容(황소용)를 평생 잊지 못했다고. 몇 번 데이트를 한 후에 갑자기 여교사가 마음을 바꿨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사도화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자신이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었던 것.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제야 영화가 온전히 이해되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눈물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인상적인 장면은 노점에 나와 장사를 돕는 학생이 여교사에게 탕을 대접하는 씬이었다. 우연히 만난 선생님께 음식을 차려드린 다음, 접이식 테이블을 세워서 선생님의 모습을 가려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이 편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배려라서 좋았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학교에서 개길 땐 개기더라도 밖에서는 선생님을 가장 최고로 대접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사랑도 존경도 모두 하나같이 서툴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짜배기인, 그런 과거의 홍콩을 담은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담가명 감독의 <밤은 부드러워라>. 원제는 <別夜(이별의 밤)>이다.
홍콩의 중국반환이 결정된 것은 1984년 12월이었다. 당사자인 홍콩은 제외된 채로 영국과 중국 양자 간에 체결된 협정이었다. 홍콩특별행정구의 탄생이 예고된 날이기도 했다. 당시 이 반환협정이 홍콩사회에 던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에 부유층은 발 빠르게 이민을 결정하고 홍콩을 떠났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에피소드는 아마도 이 즈음의 이야기인 것 같다.
부유한 소녀와 가난한 소년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소녀는 곧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 이별을 앞두고 소녀는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소년은 그조차 고통스럽다. 서로를 좋아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어린 연인들은 이별의 밤을 과연 어떻게 지날 것인가.
<칠중주>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감독과 배우를 소개하는 간단한 크레딧이 뜬 후에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나는 사전 지식이 없었음에도 이 작품이 담가명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주 진작에 눈치챘다. 이건 백덤블링 하면서 봐도 담가명이었다.
아름답고 어린 남녀, 흰 교복, 첫 경험, 그리고 자신이 아름답다 여기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지긋하고도 집요한 시선까지. 한마디로 '배운 변태'.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단숨에 그의 색깔이 느껴져서 혼자 피식피식 웃으며 봤다.
이 커플은 여러모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했다. 10대의 어린 나이도 그렇고, 이별 대신 죽음을 택하겠다는 말이 (잠시나마) 오가는 것도 그렇고, 이들을 갈라놓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가문이 만든 비극이라기보다는 시대가 만든 비극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겠지만.
동시에 이별을 앞두고 영시와 한시를 번갈아 낭송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홍콩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마치 서양과 동양이 절묘하게 섞인 홍콩처럼, 영어와 광둥어로 감정을 토로하는 모습. 하지만 소녀가 떠나고 나면 소년은 영시 대신 한시만 외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는 영시 자체가 이제는 찾아볼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과거의 한 페이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떠올랐던 노래가 있었다. RubberBand의 留下來的人(남겨진 사람들). 말 그대로 홍콩을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을 노래한 곡인데, 실생활에서 쓰이는 표현을 그대로 노래제목으로 삼았다. 이 곡이 발표된 것이 2021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80년대에 시작된 떠남과 남겨짐은 2020년대에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어쩌면 '남겨진 자'야말로 40년 내내 홍콩사회를 가로지른 가장 거대한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담가명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소년을 연기한 배우는 오횡도(吳澋滔 / Gouw Ian Iskandar). 어딘지 젊은 시절의 알란탐이 연상된다. 이 또한 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소녀를 연기한 배우는 내가 지난해에 직접 인터뷰했던 여향응이다. 내가 실물로 봤던 모습과 영화 속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역시 배우는 배우다' 싶었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칠중주>는 작품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2014년부터 촬영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의 촬영시기가 언제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꽤 오래전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원화평 감독의 <회귀 回歸>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다.
과거 무술대회에서 우승한 유단자인 할아버지는 해외로 아들 가족을 이민 보내고 홍콩에서 혼자 지낸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도 잘 산다. 맛은 별로 없지만 직접 건강식을 만들어 먹고 아침마다 팔에 쇠팔찌를 주렁주렁 차고 훈련을 한다. 그렇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손녀가 찾아온다. 학업 때문에 잠시 홍콩에 머무르게 된 손녀를 위해 할아버지는 침대를 온통 인형으로 꾸미지만, 세상 쿨한 10대 손녀는 할아버지가 하는 일들이 모두 못마땅하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어느 날 자신에게 시비 거는 건달들을 할아버지가 간단히 해치우는 것을 본 손녀는 마음의 문을 연다. 할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우고, 자신은 할아버지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손녀가 할아버지와 무술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았을 때쯤, 두 사람에게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3년 뒤. 그 사이 부쩍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앞에 어른이 된 손녀가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서프라이즈~"를 외치는 손녀에게 "우리말을 해야지"하고 나무라기부터 한다. 중국어 인사를 듣고서야 반갑게 손녀를 맞이한 그는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손녀와 외식을 하러 나선다.
보다가 울었다. 나 역시 할아버지와 각별했던 손녀여서 그런지, 할아버지와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특히 '햄버거' 장면을 볼 때 그랬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를 "몸에 좋지 않다"며 자신이 대신 먹어 치운다. 하지만 지나친 건강식에 놀라 제대로 식사하지 못한 손녀를 걱정해 햄버거를 사다 슬그머니 식탁에 올려둔다.
그 장면을 보는데 어릴 때 할아버지께 '미미의 식탁세트'를 깜짝 선물로 받은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는 문방구 앞에만 가면 식탁세트 앞에서 넋을 놓는 손녀를 눈여겨보고 선물을 안겨주셨다. 생일도,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아니었는데.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홍콩보다, 그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자체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자식들은 이민을 가고 혼자 남겨졌던 홍콩의 노년층과, 무술처럼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지만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감독의 의도보다도 더. 그리고 나도 저렇게 찾아갈 할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햄버거와 공자면이 먹고 싶어졌다.
두기봉 감독의 <황금시대>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원제는 <遍地黃金(도처에 널린 황금)>.
이 에피소드에는 세 친구가 등장한다. '세 얼간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이들은 홍콩의 주요 경제사건들을 지나며 큰돈을 벌 기회를 놓치기도, 큰돈을 잃을 위기에서 빗겨 나기도 한다. 홍콩판 새롬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톰닷컴 사태를 시작으로 SARS와 아시아 경제위기 등을 차례로 지나지만, 이들은 언제나 늘 제자리걸음이다. 늘 자기돈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어디선가 돈을 빌려온다. 그래서 기회 앞에서 늘 움츠러든다. 어쩌다 용기를 낸다 해도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하기도 한다.
감독 이름을 보고 꽤 놀랐던 작품이다. 설마 두기봉 감독일 줄은 몰랐다. 내가 두기봉 감독에게 특별히 기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경제라는 소재를 가지고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야기는 한국판을 만들어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만약 한국판이 나온다면 BGM으로 어떤 노래가 쓰일까, 잠시 생각해 봤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하면 이 에피소드의 백미 중 하나는 음악선곡이기 때문이다. 세 친구가 경제위기를 지날 때마다 각기 다른 연주곡이 테마곡처럼 흐르는데 노래들이 너무나 귀에 익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속으로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이 노래들이 대체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한 박자 뒤늦게 알아챘는데, 장국영과 매염방의 노래였다. 홍콩에 가장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떠난 두 사람의 노래를 썼다는데 의미를 두면, 너무 지나친 해석이려나.
제일 좋았던 에피소드는 임영동 감독의 <길을 잃다>였다. 원제는 <미로 迷路>. 이 작품은 임영동 감독의 유작이기도 한데, 임달화와 공자은이 오랜만에 홍콩으로 돌아온 부부를 연기한다.
과거 홍콩을 떠났다가 휴가를 보내러 온 남자. 아내와 아들과 센트럴에서 만나기로 하고 침사추이에서 페리를 탔는데, 배에서 내리고 보니 이곳이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다. 그가 기억하는 센트럴 피어와 지금의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어물어 아내와 아들이 보이는 교차로에 선 남자. 하지만 급한 마음에 신호도 보지 못하고 달리던 그는 홍콩의 도로에서 영원히 길을 잃는다.
사실 내게는 지난해부터 쓰고 있(으나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글이 있는데, 과거의 홍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80년대 홍콩에 대해 꽤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덕에 극 중 임달화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감정이입까지 해버렸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제일 각별히 마음에 남는다.
홍콩에는 구룡과 홍콩섬 사이를 잇는 배가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간다. '페리'라고 부르는(스타페리라는 브랜드명으로도 유명하다) 이 배는 몇백 원 정도로 바다를 건널 수 있어서, 가장 낭만적이고도 저렴하게 양쪽을 오갈 수 있는 방법이다. 역사도 유구한 이 페리는 총 4개의 부두를 오간다. 구룡반도의 침사추이와 홍함, 그리고 홍콩섬의 센트럴과 완차이. 홍함 피어는 승객이 많지 않아 몇 년 전 폐쇄됐지만, 나머지 세 곳은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각 부두는 시기에 따라 그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다.
극 중 임달화가 기억하는 센트럴 부두는 '퀸즈피어'다. 센트럴 부두 2기였던 퀸즈피어는 시티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극 중에서 도착한 센트럴 부두는 3기,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부두다. 파란색 지붕의 긴 공중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IFC몰에 가서 닿게 되는 그 부두.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곳까지 10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자꾸만 애꿎은 시티홀만 찾는다.
퀸즈피어가 5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은 것은 2007년이다. 센트럴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결정된 일이었는데, 당시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당시 센트럴 부두의 이전만 결정되고, 이전 퀸즈피어 건물의 복원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서 더 그랬다고 한다. 퀸즈피어의 폐쇄를 막기 위해 부두를 지키며 농성을 이어간 시민도 있었을 정도라고.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퀸즈피어의 복원은 요원하다고 한다.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 오죽하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증명하듯 퀸즈피어가, 그리고 바다가 있던 자리는 현재 자동차 전용 도로가 되었다. 그러니 임달화가 길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고 자랐으나 이제는 낯선 곳이 되어버린 홍콩은 이제 그에게 미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미로는 그를 그대로 삼켜버린다. 마치 관객에게 "과거에만 빠져 있으면 이렇게 잡아먹힌다"고 경고라도 하듯이.
하지만 이내 영화는 태세를 바꾼다. 그가 남기고 간 사람들을 비추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임영동 감독은 아름다웠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시작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소 아쉬웠던 것은 자막번역이었다. 홍콩의 시티홀은 그냥 시티홀이라 불러야지, 시청이라 번역해서는 안된다. 홍콩은 행정구역상 '시'가 아니기 때문에 시청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임달화가 찾는 건물이 영어로는 City Hall, 중국어로는 大會堂(대회당)이라 불리는 것은 일종의 유머가 섞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시티홀은 홍콩 문화예술의 요람과 같은 곳으로 다양한 공연, 전시와 문화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극근이 "大會堂演奏廳(시티홀 연주당)"이라는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홍콩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장소다. 그래서 "시청이 어디냐"는 자막이 보일 때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혼잣말로 "홍콩은 시가 아닌데.."하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마지막 주자는 서극 감독이고, 그가 선보인 에피소드는 <심오한 대화>였다. 원제는 <深刻對話 (심각한 대화)>.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하고픈 말이 많지만, 엄청난 스포일러를 쏟아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서 과감히 포기한다. 앞에서 떠든 건 다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 작품만큼은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칠중주>를 마무리하는 매우 센스 있는 엔딩이었다는 것. 그리고 서극 감독님 알고 보니 블랙코미디에 엄청난 재능이 있으시다는 것. 앞으로 쭉 이 길을 가셔도 무방하겠다는 것, 이 정도다.
이 작품은 국내에는 <칠중주>로 소개되었지만, 중화권에서는 <七人樂隊 (7인악단)>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고 있다. 무척 아쉬운 것은 원래의 제목은 <八部半 (8부 반)>이었단다. 오우삼 감독도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했다고. 영화는 순서대로 홍콩의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오우삼 감독이 1970년대를 맡기로 했던 터라 70년대는 계속 공란으로 남아있다. 오우삼 감독이 그리는 70년대의 모습과 정취는 어땠을지 무척 궁금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면,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칠중주>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온고지신'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분명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좋았던 때, 슬펐던 때, 아팠던 때를 두루 들춰보지만 무작정 과거를 그리워하지만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을 다시 확인하고, 그리고 내일을 묻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대로,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과거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지혜가 되어줄 테니까. 영화의 흐름이 50년대는 60년대가 되고, 80년대는 90년대가 되고, 2000년대는 2020년대로 나아가는 것 또한 그래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쓸데없이 길게 떠들었지만, 나에게도 이 작품은 결국 온고지신이었다. 과거의 홍콩을 보고 나니, 내가 실제로 살았던 시대가 아님에도 묘한 향수가 느껴지고 무척 그리워졌다. 가보지 않은 곳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오늘의 홍콩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홍콩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어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