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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n 12. 2024

향수병 치유하러 왔습니다

미국 유학생의 여름방학 맞이 한국 방문


    한국에 오니 존재하기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뭐니 뭐니 해도 나고 자란 곳이 최고구나 싶다. 말 통하는 곳에서 비슷한 문화적 가치관 가진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있는 게 편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내내 문장을 만들랴 번역하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고, 예의나 관습도 몸에 익어 긴장되거나 어려울 것이 없다.


    익숙함은 축복이구나 싶은 중이다. 나름 미국에서도 잘 적응하고 학교도 곧잘 따라가서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사소한 부분들에서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언어와 문화적인 전제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 좋다. 확실히 사회 속에서 효능감이 있는 채로 사는 것은 다르다.


   결론은 한국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아직 공부가 4년이나 남았지만 빨리 마치고 돌아오고 싶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박사생들은 미국에 남아 살고 싶어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아무리 선진적이고 급여나 복지도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다고 한들, 소수자로 사는 불편함이나 이질감이 그런 이점들을 뛰어넘는 것 같다. 다시 치열한 생존의 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겁이 난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온전히 즐기고 가겠다는 의지와 실천을 기록으로 담아보았다.

    바뀐 광화문 광장을 처음 가봤다. 선선한 여름밤에 저녁을 먹고 산책하기 좋았다. 퇴근한 직장인들도 많고,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있고 특유의 복작한 분위기가 좋았다. 시골에 사니 이런 복작거리는 분위기마저도 그리웠다.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도 가고, 광장도 가보고, 청계천도 걸어보았다. 그리웠다, 도시여!





    남편과 시댁 순회공연 도중, 가장 빽빽했던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밤에 찜질방에 갔다. 크....! 이 또한 얼마나 그리운 열기였는지...! 고온 황토 방과 냉방을 오가며 땀도 쭉쭉 빼고, 따뜻한 침대실에 누워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스르르 잠에 들었다가 땀을 쭈욱 빼고 개운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외국 친구들이 오면 데려와도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산 스파랜드 정말 기가 막히다.





   제일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다. 미국서 외로울 때도 항시 24시간 같이 카톡 방에서 수다를 떨어서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으로는 늘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다. 석사 때부터 아주 징하게도 붙어 다니고 있다. 마침 또 다들 같은 필드에 있어서 미국심리학회 다이어리 굿즈를 사다 줬는데 좋아해 줘서 행복했다. 사륜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음식만 계속 추가하면서 수다만 5시간을 떨어 제꼇다.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빨리 돌아와서 더 자주 놀고 싶다.






    7살부터 결혼 직전까지 살던 친정 동네다. 언제 와도 늘 같은 모습인 게 푸근하고 좋다. 비록 녹이 아파트 벽면에 줄줄 흐르는 아주 늙은 동네지만, 변하지 않아 좋은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오래전에 지어져서 아파트 간 간격도 넓고 녹지가 많은 것이 장점이다. 푸릇푸릇하니 산책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동네다. 독립하고 다시 와서 부모님과 사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한 달간 잘 사려서 안 싸우고 지내다가 가는 것이 목표다.







    진짜 그리웠던 것 중 하나, 한국 아이스 라테다. 고급 진 곳에 찾아갈 필요도 없다. 그냥 저렴한 가성비 프랜차이즈 아이스 라테도 맛있다. 싸고 양 많게 쭉쭉 수혈할 수 있는 이 꼬수운 라테 맛이 그렇게 그리웠다. 1일 1라테로 소원 성취하고 있다. 미국에 돌아가면 다시 캡슐 커피로 돌아가야 하기에......! 누가 블루밍턴에 메가커피나 컴포즈 하나만 열어줘도 소원이 없겠다. 학교 가는 길에 하나 딱 픽업해서 가면 훨씬 살만할 터인데.





   한국에 오자마자 머리부터 볶았다. 시세이도 셋팅펌을 7만 5천 원에 했다. 미국에서 했다면 30-40만 원은 나왔을 텐데 말이다. 그리웠던 외계인 파마 기계도 머리에 잔뜩 꽂고 하품으로 시차를 이겨내며 탱글탱글한 컬을 얻어냈다. 남편도 비로소 세련된 머리로 이발을 할 수 있었다. 미국 시골에서는 한국보다 세 배는 비싼 돈을 주고 이발을 하고 오면, 남편 머리 뒤편 수평이 안 맞아서 늘 눈썹 칼로 집에서 리터치를 해주어야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이 외국 살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K-미용 실력 최고다.





   널럴-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계절학기 온라인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무심하게 테이블에 올려둔 채 화장실을 다녀오니 비로소 한국에 있구나 실감이 났다. 화장실에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녀오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참 별게 다 좋다. 역시 사람은 박탈을 경험해 보면 그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알차 디 알찬 한식 먹방이다.

    그간 먹고 싶었던 것을 다 먹으며 한 풀이를 하고 있다. 너무 행복하다! 역시 도시로 오니 맛있는 것이 너무 많다.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물가 + 팁 + 세금에 비하면 저렴하기 그지없다. 임금은 한국처럼 받는데, 물가는 미국인 박사과정 로동자의 삶이란....! 모쪼록 양가를 오가며 맛있는 것을 아주 잘 얻어먹고 다녔다.


   밥값으로 '애 낳아라' 폭격을 받은 것은 안 비밀이지만 각종 산해진미 값이라고 속으로 퉁쳤다. 역시 세상에 공짜 없다. 이마저도 한국 그 자체겠지 싶었다.




    한국 예능도 신나게 보고 있다. 지락실 시리즈를 매우 사랑하는데, 이번 스핀 오프 편이 참 편안하고 좋았다. 어렵고 불편한 것에 계속해서 부딪혀야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퍽 인상 깊었다. 백날 천날 미국 유학 생활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다시금 또 돌아가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타지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다가도, 배우고 얻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또 참아진다.



   남은 시간 한국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서 향수는 내려놓고, 용기는 채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여름 방학은 생산성은 온전히 내려놓고, 충전과 만남에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한국 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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