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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Aug 20. 2022

정도전이 악장을 만든 이유

조흥욱,「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

1. 조선조 악장과 정도전


조선전기 시가문학은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문학이면서 동시에 노래로 부를 수 있는 시와 음악이다. 악장에서 경기체가로, 경기체가에서 가사로 갈수록, 음악적인 성격은 줄어들고 문학으로서의 구실이 확대되었다. 조선전기 사대부 문학들은 공적인 문학과 사적인 문학으로 나뉘었는데, 공적인 문학은 왕조 사업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사적인 문학은 자기 생활을 표현하고 즐기는 데 사용되었다. 이 중 악장은 나라에서 거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노래로, 공적인 문학에 속한다.


악장은 춤이나 노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어, 당대 상류층들이 즐기던 풍류의 한 형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선조 악장은 조선 창업과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위해 만들어져 시대적 이념과 관점이 잘 두드러져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학연구가들 사이에서 조선조 악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는 당대 유행했던 시조나 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의 의의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사적으로는 의의가 덜하더라도, 악장은 당대 존재했던 문학 장르 중 하나기 때문에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에서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악장의 발생과 의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도전은 조선 창업에 있어 실질적인 주역이다. 그는 조선 창업을 위해 문물을 정비하고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그 과정에는 악장 창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정도전은 왜 악장을 만들었을까


조선 창업 후, 태조와 관리들은 정치에 필요한 여러 관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예악(禮樂)을 관장하는 부서도 있었다. 특히 정도전은 예악의 정치적인 기능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그는 건국의 이념과 제도를 갖추기 위해 예악을 이용하였다.


정도전은 태조의 무덕을 칭송하기 위해 '무덕곡'이라고 통칭되는 <납씨곡>, <궁수분>, <정통방곡>을 지었다. <납씨가>는 태조가 일찍이 원나라 잔당 납흡출의 침공을 물리친 공적을 찬양한 노래고, <궁수분>은 태조가 왜구를 물리친 공적을 서술한 노래다. <정통방곡>은 위화도 회군을 통해 동방을 평안하게 한 공적을 기린다는 내용이다. 또한 그는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도 함께 지었는데, <문덕곡>은 태조가 장차 베풀어야 할 덕치를 다룬 내용이고, <몽금척>과 <수보록>은 태조가 왕위에 오를 조짐이 보였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도전은 악장을 직접 지어 태조의 공적을 찬양하고, 새로운 왕조의 위엄을 드높이고 정당화하였다. 그의 악장은 그의 사후인 성종 때까지 이어졌는데, 물론 정도전만 조선 왕조 위업을 찬양하는 악장을 지은 것은 아니다. 권근의 <천감>과 <화산>, 그리고 하륜이나 변계량 등이 지은 악장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조나 가사와 달리, 악장은 음악이 우선시 되었는데, 이 악장들은 대부분 장편이라 노래로 부르기에는 쉽지 않았고, 이미 있는 악곡에 가사를 짜 맞추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형식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도전은 조선 창업의 공덕을 악장을 통해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악장 창작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전문적으로 악장을 만드는 악사가 아님에도, 그는 어떻게 악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에서는 고려 때 정도전이 중용된 것은 악장에 능통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왕조 사업을 위해 직접 악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태조실록<납씨가>, 한국학중앙연구원 



3. 조선조 악장과 음악관에 대한 새로운 접근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전제 왕조들은 예악이 나라의 근간이다. 기본적으로 예악에서의 예는 성실함을 드러내고 거짓됨을 버리게 하는 것이고, 악이란 마음의 근본을 궁구하여 변화를 알게 하는 유교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정도전이 예악을 왕조 사업에 이용했던 것은 유교적 이념을 조선 통치 이념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악장 창작이었다.


정도전은 고려왕조가 무너진 이유에 대해 정치의 퇴폐, 법도의 붕괴, 예악의 부진 등을 이야기했다. 따라서 조선왕조를 정치, 법도, 예악으로 나누어 관리하기를 주장했다. 또한 제도적인 정비뿐만 아니라, 악장 창작을 통해 태조의 왕업을 찬양하고 조선 창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많은 업적에 기여하였다. 이는 후대에 악장 제작의 모범적 선례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악장은 당대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조 악장은 문학사적 의의가 적다고 결코 볼 수 없다. 또한 조선조 악장의 연구를 통해 조선창업 당시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은 물론, 다양한 변화와 사건들을 맞이했던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밝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악장의 발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음악의 발생이 시대적으로 무엇을 의의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4. 맺는말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에서는 정도전의 악장 창작이 대중들과 학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아무래도 시조나 가사와 달리 악장은 대중들에게 크게 확산되지 못했으며, 문학보다 음악 비중이 높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전승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서 악장이 음악이다, 문학이다 의견이 분분한 만큼 아직까지도 악장 연구가 가야할 길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모든 악장들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발견되지 못한 악장들이 있을 수 있고, 당대 지배층뿐만 아니라 민간에 전승된 악장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악장의 발생이 예악 사상이 아닌, 다른 목적과 형태로 발생되었을 수도 있다. 조선조 악장이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 또는 예악 사상의 보급을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 외에도 새로운 시각에서의 악장 발생의 연구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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