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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21. 2024

아프고, 못 쉬고, 못 가고, 욕 먹는 유학생 라이프

어쩌다 나는 프로 불참러가 됐을까


    우리가 무슨 민족인가? 우리는 신체화의 민족이다. 8주 차 반환점을 코앞에 두고 앓기 시작해서 주초에 크게 한 번 고생을 했다. 수업도 빼고, 월-화 통으로 집에서 뻗어 누웠다. 수요일 정도 되니 컨디션이 돌아와서 겨우 출근했다. 너무 다행인 게 심리 상담 센터가 학내 병원에 있어서, 출근하고 살포시 빠져나와 쉽게 아래층에서 진료를 보고 올 수 있었다.

    지인 의사가 물에 소금 넣으면 수액이랑 똑같다길래 출근할 때 텀블러에 핑크 솔트를 담아 가서 물을 타서 마시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너무 맛이 없어서 녹차라도 풀면 좀 나을까 싶어서 녹차를 풀어둔 사진이 위 왼쪽 사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도해서는 안 될 레시피였다. 맛없어도 그냥 소금물이 나았다. 비리고 짜고 난리 났다. 하여 이번 주는 녹차는 빼고, 텀블러에 소금 탄 물을 달고 다녔다.


   그리고 처음 가본 병원 진료는 소득이 없었다. 의사의 결론은 '나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그냥 코로나랑 플루 검사나 해 보자'였다. 검사 직후 나온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물음표만 남기고 약도 한 알 없이 끝난 진료였다고 한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과도한 커피 섭취가 원인 같기는 해서 커피를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알다가도 모를 몸이다.





     아플 때는 역시 국물이 댕겨서, 무를 한가득 넣고 시원하게 명란 두부찌개를 끓였다. 눈물 콧물 쏙 빼며 정신없이 먹으니 몸이 확 풀리는 게 느껴졌다. 역시 아플 때는 국물이다. 무를 많이 넣어 어묵 국물 같은 맛도 나고, 명란의 깊은 감칠맛과 두부의 고소함이 어우러져서,



   생존입니다.




     요리는 생존이었으나, 박사 라이프 생존은 고전을 면치 못한 한 주였다. 출근길에 집을 나서는데 출근하는 나리를 딱 마주쳤다. 8시 출근의 전우애와 위로를 느끼며 출근할 수 있었다. 이제 아침 기온이 많이 차서, 출발 전에 차를 예열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출근에 늦지 않으려면 5분 정도 더 일찍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출근을 해보니 공용 주방에 케이크와 꽃, 도넛과 온갖 단것 들이 즐비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오늘이 National Boss Day라고 한다. 스태프가 30명가량 되는 큰 센터라 갈등도 많고, 운영이 쉽지 않을 법도 한데 센터장님은 격의도 없고, 스태프와 트레이니들을 되게 온정적으로 대해준다. 그래서 National Boss Day를 맞아서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대학원생에게 공짜 스낵만큼 좋은 게 없어서, 냅다 도넛을 냉큼 집어왔다.


센터장님, 여러모로 스릉흡느드 �






   이번 주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점심 메뉴를 평소보다 거하게 먹은 탓이었는지, 점심시간 직후 1시 심리상담할 때 졸려서 죽을 뻔했다. 원래 오후 식곤증이 심한 편이라 일부러 점심은 가볍게 샐러드 같은 것들 위주로 싸가는데, 이날은 전 날 해 먹은 볶음밥이 남아 있어서 양이 조금 많았지만 아까운 마음에 다 싸와서 해치웠던 것이다. 위 오른쪽 사진처럼 집에서 싸온 커피는 아침 9시부터 애초에 동이 나버린 상황이었다. 미국 시골은 일하는 곳 근처에 잠깐 나가서 커피 사 올 곳이 마땅찮다. 메가커피 컴포즈 커피가 절박하다.


   특히나 심리 상담실은 무드 등이 아늑하고, 카우치 형식이라 밥 많이 먹고 등 붙이고 앉아 있자니 잠이 솔솔 와서 견딜 수가 없다. 잠과의 사투를 벌이는데, 되게 괴로웠다. 앞으로는 밀프랩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해서 오후 심리 상담 있는 날은 가벼운 점심으로 해결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어느 주중의 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남편과 칼리지 몰에서 즉석에서 구워주는 피자를 먹고 나오는 길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시골은 시야를 가리는 스카이라인이랄 것이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하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로그에 적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하늘을 많이도 찍는 것 같다.


   이번 주 지도 교수님 생일이기도 했고, 심리 상담 센터에서 National Boss Day를 축하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고 싶어서 랩 미팅에 치즈케이크를 사 갔다. (사진은 전날 남편이 같이 케이크 사는 것을 도와주는 모습이다.) 교수님이 무척 수줍어하셨지만 좋아해서 뿌듯했다. 랩의 학부생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잘 먹어주어 흐뭇했다. 미국에서 좋은 Boss들을 만나 실습이건 랩이건 화목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고 감사한 부분이다.






    그리고 바로 이번 주말은 죽음이 주말이었다. 단풍이 절정인 주라 다들 단풍 보러 많이들 다녀오는 것 같았는데, 내게 허락된 유일한 가을은 창문은 열고 일할 때 맞이하는 바삭한 가을바람뿐이었다. 토요일에 온라인 수업 중간고사를 쳐야 하고, 일요일까지 다른 과목 중간고사 페이퍼와 또 다른 과목 논문 요약 데드라인이 있었고, 화룡점정으로 월요일 수업 토론 리딩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 초에 아파서 일을 못해둔 게 꽤나 크리티컬했다.


      이렇듯 해야 할 것들의 압박이 큰 탓에 매주 가던 테니스 모임에 불참 결정을 해서 남편한테 쿠사리를 엄청 먹었다. 라스트 미닛에 불참 통보를 했다고 남편한테 욕도 어지간히도 먹어서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지경이었다.


     일요일 끝에 돌아보니 주말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줄여야 하는데 커피에 절여져서 정신없이 일을 쳐내면서 보낸 것 같다. 퀄리티를 일 순위로 포기한 덕분에 해야 할 것들은 일단 다 했는데,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안 난다...... 모쪼록 주말을 하얗게 불태웠는데 회복할 틈도 없이 바로 또 한 주의 시작이라니 ^ ^  눈물이 난다, 크흡......!




 잔인한 주말이었다.


    그나마 지난 목요일에 랩 미팅 시작 전에 20분 정도 시간이 떠서 캠퍼스 산책을 했던 게 큰 위안이다. 따스한 햇살 아래 공기는 서늘해서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짧은 짬에 그냥 어디 박혀서 핸드폰이나 보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지런히 나와서 걸어 다닌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이 시간조차도 없었으면 무슨 계절이 가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보냈을 것 같다.


잠시 파묻힌 일상에서 벗어나 일과 밖의 장소를 걷노라면 기분 좋은 환기를 경험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애정해 마지않는 대학 동기 친구 놈들 무리 중 잠식이 오빠가 이번 주말 결혼을 했다. 운 때가 잘 맞아서 지난여름 잠시 귀국했을 때 청첩장 모임도 하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본식에 불참하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 삶의 중요한 순간에 딱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말이다.


   고해성사를 하자면, 사실 정기자가 결혼식 때 영통을 해준다고 했었는데, 이번 주말이 너무 빡세다 보니 기다리다가 저항 없이 잠들어버려 영통 오는 것도 전혀 못 듣고 자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카톡 방으로 갖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인의예지까지 나왔다....... 휴! 유학 마치고 들어갈 때쯤 죄다 손절당해있을 것 같다 ^ ^ 이토록 행복한 유학 생활이라니!


    말은 또 저렇게 해도 다 이해해 줌을 알지만, 그냥 너무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다. 일생일대의 경사에 함께하지 못한다니,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관계와 이것저것을 희생하고 여기 와있나 그런 생각이 다녀갔다. 여러모로 브로 불참러가 되어 욕도 많이 먹고 데드라인에 몸도, 정신도, 마음도 쉽지 않은 한 주였다. 쉬지도 못한 채 열어야 할 한 주가 두렵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시간은 흐를 것을 안다.




이번 주는 조금 더 무탈하게 지날 수 있기를, 조금 더 쉼이 주어지기를 바라보며 포스팅을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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