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Apr 26. 2024

영화 같았던 약혼식, 그리고 보통의 일상


   공사가 다망한 한 주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벤트는 동기의 약혼식이었다. 동기가 사는 공동주택에서 소박하게 열린 약혼 파티였다. 함께 파티를 꾸미고, 준비하고, 축하하는 과정이 즐겁고 의미로웠다. 한국은 약혼식 자체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이런 모양새는 아닐 것이 분명하리만큼 많은 것이 달랐다. 정신없던 약혼식 파티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약혼식 당일 이른 시각, 약혼하는 친구에게서 문자와 함께 사진이 도착했다. 전에 피앙새랑 같이 써보라고 한국에서 가져온 팩을 줬었는데, 약혼식 날 아침에 같이 팩을 하고 이렇게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K-뷰티의 자긍심을 느끼며 약혼식 당사자들의 피부 결에 기여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둘 다 키도 엄청 큰데 얼굴은 또 조막만 해서 팩이 한참 커서 반쯤 떨어져 나와있었다. 웃겨서 혼자 보면서 피식 웃었다.






     두둥-. 약혼식 당일 오후. 행사는 오후 8시였지만 이른 오후부터 분주했다. 웨딩 케이크와 베이커리를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케이크를 수령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고 나니 떨리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리디여린 케이크를 손상하지 않고 잘 옮길 수 있을지,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무게도 생각보다 꽤 무거워서, 차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꽤나 끙끙댔다는 후문이다. 트렁크에 물건들을 활용해 움직이지 않게 튼튼하게 고정을 하고, 세상 신중하게 운전을 했다.




행여나 어떻게 될까 얼마나 떨리던지, 어휴!




   다행히 신중한 운전 덕에 미션은 순조롭게 완료하였다. 도착한 케이크를 열어보니 아주 잘 있었다. 친구네 집 냉장고에 무사히 안착을 해놓았다. 식은땀을 훔치고는 저녁 행사 전까지 잠시 집에 돌아가서 쉬었다. 긴장을 했다가 확 풀어진 탓인지 아주 꿀같은 낮잠을 잤다.





     짧은 휴식 뒤, 약혼식 행사보다 조금 일찍 가서 일손을 도왔다. 100% DIY 약혼식이라,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며 만드는 행사다. 차로 미리 옮겨두었던 케이크와 베이커리들을 세팅하고, 꽃 장식도 직접 다 했다. 같이 간 남편과 친구들이 힘을 합쳐 칵테일도 조제하고, 집도 꾸미고 준비를 마쳤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인 줄 알았다. 맨날 캐주얼하게 보던 친구들이 신랑 신부 복장으로 빼입고 오니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소박하게 사는 집 부엌에서 진행될 뿐인데 두 사람이 신에 들어가니 갑자기 분위기가 어바웃 타임이었다. 둘 다 아주 사랑꾼 들이라 왠지 재미있게 잘 살 것 같다. 오래오래 행복해라!


   약혼식 행사는 소탈하게 진행되었다. 다 같이 세팅한 케이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당사자들이 케이크를 직접 잘게 커팅을 해서 접시에 담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일일이 건네주었다. 다 같이 음료와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약혼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컨셉으로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배우자들도 다 와서, 배우자들이 사진사처럼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약혼하는 친구가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다음 학기부터는 동기 여섯 명 중에 네 명이 유부가 될 전망이다. 어서 와, 유부의 세계는 처음이지?




   파티 장소의 전경은 이렇게 생겼다. 사실 한국의 결혼식에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소탈하다. 한국 결혼식은 하객들이 와서 식을 구경하고 밥을 먹고 잠깐 있다가 떠나는 소극적인 '손님'의 느낌이라면, 오늘 약혼식은 준비부터 즐기는 것까지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인 느낌이었다. 기여도가 들어가니 왠지 더 특별한 기분이 들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타지에서 이렇게 동기의 약혼식에 참여할 수 있어 고마운 경험이었다. 여름에 있을 또 다른 동기의 결혼식도 기대해 본다.




소란했던 약혼식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다시 보통의 나날로 공간 이동해 보겠다.



    수업들이 거진 다 끝나간다. 한 수업 마지막 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을 위해서 말차 쿠키를 직접 구워오셨다. 학생들 주려고 주말에 가족이랑 같이 구웠다고 했다. 교수님의 스윗함에 1차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차로, 말차를 안 좋아한다며 대번에 거절하는 미국 학생들을 보며 또 한 번 문화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멀었나 보다.


   하나 먹어보고 말차가 진하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미국의 설탕으로 그득한 그런 느낌의 쿠키보다는 한국 개인 카페에서 파는 수제 쿠키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흔치 않은 맛인지라, 나올 때 슬쩍 한 개 더 집어서 나왔다. 모쪼록 맛도 정성도 감동이었다.





   금주의 점심으로 선정하여 주말에 밀프렙으로 왕창 말아두었던 당근 김밥이다. 나리가 당근 라페를 알려줘서 찾아봤더니, 요새 당근 김밥 레시피가 많이 돌아다녔다. 하여,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여러 줄을 말아서 점심으로 싸다니며 먹었다. 원래는 당근이 한참 더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채칼이 없어 하나하나 썰다 보니 인성이 동나서 당근을 얼마 못 썰었다. 그럼에도 맛은 고소하니 희한하게 꽤 괜찮았다. 채칼을 하나 마련해서 제대로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이번 주도 애용했던 도서관이다. 통창이 참 아름답다. 공부하다, 풍경 구경하다를 반복할 수 있어 참 좋은 곳이다. 멍하니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청 힐링이 된다. 공부하기 전에 숲 보면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듣거나, 명상 가이드를 듣는다. 하루 일과 시작 전 많은 격려를 받아 가는 곳이다. 방학에도 생산성을 위해 자주 찾아볼 생각이다.






   상담심리 전공 내에 Sports Psychology라고 해서 운동선수들의 정신 건강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랩이 있다. 그 랩에 있는 동기가 기부금을 모으는 마라톤 행사를 주최해서 동기들이 모두 돕고 있다. 홍보의 목적으로 나누어준 팔찌를 차고 다니며, 물어보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기관은 10대 운동선수 아들의 자살을 겪은 아버지가 청소년 운동선수들의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위해 세운 재단이라고 한다. 동기 아니었으면 알지도 못했을 재단인데, 덕분에 기부도 하고 의미로운 활동을 주최하는 방식도 많이 배웠다.





    이번 주 심리 상담을 모두 종결했다. 개인 심리 상담과 집단상담 모두 끝이 났다. 시원섭섭하다. 내담자가 손수 적어준 굿바이 손편지와 초콜릿에 감동받았다. 정말...... 1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영어로 심리 상담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어떻게 또 절면서 어찌어찌 해내고 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본다.


   끝날 때 모든 내담자들에게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여러모로 부족함이 있는 상담자를 인내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 상담까지 종결 회기를 딱 마치고, 때마침 남편과 나리와 운 때가 딱 맞아서 Longhorn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서 성대한 플렉스 파티를 했다. 다들 희한하게 많은 것들이 딱 알맞게 끝난 날이었다. 한 학기 고생과 노고를 치하하며 맛있는 음식으로 자축했다. 미국 맛이 낭랑한 음식들로 혈관에 염도를 잔뜩 끌어올리니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았다는 후문이다. 역시 축하는 다 같이 해야 제맛이다!




   조금 남은 과제들과 마무리 미팅들도 무탈하게 잘 끝이 나기를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4월의 미국 캠퍼스를 담아,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