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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Aug 23. 2022

어느 날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장강명,『표백』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공허함과 외로움 때문이었다. 2019년에도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았다. 자살뿐만 아니라 고독사도 늘고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행복도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스스로 보상하고, 위로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들을 할애하여 힐링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힐링 도서를 구입하고, 힐링음식들을 챙겨 먹었다. 이렇게 하면 잃어버렸던 행복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다시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했고, 게으르다며 꾸짖는 자기 계발서를 구입했고, 빠르게 먹고 치울 수 있는 음식들을 배달시켜 먹었다. 만약 무엇인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늘 우려했던 대로 결국 마무리될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달리게 만들었을까. 왜 지치면서 쉬려고 하지 않을까.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이 비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교란 가치를 매기는 일이다. 가치가 올라간 것이 있다면, 반대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좋은 환경과 행복한 삶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나쁜 환경과 불행한 삶이 있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일은 결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비교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서 알 수 없는 내일을 예산한다. 비록 이것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삶이란 결코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단한 노력과 달리 우리는 분명 또 좌절이나 한계를 느낄 것이고, 그것은 상황에 따라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줄 것이다.


<표백>은 이러한 현실을 꼬집어 말한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죽음을 왜 스스로 선택하는지. 어쩌면 이것은 좀처럼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는 허무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죽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고민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회의감을 남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한때 우리는 함께 걸었다.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나름 행복한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같이 걷던 사람들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점차 멀어지더니 결국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되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끊임없는 외로움 속에 홀로 남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것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수 없다. 퇴근길에 지하철 1호선만 타더라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몸을 부딪혀가며 함께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우리는 타인에 대한 불편함만 느낄 뿐, 타인이 느낄 불편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혼자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온라인 세계도 한몫한다. 알다시피 오프라인의 세계는 점차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세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적어도 온라인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에 비해 서로의 삶에 대해 무시하거나 비교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온라인 세계에서도 골칫거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어되지 않는 익명성이라는 무기로 누가 상처 받든, 죽든 상관없이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오늘은 가해자, 내일은 피해자가 되면서 온라인 세계에서도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죽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야기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스스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점차 변해갈 것이다. 끊임없이 들리는 비명 속에서 우리는 구원보다 소음을 찾을 것이다. <표백>을 읽고 회의감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가 더욱더 확산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이할 대로 전이해버린 세상, 자살률은 더욱더 증가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히키코모리'처럼 자신만의 공간, 자기 자신에 갇혀 최소한의 만족감을 찾게 될 것이다.


ⓒ Photo By Sasint, Pixabay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 것처럼. 서로에게 햇살, 물, 고른 흙이 되자.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하지 말자. 같이 살자고 서로 보듬어주자. 선택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서로가 하나의 선택이 되려고 노력해보자. 노을이 지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때, 함께 내일을 기약하고 기대했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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