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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gie Woogie Jan 27. 2021

89년도의 젊음은 지금도 젊다

매드체스터와 <The Stone Roses> (1989)

지미 헨드릭스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27살에 세상을 떠난 것 말고도, 시애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난히 락 뮤지션들을 많이 배출해낸 도시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시애틀이 유명하다. 지미 헨드릭스를 낳고, 너바나를 기른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시애틀이 있다면, 영국에는 맨체스터가 있다. 1980~90년대 영국 락 음악은 사실상 맨체스터가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뮤지션들을 길러냈다. 한 번씩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조이 디비전, 더 스미스, 오아시스 등이 모두 이곳 출신 밴드이다. 그리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 블로썸즈와 The 1975와 같은 젊은 밴드들에 의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들. 이쯤 되면 시(市) 차원에서 수돗물에 뭐라도 넣는 것 아닐까?

이쯤 되면 맨체스터 수돗물에 뭐라도 타 넣은 것인가 싶겠지만, 더 그럴싸한 추측은 아마 인디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클럽이 많다는 것이다. 평소, 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시엔다 클럽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조이 디비전의 후신인 뉴 오더가 운영하던 클럽인데, 맨체스터에 위치했었다. 뉴 오더는 자신들의 히트곡 "Blue Monday"가 낸 상업적 성공의 일부를 하시엔다 클럽에 투자했다. 또한 팩토리 레코즈라는 독립 레코드 사를 운영해서, 인디밴드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뉴 오더라는 든든한 지역 선배들 덕분에 맨체스터의 후배 인디밴드들은 그들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릴 기회가 생긴 것인 셈이다. 이런 걸 보면 괜히 지연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맨체스터와 매드체스터

"Blue Monday"는 맨체스터의 인디 밴드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뉴 오더의 "Blue Monday"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소개할 스톤 로지스도 없었을 것이다. 위 문단에서는 맨체스터 음악 씬 형성에 대한 뉴 오더의 공을 금전적 지원 정도로만 설명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Blue Monday"를 들어보자. 조이 디비전에서 찾아볼 수 있던 만성적인 우울함은 곡의 근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들어도 그루브에 맞춰 몸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댄서블한 신스 팝이다. 이 곡은 댄스 클럽에 알 맞춤인 곡이었던 동시에, 맨체스터의 인디밴드들이 이와 같이 하우스 장르의 그루브를 가져올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시엔다 클럽은 1996년에 문을 닫기 전까지 음악과 쾌락을 찾는 사람들의 성지였다.

하시엔다 클럽에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70년대의 사이키델릭 락, 펑크(Funk), 그리고 전통적인 기타 락을 하는 밴드들부터 그리고 하우스 음악 DJ들이 교대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했다. 하시엔다에 모인 젊은 뮤지션들은 서로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락 밴드들은 하우스 음악의 귀에 꽂히는 신디사이저 사운드나 신나는 그루브와 비트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는 몇몇 밴드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일이 아니었고, 수년간 지속되어 'Baggy'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시엔다 클럽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는 음악 씬을 뛰어넘어 당시 맨체스터 20대의 문화 전반에 새로운 흐름을 조성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맨체스터를 달군 이 문화적 현상을 '매드체스터'라고 부른다. 미치다는 뜻의 'Mad'와 맨체스터의 합성어이다. 온갖 합법적이고 불법적인 쾌락을 찾아 하시엔다에 모인 청춘들이 영원히 청춘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젊음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1992년, 하시엔다 클럽의 돈줄이었던 팩토리 레코즈는 소속 밴드들의 스캔들과 음악적 실패로 인해 파산하고 만다. 하시엔다 클럽은 1996년까지 남아 있었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매드체스터의 광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매드체스터는 오아시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모든 문화가 으레 그렇듯이, 그 여파는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록 끝물이더라도, 하시엔다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시엔다를 들락거리고, 매드체스터 밴드인 인스피럴 카펫츠의 월드 투어를 돕던 한 젊은이는 고향인 맨체스터에서 동생이 밴드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이것이 바로 노엘, 리암 갤러거 형제의 오아시스의 탄생기이다. 이렇듯, 매드체스터의 열기는 브릿팝을 기폭 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매드체스터는 영국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문화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The Stone Roses

스톤 로지스의 멤버들. 좌측에서부터 이안 브라운, 레니, 존 스콰이어, 매니

스톤 로지스는 보컬(이안 브라운), 기타리스트(존 스콰이어), 베이시스트(매니), 그리고 드러머(레니)라는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구성을 가졌다. 하지만 이 네 명이 만들어 내는 'Baggy'한 사운드까지도 평범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레니와 매니가 구성해낸 그루브 넘치는 비트 위에 존 스콰이어는 자신의 공간감 있는 기타 사운드를 연주한다. 마지막으로 이안 브라운은 자신감 넘치는 가사를 그 위에 쌓아 올린다.  "I Wanna Be Adored"에서는 '나는 영혼을 팔 필요 없어, 그(악마)는 이미 내 안에 있다'라고 읊조리고, "I Am The Resurrection"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성경 속 예수의 한 마디를 가사로 사용한다. 자신이 악마이면서, 예수이기도 하다는 것인가. 신성모독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거침없는 스톤 로지스의 노래들은 매드체스터의 광기 넘치던 열기를 누구보다도 잘 포착해낸다. 아니, 스톤 로지스 자체가, 매드체스터의 광기요, 열기라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존 스콰이어와  (1989) 앨범, 그는 화가로서도 진지한 커리어를 쌓아 올렸다. 기타와 앨범 아트에서 잭슨 폴록의 영향을 볼수 있다.

스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에 대해서는 한 문단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I Wanna Be Adored"로 대표되는 다차원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신비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존 스콰이어는 멀리 가면 지미 헨드릭스부터 가까이는 더 스미스의 조니 마까지, 수많은 기타리스트의 매력을 섭렵했다. 화성 진행을 따라 쟁글거리는 존 스콰이어의 아르페지오는 더 버드(The Byrd)와 조니 마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강력한 중독성을 통해 스톤 로지스의 사운드를 리스너들에게 각인시킨다. "I Am The Resurrection"에서 4분 이상 이어지는 존 스콰이어의 기타 솔로는 전혀 지루할 틈새를 주지 않는다. 혼자서 연주한 솔로이지만, 마치 2명 이상의 기타리스트가 공격적으로 자신들의 연주를 주고받는 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Waterfall" 등의 곡에서도 여러 트랙을 겹쳐 녹음해서, 1인 다역을 맡길 자처 한다. 아, 그리고 스톤 로지스의 1989년 데뷔 앨범 <The Stone Roses>의 앨범 아트는 존 스콰이어의 작품이다. 레몬은 68 혁명 당시 최루탄의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시위대가 먹던 레몬을 상징한다고. 89년 맨체스터의 젊음에서 68년 파리의 젊음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Don't Stop"은 "Waterfall"을 역재생한 트랙 위에 새로운 가사를 입힌 곡이다.

레몬 같은 젊음의 새콤한 향취는 <The Stone Roses> 앨범의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벌써 세상을 다 아는 듯한 노래들은 청춘의 패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This Is The One"에서는 연인과의 이별을 두고 '바로 이것이야, 내가 기다리던 것이'('This is the one, I've waited for')라고 냉소적인 숙명론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무턱대고 '이제 내 인생에 사랑은 없다'라고 말했지만,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 맹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She Bangs the Drums"에서는 곧바로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져, 심장이 '드럼처럼 울리고' ('She bangs the drums') '땅이 요동치는' ('I can feel the earth begin to move')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디 가사뿐만이랴,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젊음의 무모한 패기는 앨범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Fool's Gold"(발매 시에는 앨범 수록곡이 아니었으나, 차후에 앨범에 수록됨.)에서는 드럼 머신의 샘플러를 이용해, 힙합과 락의 만남을 성사시킨다. 스톤 로지스의 무모한 실험 정신은 "Don't Stop"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앨범의 바로 전 곡인 "Waterfall"을 역재생한 트랙 위에 새로운 가사를 입힌 것이다. 이렇듯, 스톤 로지스의 '얽매이지 않음'은 청춘의 특권이 아닐까. 


얽매이지 않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다.
The past was yours,
but the future is mine.

"She Bangs the Drums" - <The Stone Roses> (1989)

스톤 로지스의 가사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She Bangs the Drums"의 일부분일 것이다. '과거는 너의 것일지 몰라도, 미래는 내 것이야'('The past was yours, but the future is mine')라는 자신감 과다의 한마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되었다. 1989년의 스톤 로지스의 음악이 2021년의 청춘들에게 젊음이란 얽매이지 않는 정신임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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