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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20. 2022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하루'

박성원,『하루』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는 것은


86,400초. 1,440분. 24시간. 1일. 그리고 하루.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고 하지만, 각자의 삶에서 하루의 의미는 결코 똑같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는, 반대로 누군가는 사람을 해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처럼 세상에 다양한 하루가 있듯이 <하루(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10)>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누구보다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녀에게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신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하루에는 마치 누군가가 미리 설계한 것처럼 수많은 트랩들이 설치되어 있다.


모두가 바쁜 연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로 위의 사정은 그리 친절하지 못했다. 각자의 바쁜 일상으로 꽉 막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며칠 째 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았고, 반드시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다. 진작 병원에 데려갔다면 이렇게 악상황이 되지 않았겠지만, 그녀도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다. 마찬가지로 도로 위의 운전자들도 그녀의 사정을 알리 없었다. 이윽고 간선도로에 갇혀버린 그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연말이라 은행도 영업 마감을 일찍이 준비하고 있었고,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잠깐 은행에 들른 후, 곧장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만의 계획일 뿐, 모든 것은 그녀의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만 홀로 남은 그녀의 차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불법주차된 그녀의 차에 견인 고지서를 붙였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그녀처럼 주차단속요원 또한 그녀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난독증이 있는 한 아이가 그녀의 차에 다가갔다. 낯선 차에 붙어있는 한 장의 종이는 아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충분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그녀의 차가 견인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 안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게 선팅 되어 있었고, 견인기사는 열병을 앓고 있는 갓난아이를 볼 수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지 모든 사람들이 게으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누군가의 하루를 살필 여유가 모두에게 없었다.


@ Photo By PIRO4D, Pixabay


결국 그녀의 아이는 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간선도로에 갇힌 것, 은행 영업이 일찍 마감된 것, 난독증이 있는 아이가 견인 고지서를 가져간 것, 견인기사가 차량을 견인한 것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마실 것 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이것은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라, 충분히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선택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더 비통한 것은 단순히 재수 없는 하루 정도가 아니라, 이 하루로 인해 셀 수 없는 고통의 날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때때로 비참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 줄 기적이 나타나길 기도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전이나 기적 따위는 거의 없다. 그래서 말 그대로 기적인 것이다.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날 경험했던 비참한 하루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간선도로에 갇힌 날, 은행이 일찍 마감한 날, 차가 견인된 날, 아이를 가슴에 묻은 날 등 비참한 하루는 스스로에게 '시련'이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공감', 동시에 세상을 깨닫는 '경험'이 될 뿐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라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외국 소설의 광고 카피 문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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