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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APA 2025)에 다녀오다

발표와 배움, 만남의 기록들

by 화햇


한국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복귀하였다. 진미식당의 달달-한 간장게장 속살과 주홍빛 알들의 여운을 간직한 채 말이다.


인천에서 시작하여 텍사스를 경유하여 집이 있는 인디애나까지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텍사스 공항에 즐비한 아메리칸 항공 꽁무니에 달린 성조기들, 그리고 얼어 죽겠는 실내 냉방온도를 보아하니 미국에 돌아왔음이 실감이 났다. 텍사스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데 너무나 추워서 긴팔 옷 위에, 남편 바람막이에, 담요까지 둘둘 두르고 있었다. 남편이 거지꼴이라고 기념하여 한 컷 남겨주었다.



본디 여행 다니면서 소지품 도난 걱정 없으려면 거지꼴로 다니는 것이 최고다.



시차가 적응될 새도 없이, 바로 학회가 열리는 덴버로 향했다. 요즘 비행기를 너무 자주 많이 타서 정신이 혼미하다. 한국 >텍사스 >인디애나 >덴버 이렇듯 시간대를 계속 넘나들다 보니 수면 스케줄이 박살 나서 한국 시간도 미국 시간도 아닌 이상한 한낮에 잠들어 새벽에 깨기를 반복 중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아직까지는 청춘(?) 임을 주장하며 가혹한 스케줄도 강행해 본다.



현실은 청춘 호소인 만학도 2인.





APA 2025 Day 1.

그렇게 도착한 덴버에는 학회 깃발이 시내 곳곳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학회 첫날이 밝았다. 등록을 하고 배지와 무료 에코백, 그리고 포스터 프레젠터 리본을 받아왔다. 패밀리 게스트로 사전 신청해 둔 남편 패스도 미리 찾았다. 가장 설렜던 모먼트다.
















APA는 미국 최대 규모의 연례 심리 학회다. 실제로 가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람도 정말 많고,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발표 세션이 25-30개 정도 되어서 어디 가서 무엇을 들을지 고르는 데만 시간이 꽤 들었다. 다행히 한국에서부터 미리 갈 곳을 예약해두었는데, 세션 간 룸 이동만 해도 거리가 상당해서 유산소 운동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심리학자들이 한 데 모인 것을 보니 가슴이 웅장하고 설렜다.




포스터 발표 #1

이번 학회에서는 두 개의 포스터를 발표했는데 하나는 첫째 날, 다른 하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발표 시간 한 시간 내내 한 시도 쉴 틈 없이 계속 게스트가 있었다. 기존 발표해 본 한국이나 유럽 학회들에 비해 포스터 세션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대화와 질문도 훨씬 많이 해서 예상치 못하게 되게 인터랙티브한 발표 세션이 되었다. 동시에 삐질삐질 식은땀이 터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힘들고 긴장됐지만 누군가 내 연구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주고, 궁금해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포스터 발표를 마치고 기진맥진 해진 몸을 이끌고 학회장 근처에서 가벼운 점심을 먹고 나니 긴장 풀림 + 식곤증 + 시차 어택이 한 번 크게 왔다. 하여, 오후 세션에 가서 열공을 하려던 계획을 잠시 변경하여 호텔에서 쉬다가 학과에서 주최한 소셜 이벤트에 다녀왔다. 사진을 못 찍었는데, 우리 랩에 새로 올 신입생 친구도 만나고, 반대로 랩 졸업한 분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타지에서도 학과 회식이 열리니 소속감도 더 생기는 것 같고, 학회가 더 풍요롭게 느껴졌다.


흥미로웠던 점은 학생들이건 교수들이건, 학회에 함께 온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소셜 이벤트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하여, 배우자, 어린 자녀들, 심지어는 부모님들까지 총출동해서 4-50명이 북적북적하게 서로 인사하고 인사시키곤 했다. 그리곤 다들 9시 정도 되면 파하고 집에 간다 - 회식이 일찍 끝나서 너무 좋다. 나도 남편과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시차 이슈로 배신당하고 혼자 갔더니 다들 "네 남편은 어딨어?" 하고 묻는 것이었다. 졸지에 과부가 되었다.



다음에는 잘 깨워서 데리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APA 2025 Day 2.

시차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멜라토닌의 도움을 받아 조금 눈을 붙인 뒤 이튿날을 시작했다. 둘 째 날은 Korean Psychology Network(KPN)이라고 하는 커뮤니티 오피셜 미팅으로 일정을 열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한국계 미국인 심리학자들의 커뮤니티다. 유학 중인 한국인 박사생들도 많고, 필드나 학계에서 일하고 계신 심리학자/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다. 한 데 모아서 단체 사진을 찍으니 그 수가 되게 많아 보이나, 실제로는 미국 땅이 워낙 광활해서 각기 다른 주에 퍼져있고, 또 유학생들 같은 경우는 한 학교에 한 명, 많으면 두어 명 정도 있는 정도라 사실 미국 사회에서는 되게 소수의 집단이다. 하여, 한인 종사자들의 이런 커뮤니티가 큰 위로가 된다.


이번에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서 알던 선생님들도 실제로 만나 뵙고, 또 다른 주에서 사는 선생님들 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쉽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개업가, 학계, 기관 등지에서 열심히 뿌리내리고 계신 선배님들 보면 희망차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번에 인사 나눈 선생님들 너무 반가웠고, 늘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미팅을 마치고는 호다닥 이동하여 지도 교수님 세션을 들으러 왔다. 학회에서 세션 발표하는 지도 교수님을 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맨날 후리한 옷 입고 학교에서 캐주얼하게 뵀는데 이렇게 보니 또 영락없는 빅네임 학자시다. 멋저부러! 이번 발표에서는 다문화 상담에서 필요한 치료자들의 Multicultural & Social Justice Virtue에 대해 강의를 했다. 평소 랩에서 메인으로 다루던 분야는 아니어서, 늘 보던 컨텐츠가 아닌 새로운 내용을 배웠는데 알차고 재밌었다.






이어서 우리 과 교수님이 진행하고, 박사 후배가 발표하는 세션이 있어서 구경 갔다. 나름 박사과정생에게는 큰 무대라, 떨릴 법도 한데 발표를 너무 대담하게 잘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애들은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참 없다. 부러운 부분이다. 이 세션도 역시 다문화 상담 MCO Framework에 관한 최신 연구 프로젝트 결과들을 발표한 세션이었다. 이번 학회에 와보니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DEI는 실시간으로 뚜까맞고 있지만, 상담심리학 연구에서는 여전히 가장 주류를 이루는 주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팅과 여러 세션들을 듣고 저녁 무렵에는 KPN 소셜 이벤트에 다녀왔다. 모임이 열리는 레스토랑을 향해 가는 길에 다운타운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남편을 세워놓고 찍어줘 봤는데(왼쪽 사진), 필터 하나 안 넣고 찍은 것인데 어딘가 포토샵 처리한 것처럼 나와서 웃겨서 올려보았다. 인물을 중심으로 누끼를 딴 것처럼 몸만 탁 튀는 느낌이랄까? 뭐가 문제인 지는 모르겠지만 100% 무보정 원본임을 해명하는 바이다.


KPN 소셜에서는 반가운 얼굴들과 보다 더 가까이서 캐주얼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말로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다. 신분도 거진 비슷하고, 느끼는 것들이 비슷하다 보니 공감대가 크다. 또, 워낙 좁은 커뮤니티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지인이었다. 지도 교수님이 다른 학교들과 연구 콜라보를 워낙 많이 하는 편인데, 연구 프로젝트로 얽혀있는 한국인 박사 선생님들과도 여럿 만나 뵐 수 있어 반가웠다.



지구는 넓고 한인 사회는 좁다. 착하게 살자.









APA 2025 Day 3.

셋 째 날 아침도 소셜로 열었다. 지도 교수님이 체어로 있었던 상담심리학 분과 내 긍정심리학 섹션의 소셜 모임이었다. 교수님이 오면 아침을 사준다는 말에 랩원들이랑 이렇게 쪼로로 다 같이 아침 얻어먹으러 몰려갔다. 물론 아침 8시부터 시작인 것이 함정이었지만 말이다. 호스트 교수님들이 다 아침형인 이슈로 소셜 모임을 아침 8시로 잡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들 푸근하고 친절하시고, 격의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소셜라이징 하고 올 수 있었다.







다만, 아침 댓바람부터 너무 소셜을 하고 온 나머지 그 이후로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오후에 또 다른 포스터 발표가 있는데 셋째 날 즈음 되니 피로도 쌓이고, 긴장은 다 풀리고 해서 고생을 조금 했다. 활력을 끌어모으고자 스몰 사이즈 아이스커피를 한 잔 사 마셨는데 상단 우측 사진과 같은 커피를 주었다. 단언컨대 한국 스타벅스 벤티보다 크다고 확신하는 사이즈였다. 점원에게 가서 나 스몰 사이즈 시켰는데 너무 큰거 줬다라고 순순히 고백했는데, 웃으면서 이게 스몰 사이즈 맞단다.



아하! 웰컴 백 투 아메뤼카.

커피 부스터로 포스터 발표 직전 크리티컬 디스커션 섹션을 하나 듣고 갔다. 슈퍼비전 관계 내에서의 Microaggression과 차별을 예방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섹션이었는데 되게 직설적이고 흥미로웠다. 이런 고민들을 심도 있게 하는 것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외국인 상담자에게 내담자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하던가, 트레이니의 악센트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자를 바꿔달라고 했다면, 슈퍼바이저로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내용이 오갔다. 속으로 '내 얘긴데?' 생각하며 공감의 물개 박수를 쳤다.



그런데 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지......?




포스터 발표 #2

두 번째이자 마지막 포스터 세션이었다. 마지막 날 오후라 그런지 다행히 첫날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어 비교적 수월하고 널럴하게 마쳤다. 안 그래도 체력도 거의 다 해가고 다크 서클이 더 내려올 수 없을 만큼 내려와 있던 터라 안도했다. 이로써 알차 디 알찼던 3일간의 APA 2025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처음 참석해 본 미국심리학회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다채롭고 유익했다. 심포지엄 발표 주제도 정말이지 다양하고 유익한 주제들도 많았고, 소셜 이벤트들도 재밌었다. 새삼 얼마나 넓고도 큰 세상에 와 있는가 실감도 들었다. 익숙한 한국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려니 조금 울적하고 막막한 마음도 있었는데, 막상 학회에 다녀오니 동기부여도 되고 또 다시금 배우고 연구로 뽑아낼 의지가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거의 바로 넘어와서 시차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그만큼 또 에너지와 동기를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다가오는 가을 정규학기도 또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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