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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장 놓이는 곳, 한국

by 화햇






한국이다.



마음이 놓이고 너무 편안-하다.


정신없이 놀고먹느라 어느덧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잠도 잘 못 자고 무리를 많이 한지라 도착해서는 시차 적응도 좀 하고 잠도 보충하고 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요 이 땅-하고 과식과 약속을 무리하게 반복했더니 도착한 지 얼마지않아 심히 앓았다. 급성 위염으로 새벽에 응급실까지 다녀왔으니, 얼마나 미련하게 먹고 마시고 놀았는지 모른다.



이놈의 과욕이 늘 문제다.


초반에 호되게 아프고 교훈 삼아 다시금 모든 페이스를 늦추었다. 약속도 덜 잡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천천히 먹어도 다 먹을 수 있다고 마인드셋을 고치고 덜 조급하려 애썼다.





워, 워, 워.




혼자 있는 시간도 좀 갖고, 비로소 이렇게 글도 다시 쓰고 있다.





잠시 멈추어 돌아보니 참 소중한 시간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맨날 '탈조선'을 운운하며 불평불만하며 살았지만, 막상 해외에서 꽉 채운 3년을 살아보니 우리나라에 가진 애정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 오니 '마음이 놓인다'는 말이 아마 내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고,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고, 편리하다.



고로 마음이 놓인다.



무엇보다 한국에 깊은 뿌리감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큰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너무 포근하고 정겹다.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익숙하고 그대로인 사람들이 주는 안정감이란......! 피상적이고 조심스러운 미국에서의 관계에서의 허전함은 온 데 없고, 사회적 체면이나 가면 없이 푼수로 존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실수해도 괜찮고, 없어 보여도 괜찮음을 안다. 이미 못난 날 것의 모습은 서로 볼 대로 다 봤으니 말이다.......


커리어적으로나 처우로 보나, 시장 상황으로 보나 여러모로 미국에서 심리학자로 남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내가 돌아오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람이다. 하루빨리 이 긴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부대끼며 복작거리며 살고 싶다.



가장 마음이 놓이는 곳이 내가 살 곳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했다.


놀라울 것도 없지만 급여는 없어도 일은 계속된다. 미국 박사 과정의 근로 계약은 10개월이다. 1년 12달 중 여름 2달을 제외하고다. 오는 8월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연례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게 되어 부지런히 포스터를 제작하고 있다. 또, 교수님이랑 진행 중인 연구 논문과 온라인 계절학기 수업도 병행 중이라 놀고먹는 와중에 틈틈이 할 것이 꽤 있다.


입금이 안 돼서 그런지 일할 맛이 나지 않으나, 그래도 다 내 것이니 열심히 해야지 뭐 어떡하나 싶다. (안 그래도 친구가 회사를 관두고 박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급여 없이 일하는 즐거움을 설파해 주었다.) 한국에서 놀고먹는 바이브가 장착이 되어서 그런지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영 쉽지 않다. 일단 이메일 답장 시간이 기본이 2-3일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보통 2-3시간 이내였으니 유의미한 딜레이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나른하고 기분이 게으르다 요즘.



조금만 더 이 게으름에 취해있고 싶다.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 울적-하니 떠나기 싫고 우울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익숙한 세상과 포근한 사람들을 떠나 차갑고 낯선 타지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나 싶다. 그렇지만 또 막상 가면 나름 에너제틱 하게 바쁨을 즐기며 살아갈 것을 안다. 또 새로운 학기, 새로운 인연들, 새로운 직책과 책임, 업무들이 나를 정신없이 반겨줄 것이다.



이토록 오락가락하는 오만가지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서 펑퍼짐하게 지내는 요즘이다. 슬슬 출국 2주를 앞두고 할 것과 게으름의 사이를 줄타며 남은 시간을 최대한 행복하고 알차게 보내야겠다.




이상 혼란스럽고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유학생의 단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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