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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31. 2022

도솔가의 작자, 월명사는 누구인가?

김학성,「향가 장르의 본질」

월명사의 정체성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


도솔가는 이일병현의 변괴(하늘에 태양이 둘 나타나는 현상)를 없애기 위해 월명사가 지은 향가로, 죽은 누이를 위해 이 향가를 짓자 갑자기 지전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미륵보살이 이 향가에 감응하여 동자의 모습으로 현신했다는 등 기이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도솔가를 지은 월명사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향가 장르의 본질>은 삼국유사 권 25 감통 제7에 등장하는 월명사라는 인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월명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와 관련된 기록들을 보면, 그는 사천왕대에 살았으며 미타 정토신앙에 기대어 제망매가를 지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볼 때 그가 승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기록을 살펴보면 월명사는 스스로 자신을 '국선지도'라고 밝히는데, 이것은 그가 화랑 집단의 속했음을 나타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월명사가 도솔가를 지어 하늘의 달이 갈 길을 멈추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승려인가. 낭도인가. 아니면 주술사인가.


<향가 장르의 본질>에서는 월명사를 불교의 승려와 화랑의 낭도의 성격을 아우르는 '낭도승(승려 낭도)'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월명사를 미륵불과 미타불을 동시에 숭앙하는 법상종 계열의 사상가라고 반론하지만, 저자는 월명사 스스로 '국선지도'라고 명백히 밝힌 점과 경덕왕이 직접 그에게 명령한 것 등을 볼 때 불교보다 화랑적인 면에 비중을 두어야 사리에 맞다고 주장한다.


왜 저자는 월명사를 화랑적인 면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을까. 월명사는 "향가를 알뿐, 법성에는 익숙하지 않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화랑의 제도와 관련이 있다. 화랑은 흔히 호국선파와 운상인파로 나뉘는데, 운상인파의 경우 젓대(피리)를 잘 불어야 하고, 그것에 능숙하지 못한 화랑들은 무사 중심으로 이루어진 호국선파로 옮기기도 했다. 따라서 월명사가 젓대를 잘 불고 향가를 잘한 것으로 볼 때 화랑의 운상인파에 속해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월명사가 향가를 통해 달을 멈추게 했다는 것은 주술사가 아닌 풍월도와 관련이 있다. 풍월도는 당시 신라시대에 크게 행해진 것으로, 그것은 3교(유교, 불교, 도교) 중 그 어느 것도 아니며, 사상적 원리를 갖춘 고등 종교적 사유체계였다. 그리고 풍월도에 속한 이들은 자신의 신격을 천지신명과 동일시했는데, 그들이 천지신명에게 기원하는 과정에서 젓대와 향가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주장은 월명사의 주술사적 면모를 설명하는 데 관련이 있다.


ⓒ Photo By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논문에서는 풍월도 사상에 대해 이것이 종교인가, 이념인가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당시 풍월도는 따로 관사를 두어 특별 관리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종교적 외형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사찰에는 밀교승과 낭도승이 함께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는 월명사가 바로 이 풍월도의 낭도승에 속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풍월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교, 불교, 도교, 무교 등 외래 사상을 상대로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수용하면서 고등 종교적 면모와 사상체계를 갖추며 발전해나갔다. 그러나 22대 지증왕 시대에 이르러, 신라 국호를 확정함과 동시에 신선주의를 국가주의로 운용하는 체계가 마련되었고, 24대 진흥왕에 이르면서 풍월도는 종교성보다 이념성을 갖추게 된 것으로 유추된다.


진흥왕은 많은 사찰을 세우고 만년에는 자신도 삭발 출가하여 법운이라는 법명으로 불교에 경도하였다. 따라서 현실의 문제는 풍월도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불교로 풀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랑의 우두머리를 흔히 '풍월주'라 일컫는데, 이것은 풍월도와 화랑이 관계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서다. 풍월도는 '혜성가'에서처럼 달이 신격의 중요한 상징적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시대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적절한 명칭이라 사료된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으로 볼 때, 풍월도 사상을 근간으로 불교사상을 선별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위 주장을 종합해보면 왜 월명사가 불교적, 화랑적, 주술사적 면모가 두루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월명사의 정체를 화랑에 속한 낭도승이며, 깊이 들어가 풍월도에 속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사료가 발견된다면, 월명사의 정체에 대해 조금 더 파악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의 정체에 대해서 이렇게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몇몇 학자들은 월명사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향가만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쓴 향가의 성격은 물론,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월명사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월명사와 그의 향가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야 우리의 유산을 후대에게 잘 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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