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May 06. 2024

미국에서의 두 번째 학기를 마무리하며

슬기로운 박사생활

   이번 학기 가르치던 두 개의 수업에서 마지막 채점과 성적 제출까지 마치니 비로소 학기가 끝이 났다. 지난 학기는 수업을 한 개만 가르쳤었는데, 두 개가 되니 학기말에 채점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하필 기말고사와 파이널 페이퍼가 둘 다 있는 수업들이라, 시간을 꽤나 많이 써야 했다. 그래도 성적 제출을 하고 손에서 떠나보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학부생들과 얼마나 폭풍 같은 한 학기를 보냈는지, 어휴! 모르긴 몰라도 훗날 가르치는 사람은 못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티칭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도 하루는 거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안 맞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또한 값진 배움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에 대해 또 하나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러모로 마무리라는 키워드로 보낸 학기의 마지막 주 일상을 들여다보자.


   수강 과목과 심리 상담이 끝나니 절대적으로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매년 그렇듯 새해 목표였으나 곧 사라지고 마는 운동을 다시금 재개했다. 학기 내내 근력 운동은 거의 못했기에 체력이 정말 안 좋아졌음을 실감했다. 조금만 뛰어도 오장 육부가 아리고 몸이 천근만근 같아서 막막하다. 올여름방학에는 체력을 되돌려 오는 것을 큰 목표 중 하나로 세웠다.







   오랜만에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나니, 어질하니 토할 것 같아서 같이 갔던 남편에게 밥을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파이브 가이즈에 마지못해 들어갔다가 음식을 주문했는데 웬걸, 입맛이 엄청 좋았다. 오히려 은박지도 씹어 먹을 기세로 폭풍 흡입했다. 결론은 운동하면 입맛이 엄청 좋아진다는 것이다.







   1년간 배정받아썼던 자리도 학과에 반납했다. 행정 선생님이 안 계셔서 문에 살포시 자리 열쇠를 걸어두고 나왔다. 꾸며두었던 자리도 깨끗이 정리하고 오는데,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자리야 다음 학기에도 받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보다. 처음 배정받은 자리라 더 애정 했던 것 같다. 조만간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도 한 번 써봐야겠다.






   집 뒤뜰에 미니 테라스 카페를 개장했다. 늘 테라스 카페처럼 뒤뜰을 꾸미고 싶었는데 바빠서 뒷전이다가 비로소 자그마한 원목 테이블 세트를 하나 주문했다. 새소리가 ASMR처럼 끊이지 않고, 사사사삭 소리와 함께 다람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다. 남편이 대공사 끝에 모기장을 둘러서 벌레에게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아침에 나오니 명상하기도 좋고, 책 읽기도 좋아서 날이 더워지기 전에 많이 애용할 전망이다. 지금 블로그도 이곳에서 새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쓰고 있다. 행복하다.  






   두 학기 동안 수련을 했던 심리 상담 센터에서 종강 기념 회식이 있었다. 이곳은 학과 내에 있는 in-house 심리 상담 센터였고, 다가올 가을 학기부터는 조금 더 큰 심리 상담 센터로 이직하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미국에서 영어로 심리 상담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들었고, 첫 학기부터 상담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압도됐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찌어찌 또 두 학기 꽉 채워 심리 상담을 해내고 140시간 누적 수련 시간을 적립할 수 있었다. 감격스럽다.첫 수련을 한 센터와 동료들이 워낙 포용력이 높고, 지지적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어화둥둥 우둥부둥해주는 분위기 속에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나마 자신감을 얻고 나아갈 수 있었다. 다음 학기 전혀 새로운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기만을 바라본다.










    마지막 학기 말 동기들과 회식도 있었다. 티베트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며 두 학기를 무탈히 잘 살아버틴 것을 자축하였다. 원래는 조금 더 축하 분위기로 떠들썩하게 회식을 하려고 하였으나, 최근 팔레스타인 시위와 관련해서 무력 진압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아 조촐한 분위기로 바꾸었다.





    원래는 작년이었어야 했던 동기의 졸업식을 올해 치르게 되어, 축하해 주러 다녀왔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 한 명이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해서 반갑고 멋졌다. 종종걸음으로 졸업식 연단을 걸어 지나가는 친구 이름이 불리자 웅장하고 괜히 뭉클했다. 한참 남았지만, 졸업을 하게 된다면 진짜 더 뭉클할 것 같았다. 다들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섰을까 싶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리는데 다들 대단해 보였다. 영감과 동기부여를 받아온 시간이었다.





   집에서 소소하게 남편과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각 1학년/2학년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했다. 어느덧 함께 미국에 건너와서 산 시간이 벌써 2년이다. 잘 버티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이제 시작인 느낌이지만 같이 잘 이겨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는 생존이지만 또 동시에 매일이 배움이다. 남들보다 늦게까지 배움을 추구하는 만큼 더 깊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학기는 끝이 났지만, 바로 오는 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렇지만 정규학기는 아닌 만큼 시간적 자유도가 커질 전망이다. 조만간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시작하는 글을 기록해 봐야겠다. 어찌 되었던 이번 학기도 끝!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같았던 약혼식, 그리고 보통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