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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06. 2024

유학생 부부의 결혼기념일, 그리고 여전히 정신없는 일상


   계절이 바뀜은 출근할 때 비로소 느껴진다. 아직 한낮은 덥지만,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오면 꽤나 쌀쌀하다. 학기 초까지만 해도 출근할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이제는 어둑 어둑-하다. 대신 아침 일출을 볼 수 있는 것 하나는 참 좋다. 사진으로 가져와봤다.

    언뜻 보면 해 질 녘 같기도 하지만, 해뜰녘이다. 하늘이 핑크빛으로 가득하다. 비행기가 남기고 간 흔적들도 아름답다. 아침 출근의 한 줄기 위안이 된다.

   그럼에도 8시 출근은 늘 힘들다. 누군가는 새벽 5시,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던데,..! 알람 안 놓치고 제때 일어나 출근만 잘해도 미라클이다. 미라클 모닝이 별건가? 매일 안 늦고 제때 일터 잘 가면 그게 미라클이지(?).





    매주 빠짐없이 3시간씩 하고 있는 Research Writing Group이다. 이렇게 딱 다른 친구들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강제성을 가지고 하니, 연구가 다른 일들에 치여 도태되는 일이 없다. 몸과 정신이 조금 더 피로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시간에 분석 돌린 연구 결과를 지도 교수님께 컨펌을 받고, 이것저것 세부적으로 논의 후 드디어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랩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위 사진은 랩 미팅에서 발표 후 지도 교수님이 보내준 이메일이다. 격려와 지지 그 자체다.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은 여전히 많이 어려운데, 지도 교수님의 둥가 둥가 덕분에 한껏 쭈그러졌던 자신감이 조금이나마 펴진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나아가 보아야겠다.



   위 사진들은 어김없는 심리 상담 센터 풀타임 근무 날의 모양새다. 풀 타임 근무 날은 12시부터 1시까지 오피셜 점심시간이 있어서 호다닥 밥을 먹고 캠퍼스 산책을 나선다. 초가을의 하늘이 어찌나 청량하고 아름답던지. 코발트블루색 하늘과 푸르른 잔디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산책 시간은 언제나 충만하다. 더불아 가을이 되면서 공기도 바삭하니 습기 하나 없이 쾌적하고, 기온도 꽤 선선해져서 걸어도 땀도 안 났다. 35분 정도 선선한 날씨에 걷다가 들어갔다.


   시골의 삶이 퍽 괜찮은 점은 어딜 가든 산책하기 좋고, 티 없이 맑은 공기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이번 주에는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하필 주중에, 그것도 제일 피로한 풀타임 근무 날이라 심신이 조금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축하를 게을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 블루밍턴에 몇 안 되는 파인 다이닝(에 가까운...)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갔다. 요새 둘 다 흑백 요리사에 심취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심사를 하면서 먹느라  즐거웠다는 후문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렀는지 모르겠다. 벌써 꽉 채운 결혼 3주년을 보내고 4년 차에 진입한다. 사실 남편이 아니었으면 혼자서는 미국에 올 생각도 못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예정에도 없던 큰 도전과 모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렵고, 걱정되고 많이도 불안했는데, 지금은 삶에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에 무한 감사한 마음이다. 미국살이를 하면서 견문과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 생활은 "굳이" 제 손으로 핸디캡을 일상에 추가하는 일이다. 매일이 생존이고, 도전이고, 긴장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성취해나가는 것이 짜릿하기도 하다. 또, 부족함을 안고, 받아들이고 살아감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 삶으로 초대해 준 사람이 남편이었고, 또 함께 버텨나가는 전우가 되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일터에 나리가 놀러 왔다. 첫 번째 사진은 친구를 반기는 나의 모습이다. 사실 저토록 발랄한 줄 몰랐는데, 나중에 사진을 받아보니 세상 해맑을 수가 없다. 나이스 타이밍으로 심리 상담이 없는 시간대에 맞추어 나리가 놀러 와서, 센터 투어를 시켜줄 수 있었다. 개인 오피스 겸 상담실, 집단 상담실 등등 센터를 한 바퀴 주욱 아울렀다. 나리가 신기해하고 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이 된 모습을 보니 나도 괜히 뿌듯하고 덩달아 신이 났다.


    나리가 오면서 달달한 매그놀리아 쿠키 선물도 주고, 사진도 많이 남겨 주었다. 일상에 치이다 보니 어느덧 새로움도 잊어가던 차에 나리 덕분에 기념사진도 남기게 되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익숙한 장소에서의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곤 하는데, 올해 실습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고마워!


    심리 상담 센터에서는 다양한 미국인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미국은 다양성의 스펙트럼이 정말이지 어나더 레벨이다. 그나마 대학이라는 한정된 정체성이 있는데도 이 정도이니, 개업가나 지역사회정신건강 센터를 가보면 또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런 케이스들을 접해보는 게 커리어 측면에서도 큰 경험치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그냥 내담자들 보는 일이 그저 좋다. 힘들지만 보람되고, 의미롭다.








    퇴근하고 집 가던 어느 날, 저녁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하늘에 그린 자연의 그러데이션이란......! 또 이런 것 보면 호들갑 안 떨고 어찌 버티랴. 이날은 특히나 녹초가 된 하루였던지라, 하루 끝의 잔잔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오전에 파트타임으로 심리 상담 센터 근무를 하고, 학과로 넘어와서 수업을 듣고, 가르치는 수업의 오피스 아워를 하고, 랩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고...... 상담사였다가, 학생이었다가, 시간 강사였다가, 연구자였다가, 이렇듯 하루에 다 다른 역할이 계속 바뀌는 날은 특히 더 고된 것 같다. 동선도 길고 그냥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하루에 한 가지 역할만 하는 날들이 조금 더 수월한 것 같다.

     하여, 긴 긴 하루를 보내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에 오는 길에 초콜릿 쇼핑을 했다. 거의 매 포스팅 등장하는 것 같다. 카카오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합리적인 핑계로, 주중에 먹을 초콜릿 바를 또 들여왔다. 기라델리 인텐스 다크초콜릿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라인이다. 거의 모든 맛을 다 돌려가며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라즈베리 다크초콜릿을 사 왔다. 지난주에는 플레인 다크초콜릿과 씨 솔트 아몬드 다크초콜릿을 먹었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세계 3대 초콜릿이 괜히 된 것이 아니다(광고/협찬 일절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처음 사본 초콜릿인데 토니스 초콜릿이라고, 공정 무역 초콜릿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초콜릿이 균일하지 않고, 아래 사진처럼 고의적으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것이 시그니처인 초콜릿이다. 다른 초콜릿보다 조금 비싼데 훨씬 두껍고 맛도 궁금해서 한 번 사보았다. 주중을 위해 아껴두고 있는데, 아마 다음 포스팅 즈음에는 후기를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초콜릿 때문이라도 다음 주가 기대되는 효과가 있다. 주말에까지 않고 잘 아껴두길...!

출처: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






    역시나 한 주의 마무리는 테니스다. 거진 랠리만 연습하다가 처음으로 팀전 게임을 해보았는데 재밌었다. 랠리와는 또 다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이 있다. 예쁘게 주는 공만이 아니라 오만 가지 방법으로 오는 공을 받아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요일 퇴근 후에 두 시간 치고 나면 다음날 앓아 눕는다.








  이번 한 주도 정신없고 평범하게 잘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결혼기념일도 축하하고, 좋은 사람들과 소소한 시간도 보낸 한 주였다. 다음 주에 새로 맛볼 초콜릿을 기대하며 한 주 일기를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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